격강천리(隔江千里)의 섬 교동도

by 센터 posted Dec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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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응덕 쉼표하나 2기 회원



고향 친구들과 일 년에 한두 번 꼭 여행하기로 한 게 몇 년 되었다. 지난봄에는 지리산에 갔었다. 그후 어느 술자리에서 “다음엔 어디 가지?” 하다 한 친구가 “교동도 어떠냐?” 한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지지난 주말 교동도를 다녀왔다. 강화도는 몇 번 가보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섬은 처음이었다. 좀 알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인터넷 블로그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에서 열네 번째 큰 섬으로 작년 여름 교동대교가 지어져 강화도와 연결되었다는 것, 북한 땅과 직선으로 불과 2.5킬로미터 거리에 섬 전체가 민간인 통제구역, 통칭 민통선이라 신분증을 들고 가 출입증을 받아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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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사연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교동도 주민이 썼다는 시 격강천리(隔江千里). 

“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가련만 내 눈에는 인간을 조롱하듯 보이누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남쪽 섬으로 집단 피난을 내려왔다. 그곳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형성한 곳이 대룡시장이다. 이후 38선이 그어졌고 그들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반세기도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분들이 정든 고향 땅을 못 밟고 돌아가셨음은 물론이고. 먼저 다녀간 사람들 말대로 시장은 1960~70년대 장터 같은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화개산에 올랐다. 260미터 높이의 아담한 동산 같은 곳이지만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날 해무(海霧)인지, 미세먼지인지가 잔뜩 끼어 북녘 땅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헤엄 잘 치는 사람이라면 마음먹고 충분히 건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는 중에 연산군 유배지 터를 알리는 팻말도 있었다. 조선시대 왕의 눈에 난 선비들의 유배지가 전라도나 경상도였다면 왕족들은 교동도로 많이 유배되었다. 한양에서 가깝지만 외딴 섬이라 이동이 어려운 반면, 행여나 있을 역모에 대비해 동태를 쉽게 살필 수 있는 이유에서란다.


고려 때 유학자 안향이 공자의 초상화를 최초로 모셔왔다는 교동향교에도 들렀다. 마침 어느 역사 문화 단체의 주말 체험행사가 있어 제기도 차고, 좁은 통에 뾰족한 화살을 넣는 민속놀이도 해봤다. 그리고 북녘 땅이 가장 가까운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을 앞에 널어놓은 고추엔 햇살이 내려쬐고, 익어가는 벼와 논두렁 사이에 콩 줄기, 살랑대는 길가 코스모스는 여느 농촌 마을의 익숙한 가을 풍경이었다. 섬 북쪽 전체를 여러 겹으로 둘러싼 철책선만 없었다면.

 ‘아 이게 38선이구나.’

희미하지만 맨눈으로도 바라보이는 저곳이 이 굵은 철책선에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는 우리의 땅이라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거짓말처럼 여러 무리의 철새들이 줄이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강이 길을 막아 천리가 되었구나’ 하는 ‘격강천리’가 절로 떠올랐다. 섬사람들이 제비를 신성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도 다시 생각났다. 제비가 해마다 고향 땅의 흙과 바람을 몰고 와줄 거라는. 그렇게 교동도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민족의 상처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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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다녀온 며칠 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들려왔다.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울컥했다. 아비와 자식이 육십여 년 만에 만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채 하루도 함께하지 못하고 또다시 영영 헤어져야 한다니, 그 한 많은 사연들을 어찌 짧은 뉴스 한 꼭지로 다 어루만질 수 있을까. 문득 교동도를 둘러싼 철책선이 겹쳐졌다. 그 두터운 철책선을 훌훌 걷어내고 실향민들이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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