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나기] 사라진 물꽃을 보고 싶다

by 센터 posted Sep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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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참담이 함께 있구나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이 끝나자 떠오른 느낌이다. 내내 제주도 바다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려한 제주 바다의 풍경만이 화면을 채웠다면, 그저 그랬을 것이다. 해녀의 물질을 통해 바다의 속까지 드러낸다. 해초들로 우거졌던 바다 밑이 하얀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는 다큐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인간의 스토리가 질기고도 안타깝고, 정겹고도 무겁게 배어있다. 그래서 달랐다. 바다를 휘황찬란한 무대로 만들어버린 아쿠아맨과 같은 스펙타클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해녀와 바다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어떤 스토리보다 장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후위기와 같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되새기게 한다. 다큐인데 지루함 느낄 새 없이 엔딩이 왔다.

 

그 시대에 적지 않은 수컷들이 그러했듯이 남편들이 다른 여자들을 끼고 돌아다닐 적에 세 아이를 품에 안은 어미는 바다가 주는 해삼, 멍게, 소라들로 삶을 꿋꿋하게 이어왔다. 내공 깊은 수준의 해녀를 의미하는 상군 해녀 중에서 대상군인 96세의 해녀 현순직과 고향으로 돌아와 물멀미를 극복하고 배우며 상군 해녀가 되어가는 젊은 해녀 채지애의 관계가 성숙해가는 곳에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엄마를 걱정하는 현순직의 막내 아들만 등장한다. 이걸 페미 어쩌고 시비를 건다면 어이없는 노릇일 것이다.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들어가 바다의 선물을 받는 해녀는 자부심 가득하다. 백 세를 앞두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지만 결코 떠날 수 없는 바다를 응시하는 삶은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다이빙포인트! 바다가 있는 해외 여행지를 찾는다면 한 번쯤 등장하는 명소다. 그곳에 가면 온갖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알록달록한 수초와 산호들이 숲을 이뤄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제주 바다 밑에도 그에 못지않은 빼어난 경관들 위로 물꽃들이 피어 있었다. 붉고도 시퍼런 빛을 뿜어내는 바다 속 꽃들이다. 87년의 구력을 가진 해녀는 막내 해녀에게 물꽃을 얘기하고 보여주려 한다. 이제 물꽃은 그 자리에 없다. 물꽃은 전설이 되었다.

오염된 폐수들이 흘러드는 바다는 사막이 되어가고 울창한 바다숲에서 이끼를 섭취하며 옹글지게 크던 해물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물꽃이 사라진 황폐한 바다 밑 계곡을 확인하는 순간 헤아리기 어려운 참담함이 밀려온다. 96세의 해녀가 아깝네 아까워를 반복할 때에 그 안타까움이 너무나 깊게 사무쳐 가슴에 밀려든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이터 저장소를 거쳐 우리를 연결하는 온라인에서 후쿠시마 해양수 방류에 격해진 분노를 본다. 북한 핵개발은 찬성하고 남쪽의 핵발전 확장에 대해 침묵하면서 일본의 핵폐기물에 세상이 망할 것처럼 온갖 언어를 다 쏟아내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오염수 방류를 2의 태평양 전쟁이라고 하는 정치인도 있다. 정말로 그런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다면 왜 앉아서 씨부리고 있을까. 목숨이라도 걸고 강력한 뭔가를 해야 할 것인데 기껏 지껄일 뿐이다. 진정성은 없고 너무나 격하지만 너무나 가벼운 정치적 언어만 소음처럼 다가온다. 어떤 이는 오염수 방류로 어민들이 커다란 타격을 입고 그 불만이 윤석열 정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될 것이란다. 정말로 그런가. 이런 주장이 단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특정 정치적 성향에서 나오는 주관적 희망에 불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

 

부모가 이렇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을까. 부모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지” 87년 물질을 해온 해녀의 바다를 향한 마음은 인간이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어때야 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바다는 그녀에게 세 자식을 키우고 시내에 집을 사줄 수 있을 만큼 소라, 해삼 같은 선물을 주었다. 바다는 인간에게 무수히 많은 것을 선물했다. 그런데 인간은 바다에게 오염수와 쓰레기를 돌려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 대학의 교수란 작자는 아직도 기후위기가 조작된 좌파들의 얘기며 인간을 죄인으로 만든다며 인간을 옹호하는 전사라도 된 양 헛소리를 지껄였다. 기후위기를 강조할수록 확실히 인간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자연에서 태어났으나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자신을 잉태한 어미의 자궁을 파괴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기후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죄를 씌워야 씻김굿이나 부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이비 무당이나 인류에게 원죄를 씌워야 뒤따르는 신의 구원을 얘기할 수 있는 파리한 종교라면 인간을 일단 죄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생태계가 살아야 인류도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는데 굳이 인류를 범죄자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성찰이다. 그러나 도무지 성찰을 모르는 답답함에 인류가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하고 있는가를 말하게 되는 것이 구슬프다.

 

어쩌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보다 차라리 적이나 악마를 만들어 그들을 향해 분노를 퍼붓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다가 황폐해지고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은 모두 자본가의 탐욕 때문이며 오직 더 많은 소유를 위해 내달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이기 때문에 체제를 향해 분노하고 투쟁하자는 선동을 훨씬 매혹적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본 주의라는 것은 한 줌의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 시민이 동의하고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들을 악마로 만들고 그들만 제거하면 세상은 생태계와 공존하는 신세계로 바뀔까.

 

87년 물질에 배인 삶의 깊이에 한 뼘도 다가가지 못한 채 언저리만 맴도는 그놈의 이데올로기들 꽉 찬 언어들이 서글프다. 기껏해야 미국에서 시장과 자유주의를 배웠다고 으스대며 무한성장을 선동하는 엘리트, 흘러들어온 이론 몇 줄기 꺼내서 파리한 이데올로기로 체제를 바꾸려는 삶의 뿌리 박약한 활동가의 언어마저 너무 가볍다. 탄소 뿜뿜대며 그 제주에 가지 말자.

지금 여기 있는 곳에서 우리에게 가득한 선물을 주는 대기와 땅에 감사하며 지속가능한 공존을 생각하자. 그럼에도 제주를 찾는다면, 그저 풍취를 소비하는 관광객이 아니라 저 화산섬 어느 마을에 물질하며 살아가는 해녀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부모보다 더 많은 것을 주다가 아파서 더 이상 물꽃을 피우지 못하는 바다를 만나자.

 

조건준 아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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