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쓸쓸한 주점에서
박영선
노가다라 했다
빈 소주병 움켜쥔 사내의
벌건 눈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던 늙은 노동자는
청년들을 향하여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지금은 노가다를 하고 있지만
xx 나도 한때는 운동권이었다고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누구 덕에 학교 다니고 있는데”
고래고래 지르는 목소리가 주점 유리창에 부딪친다
어디에도 토해내지 못한 말들이
보이는 출구마다 연처럼 걸린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술잔들은 이미 늙어버렸다
차가운 길바닥
떠밀려 나간 몸뚱이가
검은 포대자루처럼 웅크린다
한없이 누추하다
다시 허공이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광명에 살고 있다
시집 〈조금 더 사소해지는 사이〉, 〈분홍달이 떠오릅니다〉가 있다
‘시락’ 동인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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