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허밍으로
고명자
먼 들판으로 넘어진 포플러나무
뿌리째 뽑혀 말라 가며 앓는 시늉을 해
어찌나 가만히 살랑이던지
더러는 진짜 죽고
더러는 새잎이 돋고
노래가 새어 나와
죽은 뿌리에서 병든 기억이 흘러나와
흉흉한 소문이 흥얼흥얼 흘러나와
그래서 집 안에는 포플러를 심으려 하지 않나 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열여덟 시름도 다 풀려 버렸지
누가 나무에 들어앉아 날 불러낸다고
포플러 잎사귀를 타고 꼭대기까지 오르려 했어
음악대학과 봉제공장 갈림길에
포플러 잎사귀의 정령들
내 손목 끌어당기네
저 많은 실밥들 언제 다 따내라고
푸른 정령들은 손뼉 치며 노래하며 따라오라 하고
나는 목젖 다 내놓고 울기만 하고
어느 날 문틈으로 보니 그때의 포플러들이 나를 찾으러 들판을 걸어가고 있는 거야
음악대학 담벼락을 돌고, 돌고, 돌고
내가 부른 노래는 노래라 말해질 수 없어
일손을 놔버리고 나무에 기대앉아 석 달 열흘 흘러가 본 적 있어
포플러는 까마득히 넓어지고 높아지고 멀어지다
내 손아귀를 벗어나 버렸어
고명자 프로필
2005년 문예지 시와 정신 등단
시집 『술병들의 묘지』, 『그 밖은 참, 심심한 봄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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