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by 센터 posted Aug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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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량리 산 중턱

빈집을 지키는 개 한 마리

목줄에 매여 있다

지난밤, 흩날렸던 참나무 이파리를 

잡초 무성한 마당에 던지며

비가 지나간 것인지

머리 젖은 개가 무너진 마루 밑에 엎드려있다

 

툇마루 삭아 귀퉁이마다 내려앉았고

가르랑거렸던 안방

바람벽은

흙이 털린 지 오래

햇살도 비껴간 곳

 

사그랑이 된 바구니는 굴러다니고

기스락물이 깍짓동에 떨어지고

잔잔해진 바람을 등지고

노루잠을 자던 개가 눈을 뜬다

돌담에 앉았던 산 그림자가

매가리 없이 컹컹 짖는 개 소리에 놀라

후딱 지나간다

 

밥그릇에 고인 물이

바람에 쓸려가는 것이 쓸쓸해서

개는,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크기변환]박경희.jpg

박경희 시인

2001년 시안 신인상 수상, 제3회 조영관 창작기금 수혜.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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