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기로 해요

by 센터 posted Feb 27,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김사이 시인

두통 없는 하루가 지나가요
멀미 나지 않는 하루가 저물어요
몸살 없이 무사한 오늘이에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라 믿었어요
오늘이 지나도 내일은 아니었어요
오늘 하루만큼 죽어간 나의 오늘이었어요
나를 죽이면서 날름 삼킨 오늘이에요

농담이라고 하니 몸살이 났어요
별것도 아닌데 예민해서 더 예민해졌어요
오늘이 잘릴까 봐 두려웠어요

나 없는 나의 하루하루 일상이에요
야금야금 파먹는 미세먼지처럼 달라붙었어요

억누르고 침묵했던 오늘이 길이 되었어요
냄새 난다고 버리지 못하게 한 생리대를 다시 가방에 쌌어요 
거식과 폭식이 앞뒤로 치고받으며 슬픔을 외면해요
수행하듯 삭였던 침묵은 진짜 인형이 되었어요
오늘이 쌓은 그 인형의 길을 소리 없이 뒤따르고 있어요
그래요 중독된 날들이에요

나를 찾아오는 기억이 너무 늦지 않기로 해요
나는 지하방 너머 어슴푸레한 달빛처럼 희미해지고 있어요

-------------------------------------------------------------------------------------------------
* 김사이 시인_2002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반성하다 그만둔 날》,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가 있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 출근길 file 센터 2014.10.21 3147
58 엄지손가락 file 센터 2015.07.24 2268
57 우리는 다 배우다 file 센터 2014.08.18 2166
56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여! file 센터 2014.07.01 1846
55 밀양 file 센터 2014.04.23 1837
54 부서진 사월 file 센터 2015.10.05 1773
53 그리고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file 센터 2016.03.14 1747
52 연대 file 센터 2014.03.20 1717
51 생활 file 센터 2014.12.22 1710
50 바닥은 쉽사리 바닥을 놓아주지 않는다 file 센터 2016.08.24 1696
49 알 수 없는 것들 file 센터 2015.03.03 1677
48 보호는 좋은 것입니까? 센터 2016.06.30 1664
47 울타리 밖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이편과 저편 센터 2016.10.31 1663
46 리어카의 무게 file 센터 2016.04.28 1630
45 시작 file 센터 2018.12.26 1618
44 굴뚝 file 센터 2018.04.26 1615
43 역사는 당신의 개인수첩이 아니다 file 센터 2015.12.07 1589
42 천국의 경비원 file 센터 2017.04.27 1562
41 빛의 탄생 file 센터 2019.04.29 1562
40 제주 예멘 file 센터 2019.02.25 1520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Next ›
/ 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