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교 위를 지나면 알 것 같다 하루가 왜 저무는지 깜깜한 밤 인생의 등불이 어떻게 켜지는지 검푸른 물 위에 어둠 풀어질 때 사람들은 깊은 속도의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노을 지면 산비탈에 내려와 조그만 집과 창틀을 그러안는 그리움의 색깔들
흘러가는 건 물결만이 아니다
풍경도 세월도
사람과 더불어 흘러간다
한때 가슴을 불 인두로 지지던 젊은 날의 생채기도 쓰라린 눈물 훔치며 인파를 헤치던 열정의 숲도 이젠 더 이상 넘실거리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을 뿐 두꺼운 얼음 속 실개천이 흐르듯 살갗 아래 실핏줄이 흐르듯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저 혼자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다
.
박선욱 시인
제1회 실천문학 신인 공모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때 이후》 《다시 불러보는 벗들》 《세상의 출구》 《회색빛 베어지다》 등이 있고,
편저로 《한국민중문학선Ⅰ 노동시편》 《한국민중문학선Ⅱ 농민시편》,
청소년 평전 《채광석 : 사랑은 어느 구비에서》 《윤이상 : 세계 현대음악의 거장》,
본격 평전으로 《윤이상 : 거장의 귀환》 등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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