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20년 전 보상금으로는 고향을 떠날 수 없다
고춧대로 박아놓은 깃발 하나
덩그러니 마을 푯돌 앞에서 서성거린다
갈 데라고는 노인정밖에 없는 이씨 아저씨
한숨이 집까지 가 있다
그 많던 논밭 노름 바람으로 날려 보내고
엄지손가락 하나 끊고서야 멈췄는데
마누라도 날아간 자리에
개발인지 게발인지 신축부지 조성한다며
고향 밖으로 날아가란다
앞에서 막아도
뒤에서 밀어도
용달차가 울고
경운기 달달 거려도
보리 빤쓰 젖고
쌀 빤쓰 찢어져도
굴착기 돌아가는 소리 요란하게
벚꽃만 날린다
치켜들 엄지손가락 없이
주먹 쥐면 헛바람이 먼저 날아가는 자리
이씨 아저씨 바지춤 올리며
대낮 술주정이 한창이다
박경희
충남 보령 출생.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벚꽃 문신》,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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