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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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날 농사짓는 사람



인간에겐 어쩌다 혐오라는 감정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다른 비인간 동물에게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같은 종種을 향한 배제와 통제, 비하와 차별의 다른 이름인 혐오라는 정치적 발화의 감정이 말이다. 배제와 통제는 적대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비하와 차별은 분별 지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혐오의 감정은 마음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가 기어코 조직되고 자라나 무차별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 혹은 감성은 생각이랄까 이성이라는 사고의 영역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이어 있어서 감정이 사고를 부추기고 생각이 감성을 도발한다. 그래서인지 혐오는 어떤 감정 상태보다 뿌리 깊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해악도 큰 것 같다. 감정이 감정으로만 머물러 있지 못하는/않는 까닭일 것이다.


늘,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 세계에서 혐오는 대체로 강자/주류로 분류되는 개인 또는 집단이 그렇지 못한 대상을 향해 작동하는 감정이다. 늙음을, 가난을, 다른 피부색을, 다른 종교를, 여성을, 장애인을, 성소수자를, 이주민을 ‘혐오’한다. 조롱과 멸시와 질시와 편견을 듬뿍 담아 대상화하여 차별하고 억압한다. 특히나 ‘여성’은 오랫동안,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만만한’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여성 비하와 여성 혐오가 짝을 이루어 끊임없이 발화되고 실행되어온 것이다. 혐오하는 자들이 지니고 있기 마련인 ‘그럴 만하니까 그래도 된다’는, 혐오의 대상을 규정하고 구성하는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그 근거 없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담배를 피운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말을 한다고 말을 안 한다고 남자를 무시한다고 똑똑하다고 멍청하다고 ‘잘 나간다’고 혐오한다. 못 생겼다고 뚱뚱하다고 예쁘다고 ‘꼬리 친다’고 혐오한다. 물리적인 폭력을 포함한 가지가지의 폭력과 혐오가 쌍을 이루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로지르며 떠돌아다니고 확산된다. 성차를 떠나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는 여성들의 실존적 자유를 억압한다. 여성/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권리를 가질 권리’를 부정한다. 자신이 지닌 인격이나 자신의 행동에는 어떠한 책임감도 수치심도 없이 ‘배설’되는 폭력적 의식과 무의식이 무슨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버무려진 미성숙의 극치인지 모르겠다. 여성 혐오는 진보와 보수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문화적으로 남성화된 이 사회/세계 전반에 두루 번져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대와 인종과 계층과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입장을 초월하여 세계 도처에서 ‘여성 혐오 범죄’가 이토록 질리도록 질기게 지속되고 있을까.


되풀이하지만 여성 혐오도 성 담론의 일부로, 원래부터 존재해왔다기보다 규범과 문화가 만들고 길러내 온 과정의 결과물 같은 것일 테다. 그들/남성들의 존재질서를 구축해가기 위해 여성 혐오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성화된’ 또는 ‘남성적인’ 사회에서 제도와 담론은 여성을 주체성을 지닌 남성과 같은 인간존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정체성은 ‘그들/남성들’의 구미에 따라 구성되고 ‘창조’된다. ‘된장녀’니 ‘김치녀’니 하는 터무니없는 혐오발화의 주체는 그래서 남성들이었고, 남성들이어야 했다. 뭇 여성을 적으로 규정한 맹목의 최전선에서 혐오라는 진지를 구축하여 무차별적인 전쟁을 벌이면서 저들끼리 연대하며 낄낄대고 있다. 지배와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존속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인간/여성에 대한 인간/남성 세계의 지적·도덕적 능력과 감각의 결여를 드러내 보여준다. 혐오라는 맹목의 감정은 논리나 이성을 갖춘 설득이나 비판 앞에서 바위처럼 꿋꿋하고 꼿꼿하다.


혐오를 동원하여 자족적인 승리감에 도취된 채 유지되는 이 가부장적 권력구조에 대응하거나 그것을 전복하는 방식은 그래서 ‘너희도 한번 당해 봐라’는 입장일 수 있다. 한편의 성性을 부정적으로 구성하여 공공연히 ‘씹어대는’ 것에 대해 ‘맞불’을 치켜드는 것이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지켜가려는 정치적 실천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자신들을 대상화하는 혐오 발언에 맞대응하기 위해 행하는 남성들을 향한 ‘혐오 발언’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작동 중이기 마련인 ‘배제와 포함의 논리’라는 잣대에 의해 남성들의 그것보다 쉽게 규제 당한다. 자본과 제도라는 권력의 남성중심성을 반증해 보여주는 것이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려 했던 그녀들은 혐오 발언과 성희롱이 난무하는 이 사회의 ‘진창’에서 달아나는 것도, 여성 혐오와 비하를 토대로 한 성차별이라는 오랜 구조적 폭력을 모르는 척 덮어두거나 외면하는 것도 최선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밟히는 지렁이의 심정이거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존재의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논리적인 말이나 사유로 대응해서는 도저히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들/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에서 비롯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적 행동이 아니었을까. ‘혐오엔 혐오로!’라는 입장에 선 여성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그녀들이 왜 그렇게라도 그들/남성들의 혐오에 맞서려 했는가를 헤아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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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노 치즈코 지음,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2)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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