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차별을 공고화하는 능력주의 공정담론

by 센터 posted Jun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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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6월 11일 한국 정당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30대가 제도권 정당의 대표로 당선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청년세대라는 점 외에도 ‘공정 경쟁’을 내세워 지지를 받는다. 같은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직원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불공정한 처사라며 청원을 올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 비정규직인 상담사들의 요구와 파업을 비판한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사안이 ‘공정’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그만큼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열쇳말이 ‘공정’임을 보여준다.

 

시국선언.jpg

지난 4월 23일,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 주최로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한 ‘세대가 아닌 시대를 말한다’ 기자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논리로 등장한 공정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비정규직 차별에서 드러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나왔고 취임 첫 행보도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키겠다며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했다. 박근혜조차 대통령 후보 시절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할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시대 불평등의 상징이었고 해결해야 할 인권의 과제였다.

그러나 2017년 전후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불공정하다.”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부 취업준비생과 다수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출했으며, 기업과 언론이 이를 받으며 확산했다. 속칭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이러한 사회적 논란의 정점이었다.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요원 정규직화는 “시험 없이 정규직화되는 것이므로 불공정한 처사”라며 반대했다. 올해 2월 건보공단 고객센터노조 파업 당시에도 역차별이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정규직 노동자는 고객센터 노조원의 정규직 전환은 “공정의 탈을 쓴 역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따라 근로복지공단,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 산하 고객센터는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부분 정규직 전환을 마쳤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청소나 시설관리, 경비 노동자 700여 명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나 고객센터 상담사만 전환하지 않았다. 타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건보공단 내의 다른 비정규직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임은 분명했기에 불공정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불공정은 역차별’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처음부터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불공정이라고 단정한다. 불공정 프레임이 더 먹히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채시험을 거치지 않고 정직원이 되려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시험이라는 자격을 들고나온 것이다.

 

공정은 어떻게 능력주의에 포획되었나

 

시험은 노력과 능력에 대한 신화를 깔고 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착각은 여전하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자란 우리는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서열구조에 익숙하다. 어떤 대학을 가냐가 어떤 직업을 얻을 수 있느냐로 직결되는 사회구조에서 이러한 경쟁은 더 생존의 감각으로 새겨졌다.

그러나 현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갈 수 없다. 서울대생 40%가 강남 3구 지역 출신이라는 것에서 말해주듯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대입 정보력 편차 등 불평등한 조건은 이미 결과의 불평등을 안고 있다. 게다가 입시 제도나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과 비리 등은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불평등과 부패가 엮인 현실은 시험에 더욱 목매게 되고 ‘시험이라는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노동권을 제한해도 되는 양 여겨진다. 시험 합격으로 특정 능력이 확인된 경우에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 ‘능력주의 공정성’이다. 시험에 의한 차별과 권리 제한을 정당한 일로 본다. 인권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라고 할 때, 시험 통과자만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은 인권을 특권화시킨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시험을 거친 자만이 정규직이 될 자격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현상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98년 파견법이나 기간제법이 제도화된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하기 전까진 학력이나 시험 제도와 상관없이 정규직으로 일했다. 이전에는 청소 노동자든 사무직 노동자든 직종에 상관없이 정규직이었다. 정규직을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이 누리는 것, 능력(자격)이 있는 자만이 누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정규직이 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능력이 없으니 비정규직이 되는 건 당연해.”라는 욕이 나오기 어려운 사회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문화는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각국의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공공성을 줄이며 기존 복지와 권리를 제한하면서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나아가 권리를 보장할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리했다. 입시제도로 서열화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안정된 일자리 축소와 채용시험 강화가 ‘능력주의 공정성’에 기댈 여지를 많이 준다.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매달리게 한 것이다. 즉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사람들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공정한 임금과 노동 조건은 외면

 

아이러니한 것은 노동 영역에서 공정을 외치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공정한 임금과 노동 조건은 외면한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은 60%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회사에서 일해도 안전 장치도 보호 장구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한다. 그러다 죽기까지 한다. 건설 현장에서 비정규직 산재 사망률은 정규직의 7배다. 오죽하면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너무나도 분명한 불공정한 처사이지만 능력주의나 시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별을 당해도 되는 존재인 것이다.

 

앞에 언급한 건보공단 고객센터와 타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만 정규직으로 하지 않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정책이지만, 그러면 재원이 부족해질 거라며 반대한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기 위해서 불공정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공존보다는 자신이 누려온 것을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특권의식이 생긴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규모 축소와 비정규직 확산은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들의 서열의식을 강화하여 노동권을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세습자본주의 사회라 불릴 만큼 신분 상승의 기회, 계층 전환의 사다리가 거의 없다. 부자는 계속 부자이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계속 세습하는 사회다. 적어도 ‘시험은 여전히 기회’라며 가난의 세습을 끊는 사다리로 보이고,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정규직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구조적 불평등이 바뀔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능력에 따른 불평등 체제를 수용하고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각자도생 시대에 경쟁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공정에서 차별을 극대화하는 능력주의를 수용한 것이 아닐까.

 

능력주의 공정 담론, 차별을 정당화하다

 

그런데 능력주의 공정 담론은 능력에 따른 서열과 위계,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며 문제를 낳는다. 첫째,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특정 사람만 누리는 권리, 특권으로 바꾸어 버린다.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 즉 1970년대 이미 확립된 안정된 노동에 대한 권리는 모두의 권리가 아니게 되고, 이를 국가와 기업에 불평등 시정을 요구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하게 된다. 둘째, 능력에 따른 노동자 분할과 차별을 정당화한다. 채용 시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시험이라면, 입사 이후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성과이며 그에 따른 급여와 승진이다. 그에 따른 노동 강도 강화에 순응한다. 기업은 능력주의 공정 담론을 기반으로 성과급제 등을 통한 노무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셋째, 차별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낙오되거나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임에도 그것은 무능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로 인해 사회 구조적 불평등은 더 공고해진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으로 이어져야 하며, 결과의 평등을 위해 국가가 여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제인권 기준과 원칙을 뒤로 돌리는 일이다. 국가의 의무는 사라지고 개인은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넷째, 능력주의가 사회 작동 원리로 될 때 사회구성원들은 불평등 문제에 대해 무감해질 수 있다.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인 사람들이 퍼붓는 비난을 봐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넘어서 ‘무능한 자’들이거나 ‘실패한 자’(루저)들이라는 조롱까지 받는다. 결국, 능력주의 공정 담론은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수용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연 개인의 노력으로 노동 영역에 광범하게 펼쳐지는 불평등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미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일 정도로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OECD 비정규직 규모 11.6%, 한국 20.62% 2017년 기준). 임금 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운 좋게 몇 명은 비정규직 차별의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도를 손보지 않고는 차별과 착취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규직에 대한 불평등은 공고해졌다.

 

능력 있는 소수만이 권리를 누리는 것은 누구에게 이로운지 따져보자. 실제 비정규직 증대로 이득을 얻은 건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이다. 능력주의에 갇힌 공정은 부와 권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만 차별과 불안의 늪에 빠뜨릴 뿐이다. 불안감 없이, 차별 없이 노동에 대한 권리를 모두에게 보장하라고 외쳐야 한다. 이제라도 차별을 정당화하는 공정 담론에서 벗어나 체제의 불평등에 맞선 싸움을 조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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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보직원 2021.06.30 22:44
    능력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따라 비판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비판하기 바란다.
    능력이 타고난 사람이 있고, 노력으로 성취한 사람이 있다. 그 능력을 올바르게 살리는 사람이 있고, 오용으로 살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체형도, 타고난 기질도 다 다르다. 노력으로 건강한 몸을 만든 사람이 있고, 타고나길 건강한 사람이 있다. 수많은 땀으로 근육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중에 약물이나 성형으로 근육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왜 어떤 능력인지, 어떻게 사용되는 능력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능력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일반화하여 비판, 아니 비난하는가.
    경쟁은..최소한 노력의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하나의 공정한 도구이다. 경쟁이란 과연 나쁜것이고 없어져야 할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동물도.. 약육강식이란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 인간과 다른 것이라면 독점하고 독식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 건보사례를 들어 건보를 다니는 직원으로써 글을 적는다. 과연 당신이 말하는 특권의식을 지키기 위해 능력주의 공정담론을 내세우는 것인가? 당신이 말하는 소수는 우리 건보인에게 해당되지도 않는, 당신이 말하는 특권은 우리에게 있지도 않는... 정말 평범한 직장의 보수와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라는 특성과, 시대가 만든 경제적 불황에 안정적인 일자리, 그 하나 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당신눈에는 지킬려고 하는 특권이 임금이나 복리후생, 안정성 등으로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이상황에서 직원들이 지킬려고 하는 것은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지금 이곳을 들어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삶,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낸 후 가지게 된 자부심과 자긍심이다.
    모든 것을 같은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지 말라. 건보직원은 많은 나눔과 베품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고, 회사차원에서도 기본 가치로 실천하고 있다.
    당신은 누군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승자 독식구조에서 밀린 사람을 살피고 옹호하고 싶겠지만, 대상을 잘 못 짚었다.
    정말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던 비합리적이었던 경쟁 사회에 대한 고찰도 없고, 정말 노력없이 많은 것을 누리는 소수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또한 비정규직= 사회적약자 의 프레임을 너무 당연하게 씌웠다.
    노력한 사람이 약자가 되면 안되겠지만, 노력없이 강자가 되는 것도 비상식적이지 않는가?
    당신은 기성인으로 어떤 철학적 물음을 가지고 젊은 세대에게 화두를 던지는가? 현사태의 문제에 원인이 된 지성 또는 기성세대라는 책임감이 있다면, 이렇게 세태만을 멀리서 보고 풍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많은 젊은이들은 당신이 위에서 내려다 볼때 밑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
    사회를 관념으로 보고 말하지 말고, 현장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도 들어봐라. 능력이 왜 존중받아야 하는지, 능사는 아니더라도 왜 사람은 노력해서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아주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답을 정녕 모르겠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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