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생명, 그리고 비정규직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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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진호 센터 기획편집부장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어느덧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언론과 SNS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을 눈물로 듣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분향소를 찾고, 안산으로 향하고, 청계광장으로 나가고, 모금·서명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고자 노력했던 40여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가도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돌아오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렸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번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님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곳은 생명보다 이윤이 앞선 공간이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이 배, 저 배를 떠돌아다니는 비정규직이었고, 경영 자문료로 6,000만 원을 쓰는 회사는 안전교육 연수비로 54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안전 검사는 선주들의 이익단체들에 외주화 되어 있었고, 허울뿐인 규제는 수명이 다한 배를 제대로 된 점검 없이 바다로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구조를 맡았다는 이들은 사람을 구하는데 전념할 시간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세월호 참사는 사람보다 이윤을,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시했던 우리 사회의 어둠을 드러냈습니다.


세월호 기자회견(민주노총)_축소.jpg


권한은 없고, 책임만 떠맡은 비정규직
세월호의 안전을 책임질 핵심 위치인 갑판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심지어 선장인 이준석 씨마저도 월급 270만 원에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참사 초기 언론에서는 선장과 선원들을 악마처럼 묘사하여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없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승객과 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회사에 있습니다. 아니 그런 구조를 만든 이 사회에 있습니다. 재계약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에게 ‘희생’과 ‘안전을 위한 직언’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제대로 된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비정규직들로 가득한 상황에서 책임만을 부여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 특히 국민의 안전을 다루는 곳곳에 있습니다.
인천공항은 언제 화재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곳입니다. 특히 비행기는 발화점이 낮은 기름을 가득 싣고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소방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2013년 인천공항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차 초기진압을 해야 할 소방출동 대기자는 단 6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소방을 위한 자율적인 권한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 상황이 벌어져 창문이라도 깨야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비정규직에게는 자체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KTX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기관사를 포함하여 6명의 승무원이 타지만 승객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열차팀장 단 한 명뿐 입니다. 그 외의 승무원들은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 노동자들로서 승객안전 업무를 담당할 권한이 없는 비정규직입니다. 철도공사는 이 노동자들이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승무원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비상대비 훈련도 시키지 않습니다. 이 노동자들이 안전업무를 하게 되면 중요업무가 되므로 외주화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고, 정규직 열차팀장과 함께 안전업무를 하게 되므로 불법파견이 인정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국립공원의 재난구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공원 20여 곳에는 44명의 안전관리반과 103명의 재난구조대가 상시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안전관리반은 무기계약직, 재난구조대는 비정규직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립공원의 안전관리요원 중 운영업무직인 7명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비정규직 신분이라고 지적된 바 있습니다. 국립공원 내 전체 안전관리전담자 95%가 비정규직인 셈입니다.


안전을 포기한 외주화와 인력감축
5월 2일 세월호 참사 이후 상왕십리역에서 지하철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신호기 오류였는데 신호연동장치 데이터 수정작업은 민간 용역업체가 맡고 있었습니다. 기관사 업무를 제외하고 신호와 안전업무 등 정비와 관련된 부문은 거의 외주화 되어 있습니다. 안전에 대해 인원과 비용투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1인승무제는 어떻습니까. 1인승무제가 실시된 곳에서는 도착감시와 출입문 개방, 개방 확인, 출발신호, 승강장 이상 유무 확인 등을 모두 기관사 혼자 다 해야 합니다. 사고가 나면 안내방송도 해야 하고, 사령보고, 사고 현장에 가는 것, 목격자를 찾아서 진술 확보하는 것 등 모든 업무를 혼자 다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버스 정비의 경우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도시에서 정비노동자의 인건비는 ‘업체별 1명(압축천연가스 안전관리자) + 버스 대당 0.137명’이라는 기준으로 지원됩니다. 하지만 ‘업체별 1명+버스 대당 0.137명’이라는 기준은 강제되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보유 차량 대수에 따라 정비직 인건비를 버스업체에 지원하지만 실제로 몇 명의 정비노동자가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보유 차량 대수에 근거해 20명분의 인건비를 지원받아도 10명의 노동자만 고용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버스업체들은 가능하면 정비노동자수를 줄여서 인건비를 절감하려고 합니다. 버스의 안전을 위해서는 정비업무가 제대로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비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고에 가장 민감해야 할 원자력 산업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공공연구소가 원자력 유관 4개 사업장(한국수력원자력, 한전 KPS, 한전 원자력연료, 한전기술) 노동자 1,771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 면접 조사를 진행한 결과 노동자 64%는 현장에 충분한 인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인력 부족으로 과거와 같이 꼼꼼한 안전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의견이 80%에 달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수직적, 위계적 질서로 인해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독자적으로 작업 중지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토로하고, 실제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냐는 물음에 48% 정도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보복성 징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관련 의견을 제안할 수 있다는 의견도 40%에 그쳤습니다.


카나리아2.jpg


죽음의 신호를 막기 위해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합니다. 비정규직의 증가와 무분별한 인원 감축은 어쩌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한 한국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카나리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 애도를 넘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윤보다 안전이 우선시 되는 사회, 적어도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예의를 말해야 합니다. 이윤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당연한‘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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