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추구해야 할 연금개혁 방향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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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미래세대·일하는시민의 연금유니온 정책위원장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의 하나로 연금개혁을 주창하고 나섰으나 논의는 아직 안갯속을 헤매는 모양새이다. 작년에 국회가 연금특위를 설치하고,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는 어떨까? 연금개혁 전문가, 이해관계자, 언론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금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다. 물론 연금개혁이 사회적으로 합의하기 무척 어려운 의제이고, 특히 한국처럼 국민연금의 재정 불균형이 심각하며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에서 연금개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과제가 있으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기 마련인데, 왜 연금개혁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연금개혁을 책임지고 추동할 정부의 연금개혁 내용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연금개혁을 강조하며 당선되면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집은 “초고령사회 백년대계 상생의 합리적 연금개혁 방안을 만들겠다”고 호언한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연금개혁위원회는 사라져 버렸고 더 심각한 것은 아직도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법에 정한 일정대로 올해 10월에 종합개혁안을 발표하겠다지만 대선공약과 3대 개혁의 국정 의제치고는 정부의 준비가 너무도 안이하다.

 

그렇다고 야권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연금개혁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건 정부의 몫이라며 공을 넘기며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정치 조직이라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어떻게 할지, 사각지대에 있는 연금 약자를 위하여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지를 제시해야 하건만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개혁 논의과정도 무척 우려스럽다. 어느 나라든 연금개혁의 목표는 노후소득보장과 지속가능성이다. 이 둘은 상충하지만 적절히 결합해야 하는 사회정책 과제이다. 그런데 현재 연금개혁 논의 구도는 ‘재정 안정화 vs 보장성 강화’로 고착되고 있다. 한쪽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하여 보험료율은 인상하되 소득대체율은 유지하자는 입장이고, 다른 쪽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하여 소득대체율도 함께 올리자는 입장이다. 연금개혁에서 재정 안정도 보장성도 모두 필요한 일인데도 논의 구도는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모두 필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시민들은 난감하다.

 

연금개혁 논의의 협소한 인식 틀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연금만을 두고 이야기하면 소득대체율 유지 혹은 인상,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대립이 형성된다. 지금까지 정부 연금위원회, 국회 연금특위, 언론 등에서 이 평행선이 되풀이되니 시민들이 피로감마저 느낄 정도이다.

 

왜 노후의 소득보장을 국민연금 제도에서만 해결하려 하는가. 예전에는 일반 시민에게 적용되는 공적연금으로 국민연금만 있었지만 2005년 퇴직연금이 도입되었고 2008년 기초연금(당시 명칭은 기초노령연금)도 시작되었다. 퇴직연금은 1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법정 급여이고, 기초연금은 노인 70%에게 적용되는 의무제도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시민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부여되는 세 개의 법정 연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면 노후소득보장도 이 삼총사를 활용해야 하며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보장성 방안도 만들어질 수 있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은 결코 작은 제도가 아니다. 기초연금은 노인 70%에게 적용되는 제도로서 2022년 지급액이 20조 원으로 같은 해 국민연금 급여지출 약 30조 원의 2/3에 이른다. 윤석열 정부에서 기초연금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퇴직연금도 2021년 고용주가 납입하는 기여금이 50조 원으로 국민연금 전체 보험료 수입 53조 원과 비슷하다. 앞으로 1년 미만 고용자까지 의무적용하도록 개혁한다면 역시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연금개혁 논의는 연금 삼총사를 포괄하여 진행해야 한다. 우선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보다는 노동시장 주변부 ‘연금 약자’의 급여 확대에 집중하자. 일부에서 노인 빈곤이 심각하니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연금 수령액은 노동시장 격차를 반영하기에 평균소득 미만 가입자에게는 실제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가 크지 않다. 또한, 소득대체율 인상은 보험료율 인상을 수반하기에, 현재도 보험료율 책임을 다하지 않는 현세대가 추가로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서구에서 공적연금이 성숙하던 20세기 중후반에는 후세대의 노년 부양 부담이 무겁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후세대 부담이 커지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신 여성, 실업자, 군 복무자에게 제공하는 연금크레딧을 늘리고, 본인이 전액 납부하는 도시지역 가입자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여 연금 약자의 가입 기간을 늘리는 실질 소득대체율 강화에 힘써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공공 재정도 미래 수급 시점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현세대가 조달한다면 계층 간 보장성 격차를 줄이면서 세대 간 형평성도 도모할 수 있다.

 

기초연금은 소득이 적은 노인을 두텁게 지원하도록 개편하자. 현행처럼 소득보장 제도임에도 대상이 노인 비율로 정해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이제는 소득보장 목표 수준을 정하고 대상은 하위계층으로 집중하는 최저보장소득으로 전환해야 하며, 그래야 노인 빈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초고령사회의 지출 증가도 관리할 수 있다. 퇴직연금도 점차 연금으로 발전시켜가자. 일정 적립액이 쌓여야만 연금으로 역할 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은 걸릴 것이다. 2021년 퇴직연금 신규 수급자 중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96%로 압도적이지만 이들의 평균 적립액이 1천 6백만 원에 불과한 반면 연금으로 수령하는 4% 평균 적립액은 1억 9천만 원에 달한다. 현재 허용된 중간 인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은퇴 이후 연금 수령을 유도하여 서구 나라처럼 노후소득보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면 노후소득보장의 중장기 비전이 마련될 수 있다. 바로 하위계층은 최저보장소득과 국민연금을 합쳐 일정 소득을 보장받고, 중간계층 이상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합하여 적정 소득을 얻는 ‘계층별 다층연금체계’이다. 이를 위하여 국민연금에서는 연금 약자의 가입 기간을 늘리는 실질 소득대체율 강화에 힘쓰고, 기초연금은 노인 수 증가를 감안하여 하위계층에게 두텁게 누진 지원하는 최저보장소득 방식으로 전환하며, 퇴직연금은 1년 미만 노동자에게도 의무적용하고 중간 인출을 규제하여 연금으로 역할 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도모해야 한다. 초고령사회에서 미래 의료비, 기초연금 재정은 후세대에 의존하더라도 현세대가 미래 지출 규모를 결정하는 국민연금에서는 현세대가 자신의 재정을 책임지는 게 적절하다. 지금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올려 후세대에 적자분을 넘겨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연금 약자의 가입 기간 지원 재정도 지금부터 우리가 투입해야 한다.

 

평행선만 달리는 연금개혁 논의에서 출구가 있을까? 시야를 연금 삼총사로 넓히면 해법이 보인다.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공존하고 노후보장의 계층 간 적정성을 구현하는 ‘지속 가능한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를 만들자. 이것이 초고령화, 불안정 노동으로 상징되는 21세기 시대 환경에서 진보가 추구할 연금개혁 방향이다.

 

∙ ∙ ∙

이 글은 필자의 언론 기고(“70조 원의 힘, 퇴직·기초연금 재발견에 국가 보장 노후 달렸다”. 한국일보 2023. 4.3.)를 확대 보완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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