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

by 센터 posted Jun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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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최근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관심 주제로 등장했다. 노동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받으면 좋겠지만 기업의 흥망에 종속된 까닭에 잠재적 위험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이 보완대책으로 등장한다. 보통 노동자를 위한 복지라는 의미에서 노동 복지로 불린다.


노동 복지와 노동 운동


2010년을 전후로 대한민국에서 복지 바람이 불었다. 복지가 권리로 등장하고 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가 확대되었다. 이에 노동자가 누리는 노동 복지도 핵심 의제로 등장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 권리로서 복지 담론이 부상했으나 노동 복지가 특별히 부상하지는 않았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저임금 노동자에게 국민연금, 고용보험 보험료의 1/3~1/2을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이 시작된 정도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 사업을 ‘전액 지원’으로 확대하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인수위원회를 거친 후 현재의 1/2 지원으로 사실상 공약을 폐기하였다(2015년부터 신규 가입자는 60퍼센트 지원).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박근혜 정부의 사회보험료 지원 공약 폐기 과정에 사실상 노동계의 대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3대 비급여 공약의 경우 관련 단체들의 적극적 대항으로 그마나 현재 수준으로 덜 후퇴된 것과 비교된다.


사실 복지 바람이 불어올 때부터 우리나라에선 ‘노동조합이 복지에 큰 관심이 없다’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국민연금, 건강 보험 등에서 복지 활동을 벌여 왔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양대 조직이 지닌 자원과 영향력에 비한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나는 이러한 배경에는 ‘일자리(노동) 개혁 없는 복지는 한계’를 지닌다는 인식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이야기는 맞다. 복지는 재분배 제도에 불과하기에 노동 시장에서 기인하는 자본 임노동 관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복지는 노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걸까?


나는 ‘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다’라고 말한다. 복지의 역할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이 복지이다.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대항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적 자원이 소중하듯이, 자신의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 기반이 필요하다. 부당한 계약해지 문자를 받고서도 눈물을 머금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노동자에게 부족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 기반이다. 만약 최소한의 가족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동료들과 함께 부당함에 맞서는 싸움에 나설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노동의 권리도 구현되고 세력으로서 노동 계급도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복지 있는 노동이 강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동은 더욱 자본과 맞설 주체로 커갈 수 있다.


1.노동복지.JPG

노동 복지에 관심 있는 활동가들이 모여 노동복지상담사 세미나를 열었다.


노동 복지 제도-사회 보험, 기업 복지


노동 복지에는 어떠한 제도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노동 복지는 노동자 지위를 가졌을 때 관계를 맺는 복지를 가리켜 왔다. 우선 노동자가 되면 고용, 산재, 건강, 연금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언제든지 산재, 실업, 질병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언젠가는 은퇴해야 하기에 이에 대비하는 복지가 사회 보험이다. 근래 복지 논쟁이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사회서비스와 사회수당 복지에서 전개되었지만, 우리나라 복지 체제의 주축은 사회 보험이다. 현재 전체 복지 분야 지출에서 사회보험이 2/3를 차지하고 고령화에 따른 의료, 연금 증가로 2050년에는 4/5까지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 보험은 낮은 급여와 사각지대 문제를 안고 있다. 빈약한 실업급여, 건강 보험 보장성, 국민연금액이 전자의 문제라면 불안정 노동자들이 사회 보험 밖에 머무는 게 후자의 문제이다. 현재 고용보험, 국민연금, 직장건강보험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률이 1/3 수준이다. 노동 시장에서의 격차가 사회 보험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불안정노동자들이 고용과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정작 실업을 당했을 때 고용보험 혜택을 얻지 못하고, 노후에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금액이 적어 노후빈곤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높다. 이에 사회 보험 사각지대는 누구보다 노동조합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이다. 그 대상이 불안정 노동자라는 점에서 노동자 내부의 구조적 균열을 뛰어넘어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


노동 복지의 두 번째 영역은 회사에서 얻는 기업 복지이다. 기업 복지는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제공받는 법정 복지와 기업에서 자체로 정하는 법정 외 복지로 구성된다. 전자의 대표적 복지는 퇴직금이다. 후자는 학비 보조, 의료비 보조, 주택 마련 지원, 개인연금 단체 가입 등 기업별로 매우 다양하다.


기업 복지 역시 기업 간 격차를 그대로 반영한다. 기업의 경영 실적이 좋거나 강한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선 기업 복지가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빈약하기 때문에 격차를 해소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필수 복지 항목들을 국가 복지로 확장 전환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일부 기업에서만 의료비, 교육비 지원이 행해지는데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완성되면 기업 고용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의료, 교육 복지를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 복지를 말하면 앞의 사회 보험과 기업 복지를 의미했다. 두 복지 모두 노동자로서 지위를 기반으로 삼는다. 두 복지가 전향적으로 발전하려면 모두 국가의 복지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어떻게 실업급여를 올리고 건강 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모두 노사가 내는 사회보험료를 재원으로 삼는 급여이다. 그렇다면 급여 확대를 위해 사회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도 노동계가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당장 월급명세서에서 사회보험료 공제액이 증가한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사용자 몫이 더해지고 노동자들이 납부한 보험료에 비해 훨씬 많은 사회임금을 사회 연대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 사회 보험 사각지대도 근본적으로 노동 시장 구조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우선은 사회보험료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이 역시 사회 보험 재정 혹은 세금이 필요하다. 한국의 낮은 조세 부담률을 생각하면 이제는 증세를 위한 노동자의 주도적 역할을 이야기할 때이다. 공평과세 인프라를 구축하는 활동과 함께 복지 확대와 연계해 법인세, 소득세 등을 누진적으로 내는 복지 증세는 검토할 만한 주제이다.


노동 운동이 관심 가져야 할 생활 복지


노동 복지 개념을 확장하면 세 번째 노동 복지도 있다. 바로 노동자들이 절박하게 느끼는 생활 복지이다. 주거를 보자. 국민의 절반이 자기 집 없이 전전한다. 계약 갱신마다 널뛰는 전세금에 허리가 휘고 최근에는 월세로 전환되면서 가계 가처분 소득이 타격을 받는다. 월급이 오른들 전월세 인상도 감당하지 못하기에 생활 수준은 오히려 하락할 수밖에 없다. 금융 복지도 중요하다. 가계 부채가 1천조 원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고 악성 금융 부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더욱 금융 복지가 절실하다. 사회복지계에서 주로 다루는 영역이지만 주민센터, 복지기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도 지역 주민인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복지이다.


생활 복지는 지금까지 노동계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영역이다. 노동자 지위 이전에 시민, 주민에게 적용되는 복지이고 각각 독자 영역으로 운영돼 왔다. 지역 주민들이 바로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이라는 점에서 노동 운동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다. 생활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대부분 불안정 노동자라는 점에서 생활 복지 역시 지역 노동 활동에서도 중요한 의제이다.


노동 복지 상담 활동이 나아갈 길


최근에 서울시,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노동복지상담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에 사회 보험, 기업 복지 중심의 협의의 노동 복지 이해를 노동자의 생활 복지 영역으로 확장해 활동을 벌여보자는 모색이다. 실제 노동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복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의 욕구를 명확히 이해하고 활동한다면 지역 노동 활동의 새로운 장이 개척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 복지 상담 활동은 해당 노동자가 얻을 수 있는 사회 보험, 주거 복지, 금융 복지, 지역 복지를 안내하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영역이기에 점검해야 할 과제가 많다. 노동복지상담사라는 독립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 복지 제도뿐만 아니라 주거, 금융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복지 영역이 이미 자신의 체계를 갖추고 운영되고 있어서 기존 주체의 활동과 얼마나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도 따져봐야 한다. 즉 노동 복지를 종합적으로 상담하는 활동의 ‘시너지 효과’를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 복지 상담 활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지역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라면 상담이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는 후속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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