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에서 온 이야기

by 센터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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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수연 평화나비네트워크 간사, 한일합의무효 대학생 대책위 상황실장



70년 세월의 한을 지우고 용서를 강요하는 나라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 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양국 정부는 이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까지 합의에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양국 정부는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 아니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금까지 외쳐 왔던 요구들을 전혀 담고 있지 못합니다. 교묘하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였고 진실을 지우는데, 그리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일합의 직후 본격적으로 일본의 명예회복을 위해 날개를 달고 국제 사회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는 일본 총리의 사죄가 아닌 ‘대리사과’였습니다. 그것마저도 전쟁 범죄에 대한 인정이 아닌 도의적인 유감 표명이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전역에서 일본 군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한 반인륜적 범죄였으나 이번 합의문에는 ‘군의 관여’에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쉽게 비유를 들자면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성폭행 범죄에 관여가 되어 있어 미안하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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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한일합의 무효화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평화나비네트워크)


기억의 역사를 지우자는 한국 정부


이번 합의 결과로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약 97억 원)을 출연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거래입니다. 이 문제가 가진 역사적인 무게를 차치하고서 기본적인 셈만 따져보아도 그렇습니다. 가해국은 돈만 지불하고 모든 책임은 피해국이 지는 결과입니다. 한일합의 직후 일본의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 기자들에게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었습니까?


더군다나 한국 정부는 이번 한일합의에 다시는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최종적 불가역적 선언에 더해 소녀상 이전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합니다. 13세 소녀 모양을 한 앉은키 130센티미터, 청동으로 만든 예술품 하나가 ‘공관의 안녕과 위엄에 우려가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한민국 외교 장관이 말합니다. 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소녀상 이전을 논의해야 합니까? 소녀상 이전하라 조건타발하는 사죄가 도대체 무슨 진정성 있는 사죄란 말입니까. 많은 국민들이 이 나라의 외교력이 진정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가 싶어 주체할 수 없는 실망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소녀상 곁에 주저 않은 대학생들


1월 30일 1121차 수요시위, 한일합의가 있고 열린 첫 수요시위였습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수요시위가 끝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녀상 옆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의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왔던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를 비롯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모였습니다. 국가가 하지 않는 말을 우리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녀상 이전을 전제로 하는 합의는 무효다. 이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합의를 파기하라. 대학생들이 맞은편 일본대사관 건물에 찾아가 한일합의 파기 선언문을 전달했습니다. 한국 경찰들은 일본대사관 안에 펼쳐진 현수막들을 한시바삐 빼앗아갔고 울부짖는 대학생들의 입을 틀어막기 바빴습니다. 국가가 해주지 않은 말, 당당한 우리의 주장들은 30명의 대학생들이 전원 연행되며 끝났습니다. 피해자 할머님들이 연행되었다 풀려난 대학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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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평화나비네트워크)


소녀상을 찾는 소중한 발걸음


달랑 하나 가져왔던 천막은 수요시위 현장에서 경찰들이 가져갔습니다. 준비 없이 농성을 시작한 대학생들의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은 시민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분들과 대학로의 백남기 선생님 대책위에서 담요를 들고 달려오셨습니다. 대표단 농성 중이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가지고 계신 침낭을 내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침낭은 불법 시위 용품이라며 모두 경찰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대학생들이 가방과 옷 속에 침낭을 하나씩 숨겨 들어와 철야 농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해라고 떡국을 끓여 오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님들이 계셨습니다. 주말에는 밥차를 보내주셨고 간식과 핫팩과 후원금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시민 분들의 손길이 모여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의 농성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대학생들의 농성장 참여도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농성장을 다녀간 대학생들은 적게 잡아도 1천 명은 될 것입니다.

“언니 오빠들이 소녀상을 지켜줄 거예요. 그러니 추워도 꼭 잘 있어야 해요. 지금은 어려서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나중에 커서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때까지 이 자리에 꼭 남아있어야 돼요!”

소녀상에게 놓인 핫팩에 담긴 한 아이의 편지였습니다. 소녀상을 보러 가족들도 참 많이 와주셨습니다. 소녀상은 교육의 현장이었고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만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술인들이 찾아와 노래를 불렀고 그림을 그렸고 시를 읊었습니다. 종교인들이 오셔서 기도회를 하고 예배를 보는 성스러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매일 촛불을 들고 노래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토요일에는 광장으로 나와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했습니다. 거리를 행진하며 노란 나비를 가슴에 달았고 꽃을 들었고 사죄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님들의 넋을 기리는 만장을 들었습니다. 소녀상이 일본대사관의 안녕을 위협하고 위엄을 훼손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우리의 아픔을 되돌아보며 다시금 이 땅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누가 이 땅의 안녕을 위협하고 위엄을 훼손하는 세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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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시민들(@평화나비네트워크)


한일합의의 허술함, 박근혜 정부의 수상함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문에는 진상 규명과 위안부에 대한 교육 관련 내용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외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도 못했고, 그분들의 인권을 충실히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외교부는 이 합의를 폐기하는 게 맞습니다. 두 나라의 외교 장관이 합의문에 서명도 하지 않고 비준서를 교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제법상 어떠한 법적 효력도 없는 양국 외교 장관의 입장 발표일 뿐입니다. 아베 총리는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계속해서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합의 파기를 선언해도 모자를 마당에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습니다. 망언을 하는 가해자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까지 용인해주어야 하는 걸까요. 여전히 식민지인 것 마냥 꼬리를 내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너무나도 수상합니다.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의 말을 전했다고 하는데 청와대는 전화 통화 내용 공개를 끝내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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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 기자회견(@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근혜 정부가 몰고 온 한파, 새봄이 이길 것!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오늘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춥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피해자와 국민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이 매서운 한파가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도, 해결 의지도 없는 한국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한파 주의보에도 대학생들은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밤을 새웁니다. 그리고 수요일 12시면 어김없이 수요시위가 열립니다. 박근혜 정부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한일합의에서 실체가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 정부가 준다는 10억 엔입니다. 한일합의 무효를 위한 전국행동이 꾸려졌습니다. 시민들의 모금으로 ‘정의와 기억재단’이 꾸려지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들의 행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함께 손잡고 가는 국민들을 저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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