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말라죽지 않기 위해

by 센터 posted Apr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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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민수(청년유니온 위원장/센터이사)

 

 

하루 일당이 5억 원으로 계산되는 소위 ‘황제노역’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결국 이 노역은 중단되었지만, 당사자인 허재현 회장은 주급 30억 원 정도를 챙기며 벌금을 만회했다. 연봉이 아니라 주급으로 말이다. 일당 5만 원을 받아가며 하루를 살아내는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이 ‘나도 저 교도소에서 보름 정도만 일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름 정도의 노역비면 통장에 꽂아 넣고 어떠한 투자나 노동도 없이 이자 수익만을 받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만, 특정 인간에게 더욱 평등한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박탈감을 안긴다.
노동운동은 이 거대한 불평등에 맞서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대한 현 정부의 탄압은 지속되고, 손배와 가압류는 노동자의 삶을 옥죄고 있다. 더욱 슬픈 것은 이 노동운동의 현장에 함께하기 어려운 삶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청년실업률이 10.9%로 청년실업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7년 이래 사상 최대의 수치를 보였다. 50대 이상의 실업률이 호전되고 있는 것과 대단히 상반되는 추이이다. 뿐만 아니라 아예 구직 자체를 포기하는 ‘구직단념자’의 규모도 2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수준이나 증가했다.
청년 고용보다 심각한 문제는 노동시장 그 자체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단 청년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이들을 중심으로 주변부, 비전형 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같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노동운동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선배 세대와 달리 노동운동에 대한 집단적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체득한 청년 세대와 노동운동의 간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산별노조라 할 수 있는 금속노조의 경우, 2006년 조합원 평균 연령이 37.2세였으나 5년이 지난 2011년에는 5세가 고스란히 순증하여 42.6세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이라도 한 듯 민주노총에서 2010년에 작업한 〈민주노총, 20대에게 말 걸기〉라는 보고서는 4년이 지난 지금 더욱 무겁게 읽힌다.

“더욱 고민스러운 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과 주 신규가입대상인 청년-학생들 간의 관계이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학생층이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의제의 핵심 당사자들임에도 현재까진 한마디로 불통의 관계다. 여기에다 학생운동의 암울한 현실까지 겹쳐지면 이러다가 노조가 뿌리부터 말라죽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민주노총, 20대에게 말 걸기〉, 2010)

뿌리가 말라붙는 것은 알아보기 쉽지 않으나, 꽃이 시드는 것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부모 세대가 자식과 노인 세대를 동시에 부양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실과, 선배 노동운동 세대가 외로이 분투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현실이 겹치며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온다.
뿌리부터 말라죽지 않기 위해, 오늘의 노동운동은 미래의 노동운동에 어떤 메시지와 행보를 보여줄 것인가. 민주노총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청년세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여 ‘노동조합의 효능감’을 안겨줄 것인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깊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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