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갑오년을 기대하며

by 센터 posted Mar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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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봉화가 타올랐던 갑오년 푸른 말의 해를 맞았습니다. ‘앉으면 백산이요, 일어서면 죽산’이라 했던 그 비장하고 치열했던 농민봉기의 역사에서 오늘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숙고해 봅니다. 비록 장렬한 패배로 끝났지만 썩어빠진 탐관오리와 외적에 맞서 싸운 민초들의 아우성은 지금도 그대로 가장 소중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근대적 신분제도 속에서 노동의 산물을 송두리째 빼앗기며 최소한의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신음하던 농민들과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 특히 그 근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양산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시장 양극화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대표하는 사건이 동학농민혁명인 만큼, 세기를 달리 한 지금 반제·반봉건 투쟁의 그 시퍼런 결기로 돈이 제왕인 천민자본주의에 맞선 격전에서 끝내 싸워 이겨야겠지요.

 

‘설마’가 ‘역시나’가 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은 ‘설마’가 ‘역시나’가 된 한 해였습니다. 이 정부는 국제적 규범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적 상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매카시즘 류의 저급한 종북공안 놀음으로 일관하면서 반노동·반민생·반민주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불길한 예감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몸서리치도록 확인해 왔습니다. 창립 18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이 민주노총에 난입한 사태도 박근혜 정부의 계급적 본색이 가감 없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일 뿐 도처에서 인권과 노동권 유린이 자행돼 왔습니다. 핵심 국가권력기관이 총동원된 관권부정 선거 시비에 휘말려 합법적 정통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이기에,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정당한 합법투쟁마저 공권력으로 억누르면서 더욱 큰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작년 연말 유례없는 국민적 지지 속에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을 불러오기도 한 철도노조의 파업이 희망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정세를 반전시킬 대중투쟁과 정치권 내 흐름은 요원해 보입니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들도 파기 수준으로 후퇴했습니다. 2015년까지 공공부문 상시지속 업무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와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처우개선,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 고려 등 중요한 비정규 관련 공약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추진의지를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오히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경우 정규직화가 무기계약직화에 불과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민간위탁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통째로 배제되는 등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후퇴하는 양상이라 실제 공약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위장도급 내지 불법파견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던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면죄부를 준 고용노동부의 수시근로감독 결과에서 보듯이 재벌자본의 이해를 비호하느라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노동문제인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서 도외시해 왔습니다. 거기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예산이 국회 관련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새누리당의 반대로 대폭 삭감된 데서 확인되듯이 앞으로도 노동 관련 공약들이 수난을 겪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2014년을 관통할 우리의 자세
비정규공화국.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차별에 신음하는 나라. 삼성왕국. 일개 재벌회사의 총매출액
이 국가 수입보다 많은 기형적인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와 재벌을 대척점으로 하는 양극화 공화국. 정규-비정규, 대기업-중소기업, 남성-여성, 청년·노년-중장년, 내국인-이주민 등 빈부격차 심화와 맞물린 다양한 양극화로 고통 받는 나라. 1997년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압도적 영향 아래 무한경쟁·승자독식의 개미지옥으로 치달려 온 한국 사회. 이것이 바로 2014년 대한민국의 민낯인 자본독재 현실입
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비정규 문제는 갈수록 우리의 삶과 일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올해도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을 직시하면서 현실을 실제로 개선해나갈 수 있도록 힘껏 달려 나가야겠습니다. 현재 가장 뜨거운 투쟁 현안이 된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과 중앙대 청소노동자들로 대표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정부가 국정 핵심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 확충 대응 등 올해 시한폭탄처럼 터질 비정규 현안이 도미노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가 비정규 문제 개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만큼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외치고 투쟁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6·4 지방선거에서도 비정규 문제를 중심으로 한 노동 의제가 묻히지 않고 의미 있게 부각되고 쟁점화 될 수 있도록 비정규 주체들의 현장투쟁을 매개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부닥칠 난관이 힘겹고 만만찮을수록 근본적인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진정성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올해 저희 센터가 지향해야 할 정신과 방향이 재작년 출범한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출범선언문에 잘 담겨있어 옮겨봅니다.
하나, 우리는 강력하고 건강하게 도약해야 할 비정규노동운동의 밀알이 된다.
하나, 우리는 한국 사회 변혁의 기치 아래 노동운동의 재기와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나,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실사구시 정신으로 개선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하나,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억압 받고 착취 받는 민중과 연대하고 협력한다.
하나, 우리는 화합하고 단결하여 사업장과 지역을 넘어선 연대운동의 모범을 만들어나간다.


단결과 연대만이 승리로 가는 길
2014년 한 해도 노동자들에겐 고난의 한 해가 될 전망입니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와 심화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가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담을 더욱 강제해 올 가능성도 큽니다.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슈퍼갑인 재벌 자본의 위세는 막강하고 민주노조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반감은 대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문제 개선의 여지마저 막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당사자들이 자신의 단결된 힘으로,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시민사회와 연대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뿌리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는 법입니다. 센터는 올해 위기의 노동운동과 비정규운동을 되살리는 잔뿌리가 되어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추상적 담론을 뛰어넘어 실사구시적인 관점으로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백방으로 뛰어다닐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올 한 해 내내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전진하면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입니다. 어기영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봉기로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글│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센터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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