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 100호를 맞으며, 운동의 전망을 생각한다_조돈문

by 편집국 posted Jul 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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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이 100호를 내놓는다. 발간 일자도 정상화되었고, 상대적으로 더 잘 읽히는 매체가 되었다. 비로소 <비정규노동>이 생존 과제를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노동>이 100번 출간되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 왔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노동권 보장도 거부당한 채 파업투쟁, 고공농성과 노숙농성, 분신과 자결 등 온갖 방법으로 절규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전개되어 왔지만, 투쟁은 성과를 내기 어려웠고 조직력도 보전하지 못한 채 무너지기 일쑤였다. 기륭전자 투쟁에 이어, 최장기 투쟁의 기록을 갱신한 재능교육 투쟁이 비정규직 운동에 많은 숙제를 안겨주고 있지만 운동의 전망을 열어 주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현대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속적 파업투쟁을 이어가고 있고, 불법파견 판정 당사자인 최병승 동지는 천의봉 동지와 함께 200일이 넘게 철탑농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는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한 달 넘게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거부에 맞선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의 결과는 향후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넘어 전체 간접고용비정규직 문제가 처리되는 사회적 기준을 설정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노동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문화계, 학계 등 각종 사회단체들이 결집하여 사내하청 대책위를 구성하며 비정규직 투쟁 연대에 나섰지만, 정작 민주파 집행부가 복원된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그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아직껏 사내하청 대책위를 외면하고 있다. 파견법 폐지와 파견노동 철폐를 되뇌던 조직들이 대법원에서 판정받은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연대조차 거부하는 기괴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가 하루하루 새롭게 쓰여지고 있듯이,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도 다시 쓰여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노동계급이 두 개의 계급으로 분립하며 계급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 하나의 통합된 계급으로 계급형성의 길로 나아가게 될지, 민주노조운동은 지금 그 기로에 서있다. 이 엄중한 현실은 <비정규노동>이 생존 과제에 안주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비정규노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운동 활동가들이 주체가 되어 함께 만드는 유일무이한 독보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비정규노동>에 부과하는 것은 두 가지 역할이다. 하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키우는 것이다. 전망 없는 소통은 자족적 폐쇄성에 불과하고, 소통 없는 전망 논의는 소아병적 엘리트주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두 경계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노동>은 간혹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문을 억지로 열게 하여 쓰여 진 자술서 같은 글들로 채워지기도 했지만,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소통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비정규직 글쓰기 프로그램인 “쉼표하나”가 나름대로 궤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비정규노동>이 소통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앞으로도 더욱더 잘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이 운동의 전망을 키우는 역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노동>은 때로는 연구보고서 요약문 같은 설익은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고, 때로는 실천적 역량과 전략적 고민이 부족한 격변의 성명서 같은 글들을 싣기도 했다. 운동이 전망을 잃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노동>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도한 희망 부풀리기 보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초한 전략적 고민들을 담아내는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비정규직 주체 형성의 역정을 포기하지 않고 투쟁 단위들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운동의 전망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비정규노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서로 경험을 공유하며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 비정규직 주체들이 스스로 대안과 전략을 모색하고 논쟁하면서 운동의 전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게 소통의 역할과 전망의 역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정규노동>이 생존 과제에 안주하지 말고 성공 과제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고, <비정규노동> 100호는 바로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글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겸 이사장 / 조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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