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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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센터 소장



정신 건강을 저해하는 고집불통 정부


작년 12월 29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기간제사용 기간 연장과 파견 허용 업종 확대가 핵심 내용이다. 연령대 제한이 단서로 붙었지만 실제로는 평생 비정규직 로드맵이 되기 십상인 대책이다. 게다가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뜬금없이 덧붙였다. 진짜 속셈은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 필요 없이 정부 시행령과 규칙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내용들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도의 성동격서 전략인가싶다가도 단순한 확신범처럼 보이기도 하니 종잡기가 어렵다. 참 대책 없는 고집불통 정부다. 설마 했는데 그대로 강행한다.

지금은 무슨 얘기를 해도 소귀에 경 읽기식이 되니 무력하고 피곤하다. 이러다 짜증이 몸에 배일 것 같다. 정부 발표엔 다리를 외로 꼬고삐딱하게 듣는다. 나쁜 적과 싸우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닮아간다는말에 정신이 퍼뜩 들기도 하지만, 매일 악재를 생산하는 정부 앞에선더 깊은 성찰의 여지가 없다. 비정규운동을 하면서 합리적인 공론의장을 만드는 게 내 소박한 소망 중 하나인데 이러다 정말 내 생전 꿈으로 그치고 말겠다 싶어 요즘은 가끔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여전히 유효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


어쨌거나 소득 주도 경제성장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화두로 붙들고있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어떨까. 그이가 비정규 노동단체에서 한달만 일해 본다면 달라질까. 나도 대통령 자리로 가면 엇비슷하게 변할까. 역지사지는 아니고 순전히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상상의 나래를펼쳐본다. 내가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가장 먼저 2005년 4월 14일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을 떠올릴 것이다. 비정규보호법으로 불리며 사회적 논란이 대단히 컸던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그 유명한 권고안. 유신 독재자의 딸로 불리며 맘고생이 적잖았을 박근혜 대통령 입장이라면 고졸 인권변호사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인 노무현 대통령을 노동문제에서 한번 뛰어넘어 볼 욕심이 생길 법 하니까.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기부리며 자신만만해 하다 걸려 넘어진 허들이니까. 노동시장 양극화 구조를 바꿀 결정적 기회를 걷어차 버린 아픈 상처가 생채기처럼아직도 남아있는 그 허들을 들여다보면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제대로 된 길로 나갈 수도 있을 테니 나쁠 거 없다. 자 국가인권위원회는 뭐라고 권고했을까.

우선 “정부의 비정규 법안만으로는 비정규직의 지나친 확산을 억제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며, 노동인권을 보호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라고 밝힌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헌법과 세계인권선언, ILO헌장과 협약 등의 원칙과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사용을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근로조건의 차별적 처우의 판단기준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낸기간제법안과 관련해 ▲ 기간제 고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와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며, ▲ 사용사유 제한이나 사용기간 제한을 위반한 경우 및 서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며, ▲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다. ▲ 파견 허용 업종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며, ▲ 불법파견의 경우 즉시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 파견노동자가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파견허용업종 부분 인정을 제외하면 민주노총의 요구와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지금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내용은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더 절박하게 유효하다. 정부 통계로도 최초로 600만 명을 넘어선 비정규직 규모와 비정규직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단 한 해도 줄어들지 않고 역진불가 양상으로 심화되어 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만 봐도 그렇다. 출구 전략으로 불리는 기간 제한 방식의 정규직화는 그 입법 취지는 바람직했지만 풍선 효과로 불리는 역효과가 더 컸다. 초단기 계약이 횡행하고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특수고용 비정규직까지 전체 업종으로 확산됐다. 더구나 늘어난 무기계약직으로 비정규직 비율은 소폭 줄어들었지만,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 문제도 현재 시점에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다시 쟁점으로 부각됐다. 고용 보장은 진전됐지만 처우 개선은 최소화됐기 때문이다. 결국 지나치게 많고 차별이 구조화된 데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2% 내외에 불과한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정규직 대책은 더 이상 임기응변이나 대증요법으로는 곤란하고 근본 처방이 긴요하다.



위민(爲民)의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하길


노무현 정부의 교훈을 이명박 정부는 무시했고 노동시장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이전 정부와 똑같은 비판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 현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이란 의미 있는 방향 제시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란 우선 과제와 잘 맞물리기만 한다면 뜻밖에 성과를 낼 수도 있다. 따져보자. 사용주들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낸 대통령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더 수월한 정치적 조건에 있기도 하다. 노동자 서민의 비루하고 참담한 처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결단 못할 리 없다. 상대적 박탈감에 고통 받으며 하루하루의 안위를 좇아 사는 수천만 인민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을 귀만 있다면 말이다. 정치는 결국 위민 아닌가. 올바로 된 비정규직 대책만큼 중요한 2015년의 위민 정책이 또 있겠는가.

객쩍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소모적 논란으로 치닫지 말고 정말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고 해결되는 방향으로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실마리를 풀어주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그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지지하지 않고, 앞으로도 지지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장삼이사들의 생존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제 몫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생존의 벼랑 끝에서 몸부림치며 최악의 경우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숱한 이름 모를 비정규노동자들을 떠올리면 누가 좋은 정책을 낸들 무엇이 대수겠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꼭 부엉이 바위 위에 선 노무현 대통령의 심경으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부터 심사숙고해 주길 바란다. 그런 다음에나 노동계와의 진지한 대화와 협상도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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