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애, 비정규직 그리고 나의 사진

by 센터 posted Dec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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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상엽(사진가/센터 이사)




축소_장애인들의 투쟁.jpg


죽음으로 열린 공간. 세종은 백성의 말글이 가진 장애를 안타까워했지만, 우리는 타인의 신체적 장애마저 무관심하다. 예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주영 씨(2012년 사망) 노제에서 본 이 풍경은 오랫동안 찍은 이를 아프게 한다. 그녀는 집에서 일어난 작은 화재도 피하지 못하고 참사를 당했다. 우리가 전보다 나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누가 확신하겠는가? 광화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여전히 온전한 우리에게만 열린 듯하다. 죽음으로 얻은 공간이다. 아프다. 그리고 얼마 후 ‘세계 장애인의 날’ 집회가 다시 열린 광화문 광장은 겨울비로 젖었다. 고 김주영 씨 사건 여파로 이날 장애인들에게 차가운 비 이상으로 비장한 것이 있었다. 한국에는 200만 명의 장애인 유권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차별을 당하는 사회적 장애인들도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들리진 않지만 분노하고 소리치고 울고 있다. “제발 좀 들어다오.” 비에 얼룩진 내 사진에는 그렇게 새겨졌다.



조작된 사진의 한계
정치인 나경원이 장애인 문제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중증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그녀의 사진이다. 사진으로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나경원 측은 원래 연출된 사진을 위한 장비 논란에 대해 시설 측 사진가의 요구라 했지만, 증언한 측근은 오히려 나경원과 친한 사진작가가 연출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한 상태였고 사진기자들이 덤으로 취재를 한 것이라고 자폭해 버렸다. 즉 모든 것이 사전에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만, 진실이 남는다. 나경원-사진가-장애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진실 말이다. 아마도 사진작가는 이런 사진을 원했을 것이다. 유진 스미스가 일본에서 찍은 미나마타 환자 도모코의 사진 말이다.


도모코.jpg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이고 공해병을 환기시키는 데 일조한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당시 일본의 관습을 벗어나 있었다. 장애인의 나체를 온전히 노출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성모와 예수를 연상시키는 이 피에타 풍의 사진은 경쟁적으로 공해병을 취재하던 구와바라 시세이를 무릎 꿇게 했다. 그 사진작가는 나경원의 모습 역시 이러하게 찍었을지도 모른다. 시설에 예약을 하고 사람을 물색하고 조명장치를 미리 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이런 사진은 만들어질 수 없다. 그 비슷하게 흉내를 낸 상업 화보쯤은 가능해도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공해병 취재로 야쿠자에게 칼을 맞아 장애인이 된 유진 스미스와 나경원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출된 사진을 찍자고 한 사진작가 사이에는 한없는 거리가 놓여있다.



진실과 선전의 사이에서
그래서 생각했다. 사진에도 좌파 사진가가 존재하는가? 폴 스트랜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진가이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 폴 스트랜드의 성향을 느낄 수 없다. 그는 미국 사회주의 동맹의 사진가였고, 그러한 성향의 사진가들이 모여 ‘포토리그’라는 집단을 만들었다. 그는 러시아의 아이젠슈타인에게 영화를 사사 받길 원했는데 매카시 열풍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를 떠돌았다. 그를 결국 망명객으로 만든 ‘포토리그’는 어떤 집단인가? 지금까지 사진사에 나타났던 가장 강력한 정치 사진 그룹은 뉴욕에서 1936년부터 1951년까지 활동한 ‘포토리그’였다. 루이스 하인, 아론 시스킨드, 헨렌 레빗, 잭 매닝 등이 활동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진은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 사진가들에게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참된 이미지를 기록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다. 오랫동안 사진은 조형주의자들의 헛된 영향 때문에 고통 받아왔다. 포토리그는 미국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려는 정직한 사진가들 손에 카메라를 되돌려 주려는 것이다.” 좌파 사진가 그룹인 ‘포토리그’는 1930년 ‘국제노동자구조협회’의 문화 활동 그룹으로 시작됐으며 1936년 영화 그룹과 결별하고 순순한 사진가 단체가 됐다. 이들은 《포토노트》란 이름의 기관지를 발행했으며 에드워드 웨스턴은 “오늘날 미국 최고의 사진 잡지”라 평했다. 이 발간에는 미국현대미술관의 버몬트 뉴홀과 폴 스트랜드, 존 베이천 등이 참여해 자문했다. 이들은 뉴욕에 찾아 온 사진가들을 초빙해 청강료 없는 무료 강연을 열었다. 이 강연자는 로이 스트라이커, 베러니트 에벗, 안셀 아담스, 에드워드 웨스턴, 도로디어 랭, 폴 스트랜드, 루이스 하인 등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진보적인 학습, 사진 취재, 전시, 기관지 발간, 사진 아카이브 구축, 강연 및 대중 교육이었다. 이들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매카시 광풍과 빨갱이 사냥 때문이었다. 당시 법무장관 톰 클락은 103명의 회원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했고, 조직은 불온단체로 규정됐다. 하지만 ‘포토리그’에서 사진을 공부한 사람이 1,500명 이상이었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사진가들 역시 많았다. ‘포토 리그’는 사라졌지만 그 사진의 정신은 오늘날 다큐멘터리 사진 정신에 깊게 스며있다.



표리부동함을 넘어
사실 ‘포토 리그’에 속한 사진가 개인 개인의 사진 한 장으로 사진가의 정치적 입장을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가의 작업적인 맥락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한 장이 아니라 다수의 사진, 편집된 사진 속에서 그 정치적 문맥을 읽어낸다. 사진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불편부당한 매체가 아니다. 모두 사진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혹시나,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위선에 대한 나의 답이다. 그렇다면 사진 정치학도 있는가? 있다고 본다. 나 역시 명확한 정치적인 입장을 갖고 사진을 발표한다. 그 뿌리는 폴 스트랜드와 루이스 하인 등이 속했던 ‘포토리그’에서 출발한다.


견습공.jpg

폴 스트랜드의 대표작〈견습공〉

 

하지만 사진이 정치적인 힘을 가지려면 이념보다는 팩트에 충실해야 한다. 사진가의 인위적인 연출 또는 상관성이 없는 소재를 한 프레임에 넣어 상상의 팩트를 만드는 그런 행위는 나경원의 예에서 볼 수 있다. 거짓 정치를 하는 사진이다. 내가 사진이라는 매체로 나머지 99%인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의 1%가 99% 이상의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늘 미디어가 없는 쪽을 선택하게 돼 있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대변할 것이냐가 사진가의 중요한 화두가 된다. 사진가는 분명히 노동자 계급이 아니다. 인텔리겐치아에 가깝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처럼 행동한다. 사실 조직화만 되지 않았을 뿐, 늘 발로 뛰어다니고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육체적으로 부대끼기 때문에 사진가의 삶은 노동자 계급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 편에 서서 동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결과물들이 1% 자본과 권력의 미디어 안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이야기를 대변했다고 노동자들이 사진가들의 사진을 사준 역사는 없다. 이들 역시 작품을 살 돈이 없다. 결국 사진가들의 몸과 정신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따로 논다. 그렇다면 사진가들이 사진의 이상과 밥벌이를 함께 해결할 방법은 있는가?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이런 죽음의 행렬 속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를 알리고 유통시킬 ‘99%’들의 미디어가 존재한다면 가능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사진가와 대상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진은 여기서 찍고 저기 가서 판다면 미래 그 작가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진이 표리부동하다고 사진 찍는 사람마저 표리부동해선 안 되지 않겠는가. 언론사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힘겨운 몸짓의 장애인들과 그들을 사진으로 담는 나는 함께 차가운 겨울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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