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나는 절박하다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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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구권서(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 공공서비스지부 지부장/센터이사)




생각 하나,

글을 써달라는 주문에 훌쩍 지나가 버린 날들을 더듬어 보자니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느 새 나이에 걸맞게 머리도 벗겨지고 눈 밑의 주름도 짙어져 결국,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은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로 낙관주의자로 자임하면서 살아왔지만 되려 비관적 현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남들이 인생의 황금기라는 삼, 사십대를 노조 활동과 함께 보냈으니 한 번 되돌아 볼 때도 된 것일까.
벌써 십 년 전 얘기. 노조 활동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고교 동창회에 거의 못 나갔다가 근 이십년 만에 만난 꽤 친했던 동창이 근황을 묻는다. 길게 설명하기 그래서 명함을 건넸더니 역시 “아직도 이런 거(노조간부) 하니?” 하는 반문이 돌아왔다. 속 좁게도 짜증이 났고 나는 술을 먹었다.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이런 거’를 이렇게 오래하는 거냐는 나름 안쓰러움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지만 자꾸 짜증이 났다.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내내 ‘이런 거’라는 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실 애초부터 ‘이런 거(!)’를 지탱해온 힘은 특별한 사명이나 소명의식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이리도 척박한 삶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해 모르면 몰라도 잘 아는 처지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어쩌면 팍팍하고 힘든 삶에 놓인 서로에게 얄팍한 생각이겠지만 사실 내게 삶을 지탱해 주었던 위안은 모든 사람의 삶이 공평하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부처가 인생고해(人生苦海)라 했겠는가. 그래서 오랜 만에 만났던 동창 녀석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상상을 해 봤다. 
“아직도 이런 거 하니?”
“응, 근데 너는 살 만해?”
“뭐, 그렇지 뭐”
“응, 나도 너처럼 똑 같아(그래도 너 보단 좀 낫다고 생각해….ㅋㅋ)”


생각 둘,

‘사라~ㅇ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 이렇게 스스로 묻고 눈물의 씨앗이라 자문자답하는 뽕짝 노래가 있었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용역노동자들에게 ‘눈물의 씨앗’이야 말로 바로 ‘간접고용’ 문제라 너스레를 떨며 조합원 교육 때마다 나는 단골 소재로 써 먹곤 했다.
2000년도 삼창프라자의 집단해고 투쟁, 2001년도 시설노조 설립, 그리고 법조타운 법원마당에서 겁도 없이 법원의 시설관리노동자들과 파업출정식 집회 한답시고 강남결찰서 공권력과 맞짱 뜨고 석 달이 넘도록 투쟁했지만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해고자만 만들었던 2002년도 투쟁, 파업 첫날에 조합원 전원이 연행되고 조직부장이던 이상선(법조타운 해고자)과 지부장이 구속됐던 2003년도 굿모닝신한증권 투쟁, 대우그룹 몰락 후 2006년도 대우빌딩 매각과정의 ‘대투위’ 집단해고 투쟁, 그리고 2005년도 칠곡군청 생활쓰레기 수거 민간위탁 노동자 집단해고 투쟁으로 인한 대구에서의 구속, 2011년도 홍익대 투쟁 등…. 지난 십 몇 년 동안 현장의 굵직한 사건을 짚어보니 대략 이렇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분노와 눈물의 굽이굽이가 더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간접고용이라는 사회적·제도적 모순이야 말로 ‘눈물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광운대, 중앙대, 서강대 기숙사, 카이스트, 서울여대, 서울시립대 등 서경지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정신없이 신규 조직과 현안 투쟁을 전개해 왔다. 작년 10월부터 7개월 동안의 교섭국면과 고려대, 경희대와 인덕대의 파업투쟁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집단교섭은 지난 27일에 조인식을 맺고 서울시립대 고용보장 투쟁, 서울여대의 정리해고 투쟁을 마무리 짓게 되어 이제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11년 ‘따뜻한 밥 한끼’ 캠페인과 함께 대학교 간접고용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집단교섭을 통해 통일단협을 쟁취하고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의 인력권을 벗어나고 있다. 양적으로는 900명으로 출범한 이후, 4년 만에 총 35개 분회, 2,600명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선 굵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초기업, 초업종, 지역지부’의 전망을 안고 출범한 서경지부는 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과 투쟁의 성과를 발판으로 한 걸음 도약해야 하는 조건에서 여전히 많은 고민과 한계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체를 겪고 있는 지역중심의 산별노조(지역노조) 운동과도 깊숙이 연관된 과제라 할 수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세례를 받아 88년도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의 폭발적인 민주노조 설립국면에서 기업별노조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어서 의문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렇게 시작해 97년 IMF 사태를 맞아 아웃소싱 외주화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설관리노동자들의 벼랑 끝 위기의식은 2001년도 업종노조(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고, 시설관리노동자는 ‘비정규직’이라는 자기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도 산별노조의 (초업종)지역지부로 다시 출범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 온 서경지부는 소설 데미안의 글귀에 나오듯, 자신의 ‘안온한 세계(알)’를 끊임없이 파괴하지 않으면 그 ‘알’ 속에서 썩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일까. 오늘의 서경지부는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될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생각 셋,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이 세어진다. 현장 노동자들을 성별과 나이에 따라 젊은 여성, 나이 든 여성, 그리고 젊은 남성, 나이 든 남성 이렇게 넷으로 구분한다면 그 중에 제일 조직하기 어려운 대상은 5, 60대 남성이었다. 대체로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이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주관과 고집이 드센 세대들이 지금 민주노조 운동의 전면에 버티고 있는 것도 현실이 아닐까. 음, 그러고 보니 나야 말로 전형적인 50대 중반에 들어섰구나 하는 자각에 이르렀다. 그래,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자신을 회의하고 동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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