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최우수상]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들의 소망

by 센터 posted Feb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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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들의 소망

 

최민자 대리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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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아픔을 안고 길 잃어 세상을 한탄하며, 또한 나 자신을 미워하며 세상을 방황할 때쯤으로 기억된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생활을,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날 또한 거리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을 때 어디선가, 대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일산 라페스타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이 양손에 때론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쳐다보며 웅성웅성거리며 바쁘게들 움직이는 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별로 말도 없고 도도했던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어보니 대리기사라고 했다. 순간 대리기사? 대리기사가 뭐 하는 거지?’ 하며, 많은 의구심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에게도 대리기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내 나이 48세 그리고 여자인데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이 제한 없고, 혼자서 하는 프리랜서 같은 일이라 했다. 정말 멋져 보였다. 가입 방법을 물어보니 어느 대리사무실을 알려주었다. 무작정 찾아가 나도 할 수 있냐 물어보니 간단하다며, 운전면허증과 가상계좌에 입금만 하면 다음날부터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로 가입하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고심을 하며 다음날부터 밖으로 나와서 일을 시작한 곳이 행주산성이었다. 식당가가 있고 한적하여 오후 2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해서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지리도 제대로 몰라 당황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난 용기를 갖고 한 콜 한 콜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대리기사로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이 흘렀을까? 그럭저럭 많은 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매출을 올리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던 중 뜻하지 않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손님이 갑자기 자기와 같이 놀자는 둥 오늘 일당 줄 테니 어디 가서 쉬었다 가자는 둥 갑자기 손이 어깨에 올라오는 일 등 난감한 상황이 생기곤 하였다이 일이 과연 내가 가야 하는 길인지싶어 또 한 번 난관에 부딪혔다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던 중 어느 법인대리기사가 법인대리기사를 모집한 다고 얘기를 해줘서 법인에 가입했다. 일반기사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대리 요금부터 해서 고객 응대하는 방법까지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법인교육을 3,4분기로 받음). 법인기사를 하다 보니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모두 조심하게 되며 또한 매출이 일반대리와 달리 조금 더 높은 금액이다 보니 일하는 데있어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법인기사에 매진하며 일하고 있을 때 또다시 난관에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여성기사 배차금지였다. 콜을 잡고 수행하려면 갑자기 상황실에서 여성기사는 배차제한이라는 말과 함께 호출 창을 없애거나 아예 콜창 자체가 보이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어느날 콜을 잡고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법인 사무실이다. 다짜고짜 한다는 소리가 여성기사 배차제한이어서 콜을 뺀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콜창에서 콜을 빼 버리는 상황도 생겼다. 순간 고속도로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멈추어져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우도 있었다. 고객을 만나러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캔슬 맞는 경우는 법인기사 10년 만에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너무도 기분이 상하여 여기저기 상담하던 중에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동료 여성대리기사가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에 가입하라고 했다. 가입해서 함께 싸우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똑같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던 동료여성기사는 먼저 노조에 가입해서 노동조건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강성 노조라는 언론의 보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선뜻 가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노동조합에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는 동료 여성기사의 모습을 보고 나도 여성기사의 노동환경을 함께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가입했다.

한 달 두 달 노조 교육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아니, 알고도 당해야만 했던 일들을 전국대리노조에서 협력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그간 내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게 너무나 창피했다.

 

대리노조 가입과 동시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나를 한층 더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받았던 고용보험·산재보험법 등 나 혼자 알기에 아까워 홍보대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모이면 주변 모든 기사들에게 전국대리노조에 참여하라는 말과 함께 홍보에 열을 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입가에 보일 듯말듯한 미소가 나 자신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 오늘도 기사들만 만나면 열변을 토해낸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여성 대리기사들은 반드시 이 문제만큼은 우리 선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기에 오늘도 여성기사 배차제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오기로 콜을 수행하고 있다. 대리 12년차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뛰는 만큼 수입은 늘어나며 게으른 만큼 낙오되기에 긴장에 더 긴장하며,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기약 없는 콜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플랫폼노동자라고 불리지만 언제쯤 정부에서 인정받고 정식으로 대리운전법이 만들어질지는 모르지만 내가 하는 이 직업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리기사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의 천국이며 음주 사고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것이다. 바라건데 반드시 비정규직, 특수형태노동자, 프리랜서, 온라인기반 플랫폼노동자가 모두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정식으로 근로자기 준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이길 원한다.

 

여성법인대리운전기사들의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은 위풍당당여성대리기사모임이다. 지금은 두 명으로 시작해서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전국의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노동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배우면서 함께 맞서 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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