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악'] 판도라의 상자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글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센터 편집위원



9월 13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9월 13일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노동 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야합’이라는 많은 이들의 비난을 듣고, 분신이라는 처절한 저항을 넘어 타결된 합의였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임금피크제, 기간제 확대 및 파견업종 확대라는 ‘재벌천국, 노동지옥’을 연 이 합의이후 정부의 공격은 거세다. 


9월 16일 오전 새누리당은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기간제법),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파견법) 등 5개 법률 개정안을 ‘노동 시장 선진화법’이라는 이름으로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는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 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 정부의 행정조치에 병행하는 여당의 입법조치로서 통상임금 축소, 노동 시간 연장 및 유연화(이상 근로기준법),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통한 정규직 전환 기회 박탈(기간제법), 파견업종 확대 및 불법파견 합법화(파견법) 등 노사정 야합안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휴일근로·연장근로 중복할증 금지, ‘뿌리산업’ 파견업종 허용 및 파견징표 축소해석 등 노사정 야합안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개악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2014년부터 그렇게 열고자 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이제 열린 것이다.

특집1.오진호.jpg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까지 


2014. 9. 노사정위원회에 ‘노동 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 설치, 노동 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사회적 논의 시작 

 2014. 12.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발표, 노동 시장 구조개선 특위의 5대 의제 및 14개 세부 과제 확정

2015. 1. 노동 시장 구조개선 특위 전문가 그룹별 논의 2015. 3.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 중 우선 과제 선정   우선 과제 : 노동 시장 이중구조 해소, 임금·근로 시간·정년 연장 등 현안 해결, 사회안전망 정비

2015. 4. 노사정 협상 결렬   2015. 5.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안) 발표 : 기간제 근로자 고용 안정 가이드라인, 사내하도급 근로자 근로 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 보호 가이드라인

2015. 6. 17 정부, 제1차 노동 시장 개혁 추진방안 발표 : 5대 분야 36개 과제

2015. 7. 22 정부, 청년 고용 절벽 해소 종합대책 발표

2015. 7. 28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 특위 결성 및 1차 회의

2015. 8. 6 박근혜 대국민 담화문 발표

2015. 8. 26 한국노총 노사정 협상 복귀 결정


정부는 2014년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보수언론은 이 법을 ‘장그래법’이라 이름붙이며 힘을 실어주려 했으나 부딪힌 것은 여론의 격렬한 반대였다.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늘려달라고 했냐?’는 사회적 여론에 밀려 추진하지 못했던 비정규직 종합대책. 결국 노사정 합의가 결렬되자 정부는 이번에는 ‘청년 고용 절벽 대책’을 들고 나왔다. ‘청년 고용’이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우리 아들 딸들의 일자리’를 위한다며 임금피크제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부었던 정부의 ‘청년 대책’의 실내용은 실효성 없는 일자리 ‘기회’ 대책이었으며 ‘청년 고용이 심각하다’는 명분만 이용해 공공성을 파괴하고, 장년층의 임금을 깎겠다는 내용이었다.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을 앞세운 정부가 노렸던 것은 따로 있었다. 8월 6일 대통령이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 직후 열린 ‘비정규직 관련 입법 방향 전문가 토론회’가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고용노동부는 현행 2년인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35세 이상에게는 아예 없애 평생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과 현행 32개 업종으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법에 대해 55세 이상과 고소득 전문직에게 모든 업종에서 마음대로 파견을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판도라의 상자1 : ‘일반해고’라는 이름의 일상적인 해고


9월 16일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는 ‘근로 계약의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는 문구를 넣어 정부와 기업이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는 했지만 그 협의는 일종의 절차일 뿐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 이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저성과자라고 낙인이 찍혀 해고된 노동자들은 소송에서도 불리한 결과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판례를 통해서 해고가 가능한 사례들을 축적하고 이것을 이후 법으로 강제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는 ‘근로 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합의함으로써 이후 기업들이 채용과 인사 평가, 임금과 승진, 배치전환, 해고 등 전반적인 근로 계약에 대하여 법을 개악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일상적인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출발하였지만, 이후 근로 계약 전반에 대한 개악을 통해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성과’에 따라 인사평가를 하고 배치전환도 하고 승진도 시킬 수 있게 되면, 모든 부분에서 노동자의 집단성은 붕괴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지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2 : ‘임금피크제’를 빙자한 직무 성과급제 전면 도입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는 ‘임금피크제 및 임금 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단체 협약 및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고 표현했다. 정부는이 합의로 임금 체계를 직무 성과급제로 전환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직무와 성과를 결정하도록 하는 직무 성과급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개별로 관리하여 집단성을 해체하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결정하게 하는 구조이다. 이번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 규칙 변경 요건 완화를 빙자하여 이제는 임금 체계를 보다 쉽게 개편할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이번 합의에서는 ‘단체 협약 및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고 밝혔다. 단체 협약은 노사 간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기업의 인사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포함된 단체 협약을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이제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위해 단체 협약에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인정된 경우 취업 규칙을 일방 변경할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기업이 일방적으로 직무의위계를 결정하고, 성과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노동조합이없는 중소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유일한 보호막인 취업 규칙을일방이 변경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말로는 ‘취약 노동자들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보호 장치를 해체하는 합의이다.


판도라의 상자3 :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법 개악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에는 “기간제 파견근로자 등의 고용 안정 및 규제 합리화를 위해서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서 공동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진행하며,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의결 시 반영토록 한다”고 되어있다. 이 때의 ‘규제 합리화’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허용 업종을 고령자에 한해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파견 허용 업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중간착취도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합의 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토록 한다’는 문구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 내용을 법안으로 만들 때 국회 안에서 야당의 반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노사정위원회가 그 합의의 주체인데, 이미 정부가 만들어놓은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원청의 책임 인정’이나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은 아예 논의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정부의 주도대로 일방적인 입법 절차를 밟겠다는 의미이다. 말로는 청년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을 위한 합의라고 하지만 비정규직 양산의 제동 장치들을 하나씩 풀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일 뿐이다.


특집-오진호 원고 추가사진.JPG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노동 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의 야합에 대해 규탄 기자 회견을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었다.


‘청년’, 쓰다가 버려지다


정부는 말로는 ‘청년 고용 대책’을 앞세우고, ‘상생협력’이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문구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말만 있을 뿐 실효는 하나도 없는 대책들이다. 청년 고용 확대는 모두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업에게 신규 채용에 대한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이 당연히 뽑아야 할 신입사원을 채용할 경우 각종 지원과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마찬가지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나 동반성장을 언급하지만 원청 대기업에게는 어떤 책임도 부과하지 않고 ‘노사정이 부담 분담’이라는 식으로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 대책’도 이전 대책의 반복일 뿐이다. 게다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동반성장이라고 하면서 내놓는 대책은 부품업체들과의 동반성장이 아니라, 사내하청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정책이다. 사내하청은 협력업체가 아니라 원청 대기업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동반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사내하청을 합법화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과 교육 훈련, 노동 조건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이 결정하겠다


9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며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과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표가 무섭게 김무성 대표는 대기업노조를 비난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국민들을 향해 선포한 노동 개혁이 정말로 청년들과 비정규직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법적 보호 장치마저 해체하자는 것일까. 정부의 공세는 거세고, 10월 국회에서 많은 것들을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이제 이에 맞서는 역습을 시작해야 한다. 과거 신화에서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있는 것은 ‘희망’이었다. 정부와 한국노총이 열어버린 이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 있을 것은 우리의 연대와 저항이다. 이제 사회적으로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서는 국민 투표를 시작하자. 이 투표는 전국에 1만 개의 투표소를 설치해 청년들에게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국민 투표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 파견업종 확대, 사내하도급의 합법적 사용 추진 등 박근혜표 노동 개혁에 대해 국민들이 직접 선택하게 할 투표다. 저들의 손에, 저들의 입맛대로 강행하는 오만방자함에 이제는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