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대상] 거위의 꿈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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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호 병원 노동자


 

겨울이 막바지에 들었나 보다. 바람이 엊그제와 다르게 찬 기운이 많이 누그러졌다. 달력으로는 아직 2월의 끝 무렵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출근할 때와 다르게 왠지 산뜻해지고 싶은 날씨다. 병원 문을 들어서며 어제 노사협상에서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결과가 궁금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나오는데 앞 번 근무자가 자못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에이! 이번에도 우리 상용직 요구는 꽝이야.”

동료의 표정에서 어제 협상 결과 내용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지부장님한테 상용직 처우 개선 힘써달라고 했고, 아직 협상 중이니 더 지켜보자.”

“에이 씨벌! 매번 해봤자 정규직 자기들 것만 챙길 줄 알지. 언제 우리 같은 상용직 신경 쓴 거 있나. 너는 열 안 받아? 업무와 관련해서 차이가 나는 거야 인정하지. 그런데 정규직은 가족수당이고 아이들 보육수당이고 다 나오는데 우린 왜 안 주는 건데? 상용직은 어디서 주워온 거지새끼야.”

“그게 사측이 나쁘지 조합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게 조합을 대변했지만, 나 역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용직. 내가 일하는 병원에는 정규직과 상용직으로 직제가 구분되어 있다. 상용직은 정규직 임금의 70여 퍼센트 정도 받는다. 정규직은 매년 호봉이 인상되지만 상용직은 호봉 자체가 없다. 직급수당이라고 해야 쥐꼬리만큼이고 정규직과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중에서 제일 화가 나는 것은 가족수당이나 보육수당처럼 업무와 관계없는 복지 차원의 수당도 상용직은 제외되는 것이다.  


퇴근 후 쓰린 맘을 달래려 술 한 잔 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들어가면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취기가 올라왔다. 몸과 맘은 지쳐있었다. 집 거실에 불이 켜있다. 가장家長이 술을 한 잔하고 들어올 때 혹여 넘어지기나 할까 걱정되어 불을 켜놓고 잠들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고루고루 잘난 놈 못난 놈 가리지 않고 비추고 있었다. 

문득 지난 20대 청춘을 훌쩍 보낸 목재공장 생각이 났다. 월급도 많지 않고 남들이 공돌이라 뒤에서 쑥덕거려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차별은 없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그런 구별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형, 동생이 되면 그뿐이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가난했고 회사도 노동자를 더 쥐어짰지만 노동자들은 하나였지 결코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어느새 봄이 왔다. 진달래꽃이 한창 피어 곳곳에서 진달래 축제가 열릴 즈음 내게도 생각지 못한 기회가 왔다. 정신과 병동에서 정규직이 그만둔 빈자리를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되었다. 옮겨간 곳은 정규직 간호조무사 TO이고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상용직인 나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정규직이 되는 목표만이 눈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였다. 목표가 생기니 마음이 급했다.


다음날 간호조무사 학원을 알아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학원비가 200만 원이었다. 매달 빠듯한 살림에 며칠을 고민하다 자격증을 따서 정규직이 되는 것에 투자한다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결정했다. 자격증은 학원에서 이론 수업과 현장실습으로 정해진 시간을 이수하여야 시험을 볼 수 있고 시험에서 총 점수 6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나이 40대 중반에 이제 갓 사회를 나서는 20대 초반 아이들과 함께 학원 수업을 듣고 현장실습을 해야 했다. 학원에서야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니 창피한 것을 무시할 수 있지만, 실습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곳 병원에서 정규일 마치고 다른 부서에 가서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 근무가 없는 날 실습을 하고, 근무 들어가기 전 다른 부서에 가서 실습하면 얼굴 아는 사람들이 물어본다.

“어? 7층에서 근무하는 거 아니에요?”

“간호조무사 시험 보려고 실습하는 중이에요.”

“아! 그렇구나. 힘드시겠어요.”


물론 쉬는 날 나와서 실습하고 또 정상적인 근무를 하려니 몸이 피곤한 거야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직원들이 물어보는 것이다. 오가며 툭 던지는 물음에 일일이 대답을 하는 것이 짜증나지만 표정은 항상 웃는 얼굴이어야 했다. 그리고 상용직에서 정규직으로 들어가려는 몸부림이 정규직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니 내 모습이 초라했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했다. 이 시간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학원 대신 지역아동센터에 갔을 아이들과 변변치 못한 남편을 가장이라 믿어주는 아내가 있기에 모든 것을 참아야 했다. 그저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고 정규직이 되는 상상을 했다. 잠시나마 정규직 상상을 하면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책을 한 장 더 넘기고 실습을 한 시간 더 할 힘이 생겼다. 회사에서 학원으로, 집에서 학원 들러 다시 회사로 이렇게 1년을 보냈다.


마침내 지난하고 힘겨운 실습과 학원 수업을 마쳤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왔다. 아파트 담 아래 영산홍이 활짝 피었을 때 간호조무사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맨 먼저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합격이야.”

 “그래요? 잘했어요. 여보! 다 떠나서 오늘까지 오는 과정에서 정말 애썼어요. 오늘 당신 아주 멋져요. 퇴근하고 한 잔해요.”

“에이~ 뭘. 옆에서 도와준 당신이 고맙지요.”

그랬다. 1년 남짓 동안 학원 때문에 늦고, 실습하느라 늦게 들어가도 짜증 한 번 없이 묵묵히 뒤를 받쳐준 아내가 있었기에 마음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자격증 사본을 노동조합에 보여주고 회사 총무과에 제출했다. 그리고 직종 전환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일하던 자리는 정규직이 그만둔 자리이고 내가 자격을 획득했고, 단체 협약에도 ‘직원이 전직을 위한 자격을 획득하면 전직을 위해 노력한다’라고 되어있기에 나의 주장은 정당했다. 전직 요구를 해놓고 초조하게 시간이 지났다. 보름이 지나도 회사에서 별 이야기가 없어 노조를 찾아갔다.

“지부장님. 제 직종 전환에 대해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그게 총무과장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병원에서는 TO가 없다고 하네요.”

“제가 일하는 자리는 정규직 직원이 그만두고, 그 자리에 제가 일하고 있는데 그 TO는 남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얼마 전 병동에 뽑은 계약직까지 포함해서 지금 TO가 넘었다고 말하네요. 다음 주 노사 협의 때 공식으로 이야기 해 볼게요.”

조합을 나오는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오가며 만나는 동료들이 걱정스럽게 과정을 궁금해 하며 희망 담긴 말을 해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노사 협의 다음 날 조합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가 온 이유를 알고 있는 듯 지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병원 측에서 말하기를 TO가 없어 지금은 해줄 수 없고 다음에도 확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제 협상 자리는 병원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상용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완곡한 표현이고 핑계일 것이다. 어쩌면 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는 내가 회사 눈에 좋게 보이지 않아서 더욱 해주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정규직은 멀어지는 것이란 말인가. 자격증 따기 위해 보낸 시간과 적지 않은 돈, 그리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쏟았던 내 노력과 열정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악법이다. 회사가 비용이 적게 드는 비정규직을 늘리기 위해 정규직을 반대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형식적인 듯한 모습에 화가 나고 서운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의 자격지심인지 아니면 그동안 정규직이 보여준 상용직에 대한 홀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퇴근 후 동료와 술 한 잔했다. 내 기분을 아는 동료는 회사와 조합을 다잡아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하며 위로해주었다. 쓴 소주가 술술 넘어갔다. 정규직하고 같은 자격이 있고 똑같이 출근하고 같은 일하고 똑같이 쉬는데 왜 차별이 있는지, 나는 왜 정규직이 안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 화가 나고 노동조합도 야속했다. 술이 얼큰할 때 벽에 걸린 TV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수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홀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살을 에고 심장에 스미듯 박혔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노래에 취했다. 동료와 헤어지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척이는 모습에서 오늘 상황을 이해한 듯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소파에는 아들 책가방과 책들이 널려있고, 그때까지 졸음을 참고 아빠를 기다리던 아들이 달려와 팔에 안겼다. 아토피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어 갈비뼈가 앙상한 개구쟁이 아들을 안으니 왜 이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났다. 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를 딸바보로 만드는, 이 세상에 제일 예쁜 딸이다.

 “아빠. 울지 마. 무슨 일 있어?”

“아빠가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이 잘 안 돼. 그래서 아빠는 슬프단다. 오늘 조금 힘들어서 그래. 우리 아들 태권도도 보내주고 예쁜 공주 옷도 사주고 싶은데 아빠가 많이 미안해.” 

딸과 아들이 품에 안겨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빠. 우리는 아빠가 제일 좋아. 그리고 우리 학원 안 가도 되고, 옷 안 사줘도 되니까 아빠 울지 마.”

“미안하다. 우리 공주하고 씩씩한 아들. 아빠가 좀 더 힘낼게. 자~ 약속!”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들 손을 꼭 잡으며 마음속 다짐을 했다. 결코, 여기서 주저앉지 않겠다고.


며칠간의 고된 밤 근무가 끝났다.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찾아보았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내 권리를 찾고 싶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방법은 알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진정이란 것은 개인이 회사와 다툼을 벌이는 것이고 만약 패하면 뒷일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진정하는 순간 회사는 어떻게 나올까? 면담하자고 할까? 아니면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콧방귀도 끼지 않을까? 진정을 내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일까? 갖가지 상상을 하다 보니 내가 두려움에 차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요구가 정당한 것이 맞나 하는 회의까지 들 정도였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시원스레 비 한 번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고민은 가문 논바닥처럼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은 국가인권위 진정이었다. 회사 친한 동료에게 국가인권위에 진정할 생각이라고 조심히 말을 꺼냈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것이다. 조합을 찾아가서 생각을 말했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위 말을 일견 예상했기에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주장이 한 치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회사의 시혜를 기다리며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내 자존심을 꺾지 않을 것이다.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이고, 회사의 탄압이 오면 꿋꿋하게 맞설 것이다. 내 주장이 인권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결코 도망치거나 용서를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른 아침으로 찬 이슬이 내렸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밤 근무를 끝내고 돌아와 지친 몸에 잠이 들었다. 후둑! 후두둑!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잠이 깼다. 심호흡을 하고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라디오를 켜고 국가인권위 홈페이지를 찾았다. 불안도 걱정도 없이 그저 담담했다.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적고 그동안 정리해온 내용을 첨부했다. 마지막으로 확인을 클릭했다. 내 싸움은 다시 시작이다. 접을 수 없는 도전, 그리고 꿈이라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차가운 운명이란 벽을 넘어 하늘을 날아갈 것이다. 나 웃는 그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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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신문 인터넷판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764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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