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 100명에게 듣는다] 4.13총선에서 사라져야 할 정치인, 그리고 원하는 정책

by 센터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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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종식 센터 정책연구위원



노동자 이해관계 대변하는 대표자 선출


일찍이 존 로크(John Locke)는 정치 권력의 행정권(집행)과 입법권(제도)의 분리를 주창하고, 행정 권력의 남용을 입법권을 통해서 견제 및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행정 권력에 대한 통제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입법권을 넘어서는 저항권(혁명권)을 인정했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인구가 팽창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모든 사회적인 현안들에 대해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오늘날에는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한 사람이 10~20만 명의 의견을 완벽하게 반영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변하도록 대표자들을 제대로 뽑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 출신의 문화·문학 이론가이자 쌍용차 굴뚝농성에도 국제연대를 보냈던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해석에 의하면 원래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대표자(representative)’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는 뽑아준 시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재현(再現, re-present)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경제 활동 인구, 자영업자, 노동자가 각각 200명, 100명, 300명이라면 국회의 대표자들은 대략 2:1:3 정도의 비율로 나타나면 좋을 것이다. 다만 국회가 입법 기관이기에 법조인이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법조인들도 기업, 자영업자,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비율이 적정하게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니 역사적으로 1948년 보통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한 이후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대변하는 대표자들이 국회에 얼마나 있었던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회에는 분과별로 16개의 상임 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모습을 일부 국회의원들을 통해 찾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반노동자적인 견해가 월등하게 다수인 경우가 많았다. 더 나아가 환경노동위원회를 제외한 나머지 15개 분과 상임 위원회에서는 노동자적인 관점과 이해관계를 찾을 수 있었던가? 교육 정책, 경제 정책, 복지 정책, 외교 국방 정책 등에서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조금이라도 고려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흐름들이 있었던가? 예를 들어 법인세 감세, 역사교과서 단일화, 보육비 지원, 나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간 합의 등의 사안에 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아예 고려조차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계급적인 차원에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고용형태 측면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거나 또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간과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기존 노동 문제에 대한 접근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 청(소)년, 고령,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배제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


3.총선넷.jpg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 회견이 2월 17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2016총선시민네트워크)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4년마다 한 번씩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올해 4월 13일에 실시된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던 그동안의 국회의원 선거가 천지개벽하듯이 갑자기 일거에 바뀌어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대거 선출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사라져야 할 대표자로서의 국회의원의 모습과, 기대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국회의원 이상형에 대해 계속 논의하고 이를 점점 구체화할 때, 진정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노동》에서는 비정규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절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정치인의 구체적인 사유’와 ‘국회의원이 된다면 가장 먼저 내걸고 싶은 공약’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응답을 수집했다. 주로 비정규직 노조를 통해 주변 지인들의 의견을 수집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견수렴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기에 독자 분들이 표본의 대표성이나 신뢰성은 따지지 말고, 어떠한 의견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좋은 의견에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


절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자질


먼저 절대로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구체적인 인물보다는 그 자질을 응답해달라고 부탁했다. 응답 내용을 크게 정치(선거), 경제, 사회-노동, 기타로 구분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정치적인 자질로는 역사의식이 부재(독재정권 미화 등)하거나 친일파의 자손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8명(중복 포함)이었으며, 기존의 반민주적이고 기득권 중심의 정치와 정치인을 따르는 인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5명이었다. 그리고 부정부패 사범(8명), 표리부동(表裏不同)하고 공약을 남발하는 인물은 안 된다는 의견도 8명이었으며, 권력으로 자기욕심을 채우고 부를 축적하려는 ‘욕심쟁이’도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5명이었다. 사라져야 할 개인의 자질을 적어달라고 부탁했으나 특정 정당 소속은 안 된다는 의견이 8명이었는데 7명은 여당이고, 한 명은 진보 진영 내부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권 모 변호사가 심판하겠다고 선언한, 국민을 학살하고 삶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특정 인물은 절대 안 된다고 직접 거명한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권력 추종적이고,권력 지향적인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가운데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필요성을 강조한 의견도 꽤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 부문에서는 사기, 횡령, 배임 등의 죄를 지은 경제 사범들은 안 된다는 의견이 2명이었으며, 이보다는 재벌 출신 또는 재벌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재벌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들은 절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8명으로 꽤 많았다. 그 밖에 ‘성장지상주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국회의원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회와 노동의 영역에서는 노동자들의 답변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반노동자적이고 반서민적인 인물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이 9명이었다. 그리고 반노동자적인 인물의 구체적인 특징으로 파견, 용역 등의 간접고용을 포함해서 비정규직 확대와 정부의 노동개악, 노동 조건 저하에 동조하는 인물들은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응답자도 8명이었다. 그 밖에 ‘어설프게 노동 운동 했던 인물’은 더 크게 배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잘 걸러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밖에 기타 의견으로 국회의원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로는 성추행을 자행하거나 여성비하, 인종차별적인 사람을 2명이 꼽았으며, 국방의 의무를 포함해 국민의 4대 의무를 미 이행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2명 있었다. 마지막으로 핵무장을 주장하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비정규 노동자도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부감을 지니는 국회의원 자질은 정치 분야는 대체로 일반인들과 크게 차이가 없이 깨끗하고 덜 권력 지향적인 인물을 기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나 노동 부문에서는 반노동자적이고, 재벌기업 친화적인(business-friendly) 인물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외주화 정책들에 대해 뚜렷한 거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였다.


내가 국회의원 후보가 된다면 가장 먼저 내걸 공약은?


그렇다면 비정규 노동자들이 국회의원 후보가 된다면 제시하고 싶은 구체적인 공약은 무엇일까? 아예 국회의원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더 나은 후보를 추천한다는 의견도 각각 1명씩 있었지만 제시하는 공약 역시 정치, 경제, 노동, 사회 등으로 구분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비정규 노동자들이 제시하고 싶은 공약을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물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은 정치 영역의 공약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공약으로는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라는 다소 추상적인 공약을 제외하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및 재협상 정도를 찾을 수 있었으며, 그 밖에 국회의원의 임금을 노동자 평균 임금 또는 최저 임금 수준으로 삭감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정치 영역의 공약이 상대적으로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비정규 노동자들이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직접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고단한 삶의 조건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경제 부문 공약으로는 최저 임금을 1만 원 이상 대폭 인상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소득 분배율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포함하면 총 18명(중복 제외)이 응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공약으로는 생활 임금 보장 및 기본소득제 실시 공약을 제시하겠다는 의견도 8명이었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공약을 제시하고 있었다. 노동자 간 격차 및 원하청간 격차 완화와 원청의 책임성 강화를 6명이 공약으로 제시하겠다고 했으며, 한 응답자는 이를 ‘함께살자법’이라는 이름으로 입법추진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법정 최저 임금 대비 최고경영자(CEO)의 임금 상한을 두거나 기업 내 평균 임금의 일정 범위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2명이 제시하여 소득 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밖에 재벌기업들의 국유화라는 강력한 공약을 제시한 비정규 노동자도 있었다.


노동 부문 공약에서는 우선 고용안정에 대한 강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비정규직의 단계적인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철폐와 금지, 특히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사용금지 공약을 12명이 제시하고 있었다. 또한 구체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파견법 철폐, 용역-외주에 대한 규제 방안 등의 공약도 9명이 제시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문제점들에 대항할 수 있도록 정당한 노동 3권을 보장해주자는 공약도 2명이 있었으며, 이 중에는 노조법 2조 개정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온전한 노동 3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역 비정규노동센터 건립 및 지원 법령 제정’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대응 지원 공약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노동법 및 관련 지침에 대한 개악 시도들을 원상회복 시키는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비정규 노동자도 10명이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임금 문제, 노동 환경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삶을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하여 고민하고 공약을 제시하려는 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육아, 의료, 교육 등 기본적인 복지 확대 공약을 제시하는 의견이 6명이었는데, 이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은 단순히 최저 임금 인상이나 기본소득 보장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점점 결혼이 힘들어지고 육아 및 양육이 어려운 사회 환경 개선을 위한 공약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공약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는데 열정페이 금지 및 청년수당 신설(2명),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2명), 연장근로 및 야근 규제와 퇴근시간 보장법(3명) 등 소위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녁이 있는 삶과도 연관이 있는데, ‘노동 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2명이 공약으로 제안하겠다고 응답하였다.

이 밖에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 교육 시간을 배정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거나 동물학대 처벌법 강화, 안락사법 제정 등의 의견도 있었다.


노동자 목소리 내는 대표를 국회로


19세기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일찍이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말하였다. 한국의 국회의원 구성과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것인가? 비록 100명에 불과하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의견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 정부와 국회의 수준은 국민들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이러한 불일치의 에너지를 순치시키려는 흐름(대표적으로 종편 TV방송)도 존재하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이 깨끗한 정치에 대한 열망과 경제적 격차를 완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기대, 나아가 누구나 보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구체화된 요구들을 보다 뚜렷하게 한 목소리로 요구한다면 노동자 대표들이 국회에 더 많아지고 이해관계가 반영될 것이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국민대통합’과 같은 중립은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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