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악'] 우리 이야기는 어디 갔나

by 센터 posted Sep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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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세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임금피크제, 너무 먼 이야기


개인적 부탁 겸 지나가는 길에 동생을 만나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직업의 특성상(?) 요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란 말이 많은데 들어는 봤는지, 임금피크제는 아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아서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며 불쑥 질문을 들이밀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임금피크제 한다고 청년 일자리 느는 건 아니지” 라더니, “근데 임금피크제 자체가 현실감이 없다. 나는 지금 정규직인데도 40세 이후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정년까지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한데 임금피크제는 너무 먼 이야기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일을 구하기 전 구직 시절보다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가 늘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지금이 세 번째 직장이다) 직장만 구하면 걱정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장을 구해도, 그 다음엔 정규직이 되기 위해, 결혼을 하기 위해, 아이를 갖기 위해···. 조금 더 나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조금 더 안정적인 보장이 가능한 곳으로 계속 고민을 해야 했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해서 야근 좀 하고 집에 오면 12시, 그렇지 않으면 9시가 넘어 집에 오는데 이력서를 쓰고 학원을 다니며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에는 이후를 장담할 수도 없고, 당장 그 사이에 생활 보장도 되지 않는다. 어느 직장에서나 있는 문제겠지만, 동생의 회사에서도 같이 일하는 팀장 밑에서 일하기가 힘들다는 푸념도 빠지지 않는다. “그만두고 너도 니가 원하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해”라는 비현실적인 조언도, “가장이니 어쩔 수 있나. 참고 잘 다녀. 잠 줄여가면서 찾아보고 공부하는 거지”라는 뻔한 잔소리도 해줄 수 없어, 나보다 월급 두 배는 더 받는 녀석의 답답한 하소연을 들으며 위로만 해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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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청년유니온에서 주최한  '청년 일자리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청년유니온)


실업안전망 확대해야


구직을 하기까지 취업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기본적으로 생활 자체가 어렵다보니 ‘묻지마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긴다. 일을 하려고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너무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말도 안 되는 ‘열정페이’를 받으면서도 버텨야하는 이유는 다음 일자리에 대한 확신도 없지만 당장 생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두 달만 일을 쉬어도 당장 생활도 어렵지만 그것을 위해 ‘빚’이 쌓인다. 이때 쌓이는 빚은 희한하게도 돈을 번다고 당장 갚아지는 게 아니라 계속 불어나기도 한다. 이 시간을 버티고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일을 구하고 있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과감히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청년에게 제일 필요한 손길일 것이다.


따라서 꼭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실업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업안전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기간을 늘리고 액수를 높이는 것과 더불어 ‘자발적 이직자’까지 실업 급여 대상으로 포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실업급여 확대는 일자리 대책의 보조적 지원으로, 혹은 일자리 문제가 아닌 복지 사안으로 언급되곤 했으나 ‘계약 해지’라는 합법적 해고가 늘어나고 ‘구직자-비정규직-다시 구직자’를 반복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안전망’이란 최소한의 삶의 보장이자 다음 일을 구할 수 있게 이어주는 힘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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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이 땅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개원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청년유니온)


청년이 신뢰할 수 있는 일자리 마련


지난주 비슷한 주제의 간담회를 세 번 정도 다녀왔던 것 같다. 최근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혹은 청년이 생각하는 청년 일자리 방향과 해법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어쨌든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좋은 자리이나, 간담회를 준비하며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헛헛하다’(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의 표현으로)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주에 어떤 간담회에서는 ‘청년이 말한다’는 제목이었지만 실제 10여 개 단체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던 것보다 주최자의 마무리 발언이 더 길었다. 듣는다고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더 많았고 청년 단체들의 입장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찬반 토론만 되풀이되어 늘 헛헛했다. 임금피크제를 강행하는 쪽이나 막아내려는 쪽이나 청년이 바라볼 때는 ‘우리 이야기 한다더니 우리 이야기는 어디 갔나’라는 생각이 들어 헛헛했다. 재벌 개혁, 사내유보금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는 것도 방향은 좋으나 임금피크제처럼 그 돈이 풀리면 청년 일자리가 늘 것인지 확신할 수 없고, 그마저도 임금피크제는 당장 추진될 수 있는 것에 비해 실현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묘수가 있을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고름이 되어 터진 것이고 이미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노동의 문제가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는 방향은 청년 일자리 양산, 고용 창출보다도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대로라면, 상위 10퍼센트도 안 되는 일자리의 임금을 깎아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자고 하는 것도, 혹여나 청년 일자리가 생기는 곳도 상위 10퍼센트 안의 이야기다. 청년들이 대기업과 공기업에 매달린다며 눈이 높다더니 계속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조와 대안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상위 10퍼센트의 일자리 폭을 늘리니, 나머지 90퍼센트의 일자리 질을 올려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협상 마감 시한이 다가오니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정 합의(?)를 촉구하는 정부발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협상 의제는 여전히 청년이 나아지는 데 필요한 논의는 빠져있고, 이 순간에도 ‘열정페이’ 등으로 고통 받는 청년의 삶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무엇이 청년을 위한 노동 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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