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노동자와 여가]쉼에는 종교의 벽이 없다

by 센터 posted Jul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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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애자 전국의료산업연맹 대외협력실장


특집-템플스테이2.jpg


요즘 말하는 스펙이 좋아서도 아닌,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닌, 배경이 좋아서도 아닌 그저 제도에 따라 시기를 잘 만나고 조금의 노력을 더해 본인이 원하고 선택하는 직장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980년대 초 누구나 그렇게 무난히 정규직으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료들은 정규직이 되었다.

1990년대 초 임시직이라는 동료들이 하나둘 생기더니 계약직,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이어지고 그야말로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고, 어처구니없게도 정규직이라 하면 큰 혜택을 등에 업고 풍요롭게 사는 것처럼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정규직, 비정규직할 것 없이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노동자일 뿐이다.


2007년 여름, 우리는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28일 간의 총파업 투쟁을 한 적이 있다. 현장 발언으로 목이 터질 듯 강하게 주장했던 한 대목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정규직이라 하여 비정규직법이 남의 일인 것은 아니다. 지금 비정규직법을 막아내지 못하면 내 자식이 내 조카가 내 가족들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어 나 스스로가 청년 자녀를 먹여 살려야 하는 피해자가 될 것이다. 강력한 투쟁으로 비정규직법 절대 통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지만 시민들의 눈총은 따가웠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귀족 노조, 연봉이 얼마인데 하며 파렴치로 내몰리기도 했고, 공공의료를 빌미로 환자를 상대로 테러한다고까지 언론은 우리를 매도했다. 그러나 우려가 현실이 되어 우리 아이들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더미에 올라 있고 신용불량자를 면하기 위해 전공과는 무관하게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하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간제 알바에 젊은 청춘을 보내고 있다. 


이제 정부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마치 정규직들의 책임인양 노동자들끼리의 편 가르기를 일삼고, 상향평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규직들을 마치 부도덕의 원흉인양 정규직들의 양보만이 비정규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 언론을 통해 비열한 짓거리를 일삼고 있다. 자본가들의 높은 수익은 투자를 대비한다 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은 과다지출이라 한다. 자본가들의 노동력 착취로 인하여 노동의 고단함으로 인하여 삶에 지치고,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마음은 각박해지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일터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정리 해고, 일반 해고에 노출되어 서로서로 불신을 초래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우리를 불안 초조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우리는 쉼이 필요하다.

어느 날 노동 운동을 하고 있는 노동대학 선배로부터 템플스테이에 참여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조계사 노동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산사의 템플스테이였다. 기독교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선뜻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평소 템플스테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주저 없이 참여를 결정할 수 있었다.


속리산 법주사! 절집의 낯설음을 느끼기 전에 조용한 산사는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어 주었다. 절집을 둘러보고 마주하는 사람마다 두 손을 곱게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 조용히 인사를 나누는 풍경들. 사각사각 조용한 발걸음이 고요함과 더불어 있고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은 풀내음을 실어다주고 도심을 벗어나 나를 내려놓고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생전 처음 시도하는 108배와 건강식으로 준비된 절집의 토속 음식 맛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각자의 노동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생활하며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고충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응원이 있어 용서를 알게 되고 불안 초조감을 버릴 수 있는 재충전의 기회가 있는 그곳. 마음의 여유를 찾아 고즈넉함으로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함께하는 그곳.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를 찾아 온전히 내 자신을 사랑함으로 행복한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기쁨이 있는 곳.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지냈던 동지들의 격려로 우린 다시 연대의 결의를 다지고 1박 2일 간의 아쉬운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종교의 신념을 떠나서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위로하고 삶의 활력소를 충전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조용한 산사를 찾아 내 마음의 평등심을 갖고 내 인생에 주인이 되는 체험의 기회를 만들어 볼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우리 노동 가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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