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 같은 소리 뒷이야기 “뭔지 알고 들어요?”

by 센터 posted Jun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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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 같은 소리 뒷이야기 “뭔지 알고 들어요?”

 

2.단체사진.jpg

 

 

 

공동저자 13명이 참석해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북토크를 함께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기획하고 비정규 노동자 44명이 지은 책 《일복 같은 소리》가 동녘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공간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입구에는 추첨권과 ‘특별 할인 판매’를 하는 책이 놓여 있어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다. 행사 준비를 위해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한 시민이 들어와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행사를 위해 공간을 대관했다는 설명을 하고, 자리에 있어도 되지만 행사가 열릴 것이라는 안내를 했다. “북토크 들으셔도 돼요” 가볍게 제안했다. “뭔지 알고 들어요?” 장난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앗차. 우리 센터도 모르고 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자리를 옮겼다. 

 

잘 읽히는 글쓰기 ‘10분 특강’

자신의 일기장을 넘어서 남에게 읽히고 공유하려는 글을 쓰려면 공감력을 가지셔야 돼요. 공감의 폭은 무엇으로 오느냐.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의 문제로 눈을 돌리는 것. 그래서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담을 때 우리는 이들이 살아 있는 공간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시백 소설가의 특강 시간이 있었다. 이시백 님은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의 심사위원이다. 이시백 님의 강의는 위트 있으면서도 단단한 메시지가 있었다. 이시백 님은 반성문을 쓰면서 소설가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최근 농사를 지으면서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부침을 겪으면서 글이란 지배 계급만이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글을 안다는 것은 지배 계급에 대한 도전의식과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저항의 힘을 가지려면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객관화가 잘 된 글이어야 한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 함께 살아가는 노동자의 실태를 보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센터에서 매년 여는 수기 공모전을 생각해 본다. 수려한 글보다는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상황을 드러내고 공감하게 하는 글을 선호한다. 공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글은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지지하는 발판이 된다. 

 

당사자 목소리가 가진 힘

이어진 북토크에는 책에 수기가 실린 44명의 저자 중 13명이 참석했다. 저자와 독자는 자유롭게 어우러져 앉았고 특별한 무대 없이 무작위 뽑기로 다음 순서를 정하고 앉은 자리에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북토크에서 나온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행사장 밖에서 생긴 세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다. 북토크 사회는 《일복 같은 소리》에 글이 실린 이가현 활동가다. 이가현 님은 빵집에서 일한 경험을 책에 담았다. 북토크 진행에 앞서 이벤트가 열렸다. 추첨권 행사였다. 추첨권에는 책에 담긴 글에서 뽑은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바로 노조 가입서를 썼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우리의 권리를 찾자.” 노조에 바라는 점을 묻는 빈칸에 망설임 없이 채웠다. 〈비행기〉 김계월

 

북토크에 참석한 김계월 님은 코로나19로 부당해고 되었다가 해고 997일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농성을 하던 중 부당하게 해고된 억울함과 분함을 글에 담고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과 당당하게 복직하고 싶었던 의지를 책에 담았다. 발표하는 김계월 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결의에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투쟁 현장에서 크게 울렸을 거란 상상을 하니 조합원에게는 힘을, 사 측에는 겁을 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글자가 튀어나와 마치 그의 목소리로 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 행사장에서 한 분이 내가 있는 접수대로 발걸음했다. 김성호 센터 부소장이었다. 김성호 부소장은 북토크를 듣다 보니 책을 보면서 들어야겠다며 책을 구매했다. 행사장에서의 첫 구매자였다. 현장에서 책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걱정이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 등장해 나에게는 꽤 고무적이었다. 생생한 목소리가 가진 힘이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북토크 중간에 유쾌한 상황이 연출됐다. 저자로 참여한 라이더유니온 최고속도65님은 참가자의 열 손가락을 움직였다. “건강하세요. 산책 좀 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 체조를 제안했다. 오른손과 왼손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가 동시에 양손 모양을 서로 바꾸는 행동이었다. 사람들의 손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행사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차분하던 분위기가 밝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최고속도65님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안부를 물으면서 배달 기사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 달라는 부탁의 말로 순서를 끝냈다. 그런데 최고속도65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까 나에게 퀵 배송 물건을 부탁했던 사람이었다. 행사 중간에 나와 북토크가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고선 퀵 배달 기사님이 올 테니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알고 보니 본인이 해야 할 퀵 업무인데 북토크에 참석하느라 다른 퀵 서비스를 이용해 완수하려 했던 것이다. 일정한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달리 그의 일터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모든 곳이었다. 일 때문에 북토크에 집중하지 못했을 그의 심정이 상상되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노동이 과연 자유로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시간과 장소가 업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유쾌하게 손가락 체조를 진행하고 참가자들에게 건강하라는 말을 건네는 그가 행복해 보였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돌보는 모습이 귀감이 됐다. 

 

말에 힘이 있어요

북토크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우리보다 먼저 행사장에 와 있었던 시민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뭔지 알고 들어요?”라는 대답은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거예요?”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시민은 북토크 이야기를 언뜻 들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본인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듣게 되었다 한다. 목소리에 진정성이 느껴지고 말에서 힘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그분에게 책과 북토크를 언급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들의 일터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 내려간 글에 생동감을 더하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 이후에도 그분은 연신 감탄하며 북토크를 극찬했다. 이 글을 보시는 분은 북토크에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것 같다. 북토크의 생생함을 공유하고자 글을 썼지만, 저자들의 진정성과 힘을 전달하기엔 그들의 에너지가 너무나 컸다. 일부분이나마 저자의 진정성과 힘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구매하시길 바란다. “뭔지 알고 들어요?”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것이다.

 

이채은 센터 상임활동가

 

2.북토크.JPG

2023년 5월 19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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