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위법 천지 노동 현장에서 시급한 것은···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노동시간을 둘러싼 현장 갑질 사례

 

박성우  공인노무사, 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위 위원장

 

 

현장 갑질 사례

 

정부안이 구체적인 현실에 얼마나 눈 감고 있는지는, 노동시간 관련 노동 현장의 위법·편법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례들은 직장갑질119의 이메일 상담(월 평균 약 180건, 연간 약 2,200건) 중 2021년과 2022년에 접수된 내용이다(각 사례에서 괄호 안의 내용은 소속 사업장과 메일상담 접수일).

 

1. 심각한 장시간 노동

대부분 사례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상담사례 90% 이상이 장시간 노동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 주 73.5시간을 일하는 사례(식자재마트, 21.4.9.), 3년간 주 70시간씩 일한 사례(프랜차이즈 식당, 21.10.21.), 월 초과근무를 85시간씩 한 사례(국립대 인턴, 21.12.7.), 아예 주 80시간 근무시간표가 작성된 사례(사회복지시설, 22.7.29.) 등 극단적인 초장시간 노동 사례도 빈번하게 확인된다. 한편, 이러한 장시간 노동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문제가 야기된 사례도 대단히 많았다.

 

2. 당사자 간 합의 없는 강제 노동

연장근로는 ‘당사자 간 합의’로 가능하다는 가장 기본 요건(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이 노동 현장에서는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전 동의 없이 매일 연장근로를 시키는 사례(유치원, 21.1.11.), 주중에 실적 달성을 못 하면 휴일 근무를 시키는 사례(판매업, 21.3.16.), 팀원 전체 일정조율이 될 때까지 팀 전체가 퇴근을 못 하는 사례(IT업, 21.8.10.), 강제 야근을 거부해서 폭행을 당하고 타 부서로 발령 난 사례(22.3.30.) 등이 확인된다. 사실 거의 모든 소규모 사업체에서의 연장근로는 사용자가 시키면 또는 사용자가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사자 간 합의 없는 연장근로는, 근로기준법(제7조)에서 가장 처벌 형량이 높은 범죄 행위인 강제근로라는 관점에서 엄중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주 52시간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52시간까지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시킬 수 있고 또 시키면 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3. 공짜 노동의 주범 포괄임금 계약

 

연장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해놓고 고정액을 수당으로 지급하는 소위 포괄임금 계약이 장시간 노동의 주범 중 하나로 확인된다. 포괄임금 계약은 사업체의 규모, 업종, 직군 등을 가리지 않고 노동 현장 곳곳에 만연해 있었다. 포괄임금 계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괄임금 계약이 체결돼있다는 자체만으로 연장근로를 당연히 시킬 수 있고 연장근로를 얼마나 더 하더라도 추가수당은 없는 것으로 실제 운영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대법원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무상 특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포괄임금 계약은 무효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08다6052 판결). 그런데 직장갑질119에서 최근 실시한 직장인 설문조사(23.3. 직장인 1천 명 대상 조사)를 보면, 포괄임금 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의 87.8%는 자신의 업무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4.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위 직장갑질119 설문조사에서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는 응답자(50%) 중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무려 58.7%에 달했다(전액 미지급은 전체 응답자의 34.1%). 이메일 상담에서도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아예 연장수당 자체가 없다는 사례가 많았다. 연장근로수당 제도는 일을 더 한 만큼 할증된 대가를 더 지급하라는 당연한 취지 외에도 가급적 연장근로를 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는데, 현실이 이러하니 연장근로 억제 기능이 발휘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연장수당을 지급하는 경우에도, 1일 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인정하는 사례(마케팅 업무, 21.1.3.), 하루에 휴게시간을 3시간으로 정해놓고 실제로는 휴게시간에도 일하는 사례(요식업체, 21.9.18.), 퇴근 시간이 되면 형식적인 퇴근 처리를 하게 한 후 야근을 시키는 사례(사무직, 22.1.5.), 2년 동안 한 번도 온전한 휴게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사례(지방해양수산청, 22.3.17.), 인사시스템에 주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 기록이 가능한 사례(제조업체, 22.2.10.),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간주해 임금을 차감하는 사례(편의점, 22.5.17.), 오후 7시부터만 연장근로로 인정하는 사례(국립대 부설기관, 22.9.15.), 기계 오작동에 대비해 대기하며 밤을 새는 데도 무급 휴게시간으로 처리한 사례(식품제조업체, 22.9.24.) 등도 빈번하게 확인된다.

 

5. 휴가 관련 갑질 사례

직장갑질119의 다른 설문조사(2022.12. 직장인 1천 명 대상 조사) 결과를 보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응답한 직장인이 30.1%였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료의 업무 부담(28.2%), 휴가 사용이 어려운 조직 문화(16.2%), 본인의 업무 과다(15.1%) 순이었다. 즉, 현행 법정 연차휴가도 실제 사용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안의 또 하나 주요 내용인 ‘근로시간저축계좌제’와 관련한 시사점을 주는 문제 사례들도 많았다. 연장근로수당 대신 일방적으로 조기 퇴근을 시키는 사례(요양병원, 22.4.23.), 연장근로수당은 일절 없고 알아서 대체휴무로 쉰 사례(22.5.18.) 등 보상휴가제가 위법하게 운영되거나 아예 연장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목적으로 악용되는 위법 사례들도 많았다.

 

6. 퇴근 후 업무지시와 휴식 박탈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와 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퇴근 후, 휴일에 행해지는 업무 연락 사례가 대단히 많다. 이에 따라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퇴근 후 업무지시는 당연하게도 무급으로 행해진다는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는 이에 대해서는 현재 어떠한 법 제도적 규제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7. 유연근무제 관련 갑질 사례

유연근무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고 위법하게 운영되거나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무 시간을 통제하는 문제 사례들이 있었다. 탄력 근로제라며 사장이 마음대로 근무 시간을 운영한 사례(제과점, 21.3.18.), 재량근로제임에도 과도한 근태관리를 한 사례(신문사, 22.5.2.), 시차출퇴근제인데 출퇴근 시간 조정을 요구하며 결재를 해주지 않는 사례(공무원, 22.5.17.), 선택적 근로시간제인데 주말에 일하도록 요구한 사례(청소년수련원, 22.8.22.), 재량근로제인데 원래 업무가 많아 하루종일 업무를 할 수밖에 없어 결국 연장수당만 못 받는 사례(출판사, 22.6.24.) 등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동자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유연근무제라도 시간선택권(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경영상 효율성 제고와 노동자 통제 수단으로만 악용될 수도 있음이 확인된다.

 

8. 노예 노동의 현장 5인 미만 사업체

5인 미만 사업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도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간외수당은 없더라도 약정 근로시간보다 더 일하면 그만큼 임금이 더 지급되어야 하나 이조차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주휴일과 휴게시간은 적용됨에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도 많았다. 부당해고 금지 제도 역시 적용되지 않다 보니 이런 문제에 대한 항의나 시정요구는 대개 해고로 이어져 상담 사례 대부분은 해고를 당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안을 ‘주 69시간제’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정부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으로서 흠집 내기 식 비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상기 살펴보았듯 실제 현실은 더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이다. 한편, 정부안과 관련하여 ‘위법 천지’인 노동 현장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은, 정확히 실제 현실에 기초한 대안적 제도 설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법이 지켜지지도 않는 현장에서 법제도 개선 논의는 그저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따위가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 더 시급한 것은, 실노동시간의 실질적 단축을 위한 주 52시간 상한제 정착, 당사자 간 합의 없는 연장근로 처벌, 포괄임금계약 금지, 법 적용 사각지대 해소 그리고 있는 법이라도 일단 제대로 준수하기 위한 철저한 근로감독 행정이다.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