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오직 일하는 시간만이 노동시간

by 센터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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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산실, 조선소 노동

 

강인석 조선업 노동자

 

 

조선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다. 여기에다 옵션으로 따라붙는 것이 고위험, 각종 차별이다. 조선해양플랜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약 10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관심사는 “잔업 얼마나 하냐? 이번 주 특근하냐?”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되자 조선소 현장에서는 원성이 자자했으며 문재인 정부를 욕하는 노동자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물론 하청업체 대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 52시간 일하고 어떻게 살 수 있냐는 것이  하청 노동자의 비난이었고, 주 52시간 일하고 어떻게 공정 일정을 맞춰 나가냐는 것이 하청업체 대표의 항의였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서 주 52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노동조합의 처지에서도 주 52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원칙적인 주장을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한다. 조선소에는 A, B, C, D 등 근무 시간 코드가 있는데 A 코드는 5시 퇴근, B 코드는 6시 퇴근 등으로 정해놓고 서로 경쟁하듯이 “나 오늘 C코드야.” 하며 으스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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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출퇴근길.(@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조선업 최대 호황이었던 2010년 전후 거제에는 지나가는 개도 만 원권을 물고 다닐 정도라고 했는데, 그때 하청 노동자들은 1,000만 원 내외 임금을 받기도 했고, 5~6백만 원은 쉽게 벌기도 했단다. 그때 일했던 노동자에게 물었더니 한 달에 철야를 ‘열다섯 대가리’를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새벽 별 보면서 한 달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남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골병과 빚”이란다. 그렇게 호황기에 벌었던 돈은 쉽게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갔고, 옥포 시내 술집만 수도 없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저녁 9시만 돼도 가게 불이 꺼지지만. 이게 조선소의 가장 아픈 현실이다.

 

2021년부터 조선소는 8년 만에 수주 호황기가 도래하고 있다. 불황기에 떠난 조선소 노동자는 더 이상 조선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소위 육상으로 떠난 노동자는 조선소보다 훨씬 높은 임금과 덜 위험한 사업장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일한다고 한다. 물론, 하는 말이겠지만 노동자가 그 어딘들 편한 곳이 있겠냐만 조선소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일 테다.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동자들만 남아 있다. 나이가 많거나,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없거나 노동조합 조합원이거나 등. 서서히 일감은 늘어나니 제대로 공정이 돌아가질 않는다. 일할 사람이 태부족이다. 정부에서는 외국인 채용만이 유일한 해법인 양 떠들어 대지만 이마저도 여의찮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조선소에서 기술도, 경력도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적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주 노동자들도 꿈을 깨고 육상으로 가거나 조선소보다 나은 곳으로 가기 일쑤이다.

 

그러니 남아 있는 노동자가 배를 지어야 하니 어떻게 되겠는가? 필연적으로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주 52시간은커녕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한다. 심지어 임금이 한 달에 두 번, 세 번 입금된다.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임금 항목이 있는가 하면, 다른 명목으로 입금되기도 한다. 주 52시간을 억지로 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다. 물론 특별연장근로제니 하면서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는 작년 12월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거제 지역 노동 동향과 조선소 노동자 근무 환경 개선 방안 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동시간의 적정성과 노동시간 상한제 필요성에 관한 생각을 물어봤는데 노동시간이 적정하지 않고, 노동시간 상한을 두는 것에 대해 불만이라고 응답한 빈도수가 높게 나오는데 이는 앞서 말한 조선소의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요즘 일감이 늘어나면서 잔업, 특근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B 코드가 늘고, 토·일요일 특근도 늘어나는데 이를 두고 하청 노동자는 좋다고 한다. 특히 도장 노동자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일 많이 시켜주는(?) 업체’를 선호한다. 그동안 조선 하청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 없었던 퇴직금과 연차휴가를 쟁취했지만, 그것보다는 일 많이 하는 업체를 찾아서 노동자가 모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탈퇴하면서까지 그런 업체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도장 직종에는 사내 하청업체와 사외 하청업체가 존재하는데 사내 업체 중 조합원이 많은 경우에는 잔업, 특근을 배제하기도 하고, 물량을 조절해서 노동시간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사외 하청업체(아웃소싱)에는 물량과 노동시간을 최대화해서 임금 총액을 더 받게 하여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차별을 만들어낸다. 이는 다른 업종(용접, 탑재, 조립 등)에 일하는 조합원도 특근 배제 등을 통해 통제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소에서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시간 지키기’이다. 시간 지키기란 8:00~10:00, 10:10~12:00, 12:00~13:00, 13:00~15:00, 15:10~17:00에 맞추라는 것이다. 조선소는 공장 안에서만 생산되지 않는다. 대우조선소의 경우 전체 공장 터가 200만 평에 달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여러 안벽을 옮기 다니거나, 수십 미터 높이 배 위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며, 간이 화장실이나 흡연실이 있긴 하지만 배 위에서 휴식을 온전히 취할 수가 없다. 작업용 도구를 챙겨서 작업장까지 가는 시간, 작업 준비시간, 휴게시간 등 많은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포함하지 않고, 공짜 노동을 강요한다. 심지어 어떤 조선소는 관리자들이 안벽에 대기하면서 관리·감독하는 때도 있고, 수시로 원청에서 사진을 촬영해 하청업체에 넘겨주고, 이것을 가지고 노동자를 통제·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도장 노동자의 경우 일상적으로 유기용제에 노출되어 있어 샤워는 필수이다. 유기용제는 호흡기로 주로 흡입하지만, 피부로도 흡수되기 때문에 당연히 몸을 씻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근무가 다 끝난 후에 샤워하라고 한다. 오직 일하는 시간만이 노동시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 조선소의 현실을 잘 모르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다 보니 ‘시간 지키기’ 통제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조선소의 노동시간은 임금 총액과 비례하다 보니 이를 악용해왔다. 저임금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장시간 노동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을 강제해왔다.

 

장시간 노동 폐해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생지옥 조선소는 오늘도 노동자의 건강과 삶,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해가며 “오직 일 많이 하라! 그러면 돈 많이 번다.”를 강요하고 있다.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라는 것이다. 쌀이 있을 때 배 터지게 먹고 없을 때 쫄쫄 굶으라는 이들의 논리는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조선소는 시대를 거슬러 장시간 노동을 오히려 확대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을 정부가 들고나왔을 때 조선소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하고,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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