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심리 치유]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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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열 와락 치유단장,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내 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연애도 못하는 사람이 일인들 제대로 하겠어요?”

‘으, 재수 없는 년, 어째 말을 해도 저리도 얄밉게 할까? 내가 지하고 친하게 지낼 때, 연애도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부끄럽게 이야기한 것까지 끄집어내서 이제 아주 대못을 박네, 아주 대못을···. 나쁜 년!’ ㅇ씨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ㄱ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속으로 꾹꾹 누르며 참는다. 기운이 다 빠져서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방을 어질러 놓고 게임을 하고 있다. 금방 먹은 과자 부스러기도 방바닥에 떨어져있다.


“게임을 해도 정리 좀 하고 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니, 너는 어째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니? 너 때문에 온갖 수모 다 겪으면서도 암말 안 하고 참고 살고 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이야 게임은···. 그렇다고 엄마가 누가 게임 못하게 하니, 게임을 하고 싶으면 정리라도 하고 하란 말이야.”


ㄱ씨가 꺽꺽거리며 울고 있다. ㅇ씨에게도, 아이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자신이 죽고 싶을 만큼 밉다. 이 회사에서 정리해고 싸움이 시작된 지 이제 3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회사가 정규직들을 정리해고하려 하자 시작된 싸움이다. 비정규직은 도매금으로 넘어갔다. 정규직이 잘려나가는 판에 비정규직이 살아남을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싸움이 시작되자 정규직 쪽에서 같이 싸우자고 제안을 해 왔다. ㄱ씨는 비정규직이고 ㅇ씨는 정규직이다. 둘 다 해고되었다. 처음에는 같이 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 길어지면서 힘든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기로 했는데, ㄱ씨가 아이 때문에 몇 번을 빠진 게 화근이 되었다. ㅇ씨는 이제 노골적으로 ㄱ씨를 타박한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그러니 회사에서 정식 직원으로 계약을 안 한 것’이라 수군거린다.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싸움인데 오히려 원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세상이 전쟁터라는 것을 배우고, 학교는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면서 스펙 쌓기를 가르친다. 그게 공정하다는 것이다. 스펙 쌓을 능력과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안전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는 좀 더 불공정한 처지로 떨어지게 된다. 비정규직은 불공정함의 바닥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 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렵고, 그 밑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세상과 만나야 하는 곳이다.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스펙 밖에 없다는데 진즉에 포기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앞날이 불안하고 고달픈 인생들이 넘쳐나는 곳이 삶의 터전이 된다. ㄱ씨와 ㅇ씨는 그곳으로 떨어지기 싫어 사다리를 부여잡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힘들다. 내가 싫더라도 참고, 남이 싫어하면 맞춰주는 것만 알지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섭섭해 하는 눈치가 보이면 믿는 척도 해주고, 선심 쓰듯이 밥도 사주고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속을 박박 긁어 놓는다. 같이 싸우자고 할 때 ‘처지가 다른데 그게 가능할까?’ 싶었던 생각이 옳았다 싶다.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힘들어져서 섭섭한 것만 보였는데, 글쎄 ㅇ이가 그게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세상에 제가 그걸 못 봤어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보였을 텐데 어째 그런 게 안 보였을까요? 제 맘이 복잡해서 그랬나 봐요. ㅇ이는 살면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누가 자기한테 섭섭해 하는 걸 봐 내지 못해요. 불쌍해요. 에고,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요, 참. 이제 화해했어요, 그래도. 이제 앞으로 어찌 살지 고민 좀 해봐야겠어요.”


같이 마음 맞추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내 속을 긁는지 원망만 되던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숨통이 조금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는 것도, 맞추는 것도, 눈치를 보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아닌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다. 그래도 화해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자신감도 조금 생긴다. 이런 게 치유라는 것이구나 싶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사다리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를 반쯤 접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진짜배기 철이 드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철이 들고 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법을 깨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절대 안 가르쳐주는 것인데,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마음 나누고 못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 나눔이 곧 치유인 것이다.


분노의 화신


“회사 사람들만 보면 화가 나요. 그냥 불을 확 질러버릴까 생각을 한두 번한 게 아니에요. 그래도 요즘은 욕만 해요. 옛날에는 멱살도 잡고 그랬는데. 특히 어용노조 새끼들한테는 안 해본 욕이 없는 것 같아요.”


이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상담을 신청했다. 요즘 아이들한테 자기들 방 청소 안 하는 꼴을 보면 화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때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러다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찟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싸움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구조적 모순에 대항하는 이 분노는 정당하다. 그런데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인간은 오욕칠정을 골고루 사용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분노의 감정을 상시로 느끼며 살다보면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투쟁은 즐겁게’라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한두 번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투쟁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산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분노는 정당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사용하는 사람이 다치게 되어있다. 게다가 화나는 상황을 자주 만나다 보면 다른 감정이 다 화라는 감정과 연결된다. 세상이 온통 화낼 일만 있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화를 안 내려고 감정을 누르기 시작하면 정말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오직 분노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만 분노하고 나머지 감정들은 꽁꽁 묻어 놓는 것이다. 분노하거나 안 하거나의 단순한 삶에 갇힌다. 요즘 우리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이렇다.


버려지는 노동자


“이제 이 판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 더 이상 사람들을 보기가 싫어요. 그 선배가 이전에는 정말 안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젠 너무 권위적이 되었어요. 사람 냄새가 안 나요. 이 일을 한 의미가 없어졌어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내가 적응을 잘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관변 단체로 가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OO열사 돌아가셨을 때부터 그랬어요. 이 운동에 회의가 많이 왔어요.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다들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다른 데 갈 데가 없어서 꾹 참고 있는데 이젠 정말 정나미가 떨어져요. XX선배는 정말 최악이에요. 어쩌다 운동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XX선배는 자신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일관되게 사람을 힘들게 할 리가 없다. 젊음을 다 바치며 노동 운동에 헌신한 분이 틀림없는데 나이 들어서 후배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선배에게 섭섭하다고 하면서도 그 선배가 착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남에게 해코지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뭐가 꼬였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지친 마음을 드러낸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력하여 이런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취미생활을 같이하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관계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라 문제를 발견하면 아주 진심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주변 상황마저 악화되면 혼자 힘으로는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을 낸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아무 생각 없이 시류를 따라가는 사람보다 자신이 무능해서, 노력을 덜 해서 그렇다고 자책하기 쉽다. 자책을 하다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 운동을 할 자격이 없다고 조직을 떠나거나 극단적으로는 삶을 떠나기도 한다. 그분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이해가 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버려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와는 해결방법이 다른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동료가 버려지는 조직을 위해 누가 마음을 열겠는가?


같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치유


모든 상처는 스스로 치유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준다. 수술이든 약이든 그 상처를 낫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하라 하고, 음주나 흡연같이 상처를 악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내 몸이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을 도와주고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도 스스로 건강해지려고 한다. 몸에 통증이 생기면 몸에 상처가 생겼다는 신호이듯이, 마음은 불편해지면서 마음에 상처가 났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심리상담이나 치유는 왜 마음이 불편해졌는지 같이 찾아가는 과정이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마음의 불편함이 덜어지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낫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상처를 가장 빨리 낫게 하는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가 치유를 해 주기도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스스로 치유할 수 없으면 의사를 만나서 치유에 필요한 도움을 받듯이, 마음의 상처도 혼자 해결하려다 잘 안되면 누군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무얼 하면 좋은지 예방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더 좋다. 그건 몸이나 마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는 유연한 회복력을 되살려줄 수 있는 시스템과 사람이 있으면 혼자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버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치유의 기본 정신이다.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나누고 못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노동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소통이 곧 치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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