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 안전한가요?] 왜 아픈 몸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by 센터 posted Ju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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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조합 사무차장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가는 이주 노동자


이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글을 기고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득 한 외국 대사관 직원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산재를 당해서 한쪽 팔을 절단한 젊은 이주 노동자의 귀국 문제와 관련해서 대사관 직원을 만나러 간 길이었다. 이미 병원에서 한번 만나서 노동자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대사관 직원이 오히려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한국에 시험도 보고 건강 검진도 받고 겨우겨우 일하러 옵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갈 때는 이렇게 다치고 아픈 상태로 돌아갑니까?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젊은이들인데 한국에서 왜 다 망가져야 합니까?”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난 두 눈을 부릅뜨고 이야기하는 그 직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가장 젊은 나이에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가야만 하는 것일까?


사례1.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타카 씨


며칠 전 이주노조 사무실에 불쑥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가 찾아왔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여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고 소머리국밥을 한 그릇 하러 갔다.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노조에 찾아오게 되었는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문제를 겪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나누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은 타카(가명) 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갓 서른 넘은 젊은 이주 노동자였다. 의정부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목재를 자르고 가구를 닦고 옮기는 일을 주로 했다. 가구를 닦을 때 신나용액을 사용하는데 냄새가 독해서 머리가 꽤 아팠다고 한다. 처음 일할 때는 마스크 하나를 지급해주더니 이마저도 몇 달 지나니 지급을 안 해줬다. 나무를 자를 때 목재가루가 많이 날리는데 숨 쉴 때마다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와 가슴이 답답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회사 사업주에게 회사를 바꿔달라고 해서 겨우 승낙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 폭언, 폭행 등으로 사업장을 바꾸고 싶어 찾아오는 이주 노동자들 중에 크고 작은 상처나 질병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두 명이 같이 들어야 할 무게의 물건을 혼자서 나르다가 허리를 다친 이주 노동자, 주야간 교대를 밥 먹듯이 바꾸면서 숙소가 공장 안에 있는 간이 컨테이너라서 제대로 숙면도 취하지 못하고 늘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이주 노동자, 당연히 늘 켜져 있어야 할 안전 센서를 작업 속도가 느려진다는 이유로 꺼놓아서 한 손이 뭉개진 이주 노동자 등 어느 하나가 문제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근로 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종합적으로 위반하고 있는 사업장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전에 임금체불로 찾아온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도 염색공장에서 일하면서 화학 물질이 팔에 튀어서 화상을 입는 바람에 일주일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잔뜩 안고 온 이주 노동자에게 단지 체불된 임금을 받아내고 산재 보상을 받는다고 해서 치유가 온전히 되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사례2. 합성수지 제조업체 (주)아미코트 사업장 폭발사고


조금 과거로 돌아가보면 2012년 화성팔탄지역에서 일어난 (주)아미코트 사업장의 폭발사고가 떠오른다. 이 사고로 인해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충분히 예견되었고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

(주)아미코트는 이동식 디졸버(혼합조)를 이용해 첨가제와 코팅제를 제조하는 합성수지 제조업체였는데 평소에 안전 교육이나 폭발 위험 장소 조치 등이 불분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진상조사 과정에서 똑같은 공장 부지에서 두 번의 폭발사고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자리에 동종업종의 허가를 그대로 내주었다니 상식 밖의 일이었지만 행정관청에서는 단순히 법적하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적인 관리 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미코트는 2011년에 가스 냄새가 심하다는 민원이 제기된 이후 한 차례 점검을 받고 200만 원의 과태료와 10일간의 조업 정지를 당했으나 그 이후로 지속적인 점검이 없었고 결국 대형사고가 터져버린 것이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미처 준비가 안 되어 비어져 있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중국동포 유가족의 퀭한 눈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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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팔탄공단 폭발사고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요구 기자 회견(@이주노조)


사례3. 피부병, 가슴통증 호소한 이슬람 씨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주로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이주 노동자 사업장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경북 칠곡에 있는, 플라스틱 원료인 저밀도폴리에틸렌(LDPE)을 생산하는 업체에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 환경 조건으로 인해 피부병을 호소하며 병원에 데려다줄 것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한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위치한 D케미칼에 근무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이슬람(가명) 씨가 플라스틱 원료에 첨가하는 카본 가루로 인해 얼굴과 이마가 가려운 피부 질환과 가슴통증 등을 호소했다. 하지만 회사 대표는 ‘꾀병’이라며 오히려 이슬람 씨에게 폭행을 가했다.


이 회사는 플라스틱 원료에 카본 등을 섞어 비닐 등을 만드는 원료를 생산한다. 카본은 색상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데 가루가 날리면서 호흡기로 들어간다. 이슬람 씨는 근무 중 마스크를 지급받았지만 비산 먼지로 인해 가슴이 아프고 몸 전체가 가렵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슬람 씨가 고통을 호소하자 회사 간부는 “술을 많이 마셔야 카본 비산물이 몸 밖으로 빠져 나온다”며 “안 그러면 나중에 암 걸린다”고 말했다며, 소변을 볼 때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이슬람 씨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주단체에 상담을 하게 되면서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대구지역 성서공단노동조합에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 노동부에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고용센터 직권으로 이슬람 씨의 사업장 이동과 D케미칼의 외국인 고용 허가 취소를 요구하였다. 서부고용센터와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에서 D케미칼에 대해 사업장 조사를 한 결과 근로 기준법 위반과 산업안전법 위반 등이 적발되었고 대구지역에서 최초로 외국인 고용 허가가 취소되어 이슬람 씨는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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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단노조 D케미칼 규탄 기자 회견(@이주노조)


사례4. 급성 중독 증세 호소한 경남양산 산막공단 이주 노동자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경남 양산의 산막공단에 위치한 이주 노동자 사업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업체는 빈 드럼통을 수거하고, 이물질 제거와 진공 흡입 후 성형 작업, 세척, 건조, 도장 등의 과정을 거쳐 재생 드럼통을 생산해 납품해오고 있다.

이 업체에는 스리랑카 출신 이주 노동자 4명을 포함해 10여 명이 작업하고 있었다.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과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양산지역노동자작업환경개선대책모임’(이하 개선대책모임)을 구성하여 이 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하였다. 개선대책모임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세척과 도장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인 메틸클로라이드를 사용하고, 이 작업을 1주일에 서너 번 하며, 한 번 작업할 때마다 서너 시간 이상 노출되어 있다”며 “이 과정에서 안전한 환기시설은 물론 적정한 보호구는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심할 경우 방진마스크를 사용해야 하는데 전혀 지급되지 않고, 이 과정에서 구토, 두통, 어지러움, 가슴통증, 눈 따가움, 기침, 가래 등이 나타나고 있다”며 “작업자들이 사측에 작업 환경 개선과 사업장 이동을 요구했지만 작업 환경 개선은 되지 않고 무조건 몇 개월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은 채 일해야 했다”고 밝혔다. 또 개선대책모임은 “안전한 보호구는커녕 세척 작업 과정에서 여러 번 사용한 장갑에 구멍이 나서 메틸렌클로라이드가 손에 묻어 화상을 입었는데도 산재 처리는커녕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병원 치료 이후 붕대가 감겨 있음에도 작업을 하라고 했다”며 “유해 물질로 인해 급성 중독 증세를 호소하며 작업 수행의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담당 근로 감독관은 현장조사를 진행해 조치와 함께 처벌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후 국정 감사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제기를 이주단체들과 함께 했다.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 환경과 이로 인한 산업 재해 발생 위험도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2010년 0.6퍼센트(0.69퍼센트)대로 진입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2012년 0.5퍼센트(0.59퍼센트)대로 진입. 사망자 수 및 사망만인율도 지속적인 감소 추세이다. 전체 산업 재해자 중 사망자 수는 2007년 2,406명에서 1,864명으로, 사망만인율은 1.92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의 재해율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율에 비하여 높은 수준으로 2007년 0.83퍼센트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1년 1.09퍼센트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2012년 1.07퍼센트로 소폭 감소하였다. 그러나 사망만인율은 2008년 2.13퍼센트로 최고치를 보인 후, 소폭 감소하다가 2010년 이후 증가 추세이며 2012년 1.93퍼센트로 증가하였다.


이주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을 위한 개선 대책


다시 글의 서두로 돌아와서 정말 건강한 젊은 이주 노동자들이 입국했을 때처럼 건강하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어떤 개선 대책들이 필요한지는 이미 이주단체들로부터 여러 차례 제기되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업장 작업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기계 안전장치와 안전설비를 정비하고 규정에 맞는 안전장비를 착용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유해 위험 물질은 규정에 맞게 관리 감독되어야 하며, 분진-소음 등 안전하지 못한 작업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노동 시간이 지나치지 않도록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야 한다. 자력으로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중소영세 기업에게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환경을 개선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산업 안전 교육을 충분히 시행하고 노동자의 안전 대응 능력을 향상시킨다. 작업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에 안전 교육을 충분히 시행해야 한다. 업무의 유해 위험 정도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작업 및 현장 적응 기간을 두고 노동자가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본국에서 받는 사전 교육에서 산업 안전 교육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송출국가와 협력체계를 갖춰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 한국 입국 후 시행하는 적응교육에서 산업 안전 교육 시간을 늘리도록 하여야 한다. 자국어로 산업 안전 교육이 시행될 수 있도록 외국인 전문강사를 양성해야 한다.


셋째, 사업주 혹은 관리감독자에게 이주 노동자 이해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관리감독자에 대한 안전보건 의무교육 연간 16시간을 규정대로 시행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 채용 사업주 및 관리감독자에게 이주 노동자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산업 안전 교육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이주 노동자의 기본 건강 관리를 강화하여야 한다. 한국 입국을 전후하여 건강 검진을 충실히 하여, 기왕의 질환들이 업무에 따라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미리 알아내어 업무 배치에 참고하도록 하여야 한다. 기후, 음식, 불편한 주거, 낯선 노동, 심리적 불안정 등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작업 적응도가 떨어지고 산재 발생 우려가 높아질 수 있으므로 건강 관리 및 생활상의 배려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해야


최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세상을 떠난 19세 젊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온오프라인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이 사고가 2인 1조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과실로 일어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것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가 세 차례나 똑같이 반복된 인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이주 노동자들 역시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할 때마다 기자 회견을 하고 노동부에 진정을 넣어서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여전히 열악한 사업장으로 또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고 언제가 또다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이상 이주 노동자의 산업 재해가 개인의 과실이 아님을 밝혀야 한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회 구조에 대해 책임을 묻고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주노동조합을 포함한 이주단체들도 함께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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