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 안전한가요?] 당신에게 건강한 일터가 청소년에게도 건강한 일터

by 센터 posted Ju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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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런 세상을 만들어 미안하다’는 말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수리, 정비 노동자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깊이 공감한 청년들이 사고 발생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 지켜냈다.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가 자신의 애도와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렸고, 사고가 발생한 지 1주일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빼곡하게 들어찬 포스트잇에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다’라는 공감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제 많이 알려진 것처럼, 지난 2015년 8월에도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가 일하던 중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틈에 끼어 사망했다. 역시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데 혼자 일하다 발생한 사고였다. 서울메트로에서 제일 먼저 ‘재해자가 통화하고 있었다’며 발뺌하려 했던 대응마저 똑같았다. 당시에도 2인 1조로 일하라는 지침이 지켜지지 못했던 현실, 위험한 업무가 외주화되어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이 사고 때보다 지금 사회적 공감과 분노가 더 큰 이유 중 하나는, 채 1년도 되기 전 완전히 똑같은 형태의 사고가 재발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것도 그 죽음이, 두 명이 해도 위험한 일을 한 명만 배치해놓고 나몰라라 하고, 위험하고 험한 일일수록 외주로 용역으로 파견으로 때우는 이 체제 때문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 미안하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청소년인 나는 이 마음에 일면 공감한다. 아직 겪어볼 것도 많고, 꿈도 많았을 청년의 죽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꽃다운 청춘이 스러진 것에 미안함이 집중되면, 꽃답지 않은 노동자의 안전에는 둔감해진다. 만 19세 청소년1) 노동자의 죽음에는 공명하지만, 겨우 이틀 뒤 공사 현장에서 네 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사망한 현실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마음은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대신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서 대안을 찾는다. 청소년은 야간 노동을 하지 않게 하고, 청소년은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게 하고 등.


산재왕국에서 청소년 노동자가 살아남기


그러나 한 해에 2천여 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점이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말할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얘기다. 청소년 노동자의 일터는 우리의 일터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도 사고 당시 입사 7개월이었다고 한다. 졸업 전에 이미 취업하여 다른 ‘비청소년’과 똑같은 일을 해왔던 것이다. 알바노조가 이번 사건을 두고 발표한 성명 제목이 ‘당신에게 위험한 일이라면 알바에게도 시키지 말라’던데, 각색하자면 ‘청소년에게도 위험한 일터는 우리에게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건강한 일터가 청소년에게도 건강한 일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년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공공 정책에서 긴축과 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기승을 부리기 전, ‘예방적 휴가’라는 제도가 있었다. 임산부에게 유해•위험하다고 알려진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 노동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초기 동안은 위험하지 않도록 업무를 조절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유산과 같은 임신 중 문제가 발생하기 전,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라서 ‘예방적 휴가’라고 부른다. 캐나다 직업보건학자인 메싱은 꼭 필요한 경우 휴가 갈 권리는 보장돼야 하지만, 사업장에서는 업무 재조정이 더 활발해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휴가는 그 이익이 휴가를 떠난 당사자에게만 해당하지만, 업무 재조정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임산부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의 양과 강도, 형태로 업무가 재조정되면 다른 노동자들도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2) 청소년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노동자를 따로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 노동에 이런저런 제한을 가하고 청소년 노동자를 배제하려는 것보다 우리의 일터를 누가 일해도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더 유용하다. 


3.포스트잇.JPG

구의역 스크리도어를 수리하던 중 죽음을 맞은 청년 노동자에게 남긴 시민들의 추모글들.


특성화고 실습실에서 걸려온 전화


그럼에도 우리가 전체 노동자와 따로, 청소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주목하는 이유는 있다. 청소년 노동은 전체 생애의 노동 생활 중 초기 경험을 형성한다. 청소년들이 처음 노동자가 되는 과정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것이 권리임을 인식하고 그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바람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지난겨울, 지방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기계과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기계에 쇳덩이를 넣고 깎는 실습을 지도한다고 했다. 어떤 제품을 깎을지 프로그래밍을 해서 입력하면 기계가 제품을 깎아낸다. 금속을 깎으려면 절단 도구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면서 마찰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열을 식히기 위해 금속 가공유를 붓는다. 빠르게 도는 칼날과 그 마찰열로 금속 가공유는 미세한 분무 입자가 된다. 깎여 나온 금속 파편이 이리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기계에는 밀폐 덮개가 있고,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은 이 덮개가 덮여 있다. 그런데 이 기계에는 배기 시설이 따로 없다. 작업이 끝난 금속을 꺼내기 위해 덮개를 열면 기름기 분무 입자가 기계에서 쏟아져 나온다.

“기계가 돌아갈 때는 덮개가 덮여 있어서 괜찮거든요. 그런데 가공이 끝난 제품을 꺼내려고 덮개를 딱 열면 기름 안개 같은 게 막 나와요. 실습을 조금 할 때는 괜찮은데 경진대회나 자격증 시험 앞두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연습할 때는 실습실 전체에 안개처럼 뿌옇게 끼어 있어요. 환기구도 한 개 밖에 없는데 고장 났어요. 창문으로 이게 빠져나가야 되는데•••.”

몸에 안 좋은 것은 알았지만 그동안 별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목이나 손이 벌겋게 변했다. 혹시 이거 때문인가 싶어 학교에 얘기했더니, “다른 사람들 다 괜찮은데, 왜 당신만 그러느냐”, “자기 피부 문제를 왜 학교에 말하느냐”는 핀잔을 듣고 기가 막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직접 학교에 찾아가 보니 실습실은 반지하에 있었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통하게 하는 ‘자연환기’가 잘되지 않는 구조다. 유해 성분이 발생하는 곳 근처에 위치해 최대한 바로 배기하도록 하는 국소배기시설도 전혀 없었다. 금속가공유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특수건강진단3)을 받고, 금속가공유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작업 환경측정4)을 하게 되어 있지만, 특성화고 실습실은 모두 예외일뿐더러 선생님이나 학생들 모두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서 배운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어 특수건강진단을 하지 않거나, 작업 환경측정을 하지 않는 데 항의할 수 있을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자기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 자긍심이 없는 노동자가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일하라고 시키는 사업주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장실습에서는 ‘빨리빨리’ 하는 것을 배워요


이런 환경은 당연히 학교 안 실습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성화고등학교는 현장에서의 직업•기술 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파견형 현장실습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년 중 한 학기를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고, 사업체에 실습생으로 취업한다. 실제 교육의 의미는 거의 없는데도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파견형 현장실습의 폐해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고, 실제로 현장실습생에게 중대재해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야맞교대로 장시간 노동을 하던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도 병석에 있고, 2012년에는 울산신항만 공사 현장 작업선 전복사고로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현재 산업 재해 다발 사업장에는 현장실습을 못 가게 되어 있지만,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 산업 재해 다발 사업 혹은 상습 임금체불업체로 고시한 업체 등에도 실습생을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적발되기도 했다.5)


꼭 죽거나 크게 다치는 사업장이 아니라도, 현장실습생들에게 일터는 ‘불건강’하다. 재작년 파견형 현장실습 실태조사에서 만난 두 명의 고3 학생들은 식품 관련과 소속으로 화과자 생산 공장에서 실습 중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실습과 파견실습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학교 같은 경우는 반죽하거나 재료 준비하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하고 나면 짬나는 시간이 한두 시간 돼요. 그렇게 쉬엄쉬엄하잖아요. 근데 회사 같은 경우는 쉬엄쉬엄 못하니까, 계속 돌아가니까, 레일이. 계속 일하는 거죠. (반죽을) 계속 치니까 쉬는 시간도 없고. 그래서 빨리빨리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제 겨우 한 달째 일하고 있던 두 학생은 빨리빨리 일하는 법을 배우느라, 벌써 허리나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20킬로그램짜리 밀가루 부대를 10킬로그램짜리 두 개로 나누면 어떻겠냐는 나의 우문에 학생들은 웃으면서 “빨리빨리 일해야 하니까 그렇게 못한다”고 답했다. 작업 조건과 환경을 설계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일에 사람을 맞추지 말고, 사람에 일을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스케줄에 맞춰 일하던 학교와 달리, 기계에 맞춰 일하는 법을 배우는 초기 노동 경험을 통해 젊은 노동자들은 일에 사람을 맞춰야 한다는 작업장의 불문율을 몸에 새긴다.


청소년 노동자 실태와 상황에 주목하고,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조건을 강조하는 것은 청소년 노동자들이 작업장의 이런 불문율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런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면 청소년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작업 환경 개선’ 그 자체보다, 건강한 일터란 무엇인지 아는 것,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알고 요구하는 것,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를 조직해보는 경험일 것이다.


3.기자회견.jpg

2011년 12월, 기아차 현장실습생 사고 책임자 처벌과 노동 인권 법제화 촉구를 위한 공동 기자 회견


어리고, 미숙하고, 배우는 노동자?


그러나 현재의 산업안전보건 체계는 노동자들의 참여와 역량 강화에는 관심이 없다.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근로자의 의무’ 조항은 있지만 권리 조항은 없다. 비청소년 노동자의 참여와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참여나 권리는 더 제한된다. 청소년 노동자는 비청소년과 똑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똑같은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숙련이 덜 되었다는 이유로, ‘배우는 중’이라는 이유로 성인 노동자보다도 더 건강하지 못한 환경, 더 불리한 작업 조건에 처하기도 한다.


한 청소년 노동자는 고등학교 졸업 전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회사에서 3개월간 수습이라고 급여를 적게 받았는데, 2월에 졸업하고 나자 같은 일을 계속 하는데도 다시 수습 기간이라며 또 3개월간 수습 급여를 받은 친구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억울했지만 병역특례업체라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핸드폰 부품 업체에서 일하던 여성 청소년 노동자는 한 주는 아침 8시 반~저녁 8시 반, 그 다음 주는 저녁 8시 반에서 아침 8시 반까지 일하는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주 6일씩 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주 40시간, 하루 8시간’ 노동 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12시간 근무하는 회사에 취직했을 뿐이다. 연장근무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볼 수도 없었다. 현재 근로 기준법은 원칙적으로 청소년 노동자의 야간 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3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 33.6퍼센트에서 교대근무를 실시하고, 그중 다수는 야간 노동 후 휴일 없이 연달아 일하는 2조 2교대로 일하는 현실6)에서 이런 보호 조항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나이가 어리고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초면부터 반말을 하거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리니까 깔봐요. 말도 막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대기할 때 호텔 직원이 두 줄로 앉히는데 좀 얘기를 한다 싶으면 “너 일어나서 문 보고 서있어” 이렇게 해요. 욕이랑 반말은 다 하는데, 그냥 손으로 가리키면서 “너, 너, 너 따라와. 이렇게 부르고.” 호텔 연회장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던 17세 여성 청소년의 진술이다. 호텔 연회장에서 일했던 청소년들은 손님 눈에 띄지 않는 병풍 뒤 바닥에 앉아 대기하면서 모욕당한다.7)



산재 왕국의 청소년 노동자들도 당연히 불건강하고, 위험한 일터에서 일한다. 청소년 노동자를 특수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도처가 시한폭탄인 위험한 일터로, 진입하는 시간을 늦출 뿐이다. 이런 조치로는 앞선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진입 시기를 효과적으로 늦추기도 어렵다. 우리 모두의 일터가 안전한 일터, 질 좋은 일터, 일할 만한 일터가 될 때 청소년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19세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마음이, 지하철 노동자를 넘어, 외주 하청 노동자를 넘어 ‘모든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으로 확장될 때, 다른 19세 청(소)년 노동자들이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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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년 보호법은 만 19세 미만을, 청소년 기본법은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2)   Karen Messing, Pain and prejudice, 2014.

3)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특별히 이 유해 물질의 건강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진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4)   작업 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해당 노동자 또는 작업장에 대하여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평가하는 것으로, 역시 법적으로 대상 물질이 정해져 있다.

5) 감사원,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결과 보고서, 2015

6) 감사원,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결과 보고서, 20157) 이수정 등, 십 대 밑바닥 노동, 2015,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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