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 안전한가요?] 메탄올 급성 중독, 한국 사회에 보내는 시그널

by 센터 posted Ju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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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우리가 만난 기업들 중 일부는 직접 협력사들을 넘어선 공급 사슬을 감시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한 기업은 직접 협력사 중 한 곳이 연루되어 있는 인권 침해 보고에 대해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모든 기업은 그 활동과 관계된 그 어떠한 부정적 인권 영향도 방지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공급 사슬의 복잡성이 무대책(inaction)의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복잡한 공급 사슬을 갖는 대기업들은 부정적인 인권 영향의 위험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들을 파악하고 우선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 기업들은 부정적 인권 영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고충 처리 메커니즘을 수립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메커니즘들은 기업  활동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 개인, 커뮤니티들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방한 결과 보고서(2016년 6월 1일, 서울)


2016년 1월부터 2월 사이 삼성전자, LG전자에서 핸드폰 부품(유심 트레이)을 납품하는 세 개의 3차 협력업체에서 메탄올 급성 중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네 명의 노동자는 각기 다른 시기에 병원에 실려 갔다. 간신히 살아난 그들, 두 번째 피해자의 병원에서 메탄올 급성 중독을 의심한다. 영문을 모른 채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첫 번째 피해자도 자신의 눈멀음과 생명의 위기가 메탄올 급성 중독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이들은 각각 ‘이유 없는’ 실명과 뇌손상 환자로 남았을 수도 있다.


급하게 같은 공장의 다른 파견 노동자들도 건강 검진을 받았다. 물론 모두가 다 검진을 받지는 못했다. 나와서 검진을 받으래도 안 오는 사람도 있었고, 연락이 안 닿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20세 노동자가 위험했다. 설 연휴에 그는 코피를 잔뜩 쏟았고, 머리가 깨져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모두 다섯 명의 피해자가 나왔고, 다행히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아직 몸속에 흐르는 메탄올을 그대로 둔 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각기 삶으로 흩어졌다. 메탄올의 반감기는 2~4시간 정도였지만, 워낙 노출 농도가 높아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었다.  


파견 노동자인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20대였다. 각각의 공장에서 일에 대한 구체적 정보도 없이 일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며 주야 맞교대로 일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나온 메탄올로 인해, 그들이 사용한 화학 물질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안전 교육이라니 언감생심이다.


왜 유독 그들에게 이런 황망한 일이 발생했을까?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왜 조심하지 않았을까?” 입을 닫고 잠만 자는 피해자도 있었다. 눈을 뜨나 안 뜨나, 암흑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들이다. 피해자들이 그렇게 자책하는 사이,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생겼다. 치료를 받던 한 피해자에게 전화가 왔다. 정말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 이미 이렇게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고 정부가 움직였다고 하는데, 또 다른 피해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냐고 묻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다. 대체 뭘 해야 되냐고 했다. 언론에 나서겠다고 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30분을 울면서 통화했다. 최초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된 서글픈 사연이다.


인터뷰를 한 피해자 A씨가 마지막 피해자 병문안을 갔다. 우리는 젊으니까 꼭 나을 거라고, 무조건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두 손을 꼭 붙들고, 많이도 울었다. A씨는 앞이 약간 보인다. 마지막 피해자에게는 이제 A씨가 희망이다. 스스로 자책하면 절대 안 된다는 A씨의 말에 그간의 고통이 묻어져 나왔다.


2.시그널.jpg

<시그널> 메탄올 급성 중독


이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불안했다. 또 어느 누가 눈이 멀어 있을까봐. 특히 전자제품 부품공장이 많을 법한 부천, 인천, 안산, 성남, 구미 등 전화를 돌려 전자제품 파견 노동 상황을 물었다. 파견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지인의 지인을 연결해서야 가까스로 몇 명씩 알아낼 수 있는 정도였다. 얼추 20대 100여 명의 파견 노동자를 찾아 어떤 물질을 쓰는지 물었을 때,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요, 알코올인 것 같은데, 안전해요!” 더 말해 무얼 하랴. 어떤 공장에서도 쓰는 물질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파견 노동자들은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를 그냥 받아들이거나, 상황을 모르는 눈치였다. 노동 상담도 함께해야 했다. 얼마 전 해고를 당했다던 23세 파견 노동자는 메탄올을 스프레이에 담아 사용했다고 한다. 아니, 아마 메탄올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해고를 당하는 날에서야 자신이 파견 노동자인 줄 알았고, 1년을 채워 퇴직금을 받겠다는 삶의 계획은 10개월째에 해고를 당하며 물거품이 되었다. 일터의 위험과 고용의 위험이 동시에 그들을 위협한다.


그로부터 4월 중순, 피해자들과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다던 한 노동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도 역시 파견 노동자다.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자기와 같은 일을 하던 이들이 왜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느냐며 자초지종을 물어왔다. 왜 이제야 알았냐는 질문에는, 회사에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지나가는 말로 들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고 했다. 건강 검진을 하라는 말을 못 들었다고 했다. 공장 안의 사람들은(여전히 모두가 파견 노동자다) 피해를 입은 그 사람들이 운이 없었다고 수군댔다. 공장 안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환기가 잘되는 것 같고, 메탄올은 관리자들이 운반한다 했다.


기술을 배우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는 그이는, 시급 100원을 더 주는 최초 피해자가 일하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일이 너무 고돼서 그만두고, 다시 최저 임금을 받으며 두 번째 피해자들(2명)이 일하던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2차 하청업체로 옮겨서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 6월인 지금까지도 같은 공정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고 그냥 이젠 안전해졌겠지, 일도 익숙한데 하며 대답한다. 그의 꿈은,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기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기약이 없다는 것도 그는 안다.


왜 피해자들이 파견 노동자였을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파견 노동자였다. 4대보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 기록은 전무했다. 언제부터인가 하청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파견 노동자들이 늘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무정부 상태다. 

정부의 대응은 어땠을까? 2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안산을 방문해 파견법을 통과시키자고 했다. 피를 토하면서 연설해 파견법을 통과시키라고 주문했다. 아직 메탄올 급성 중독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은 정말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피를 토하고, 노동부는 비상이 걸려있던 그 무렵이다(외부로 이 사건이 알려진 건 경향신문 2월 4일자 보도이다). 노동부는 오로지 메탄올 급성 중독 사건으로만 축소하려고 했다. 전국의 메탄올 사업장을 점검하겠다는 발표가 났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1988년도 15세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을 때, 노동부가 했던 대응과 방법이 같았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하는 ‘신속 대응’은 뭔가 앞뒤가 안 맞다.


28년이 지나 그때 그 어린 노동자들은 파견 노동자들로 대체되었다. 희한하게도 메탄올 급성 중독 피해자 다섯 명 중 세 명은 88년, 문송면이 죽던 해에 태어났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현장의 파견 노동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노동부 점검이 나오는 날 아마도, “오늘은 나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 제보가 왔다. 노동부에서 나오는 날 아침에 메탄올을 다 치우고 파견 노동자들 출근 시키지 않았다고. 제보자는 묻는다. 국회의원 많이 바뀌면 정부가 좀 나아지냐고. 총선 즈음이었다. 정부 대응을 말하는 문단이 깔끔하지 못한 이유는, 총체적 난국이라서?


먹이사슬의 정점, 삼성과 LG전자는 어땠을까?  


삼성전자 : “해외의 글로벌 기업과 동등한 수준으로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1차 협력사에 안전 관리 매뉴얼과 가이드를 제공하고 관련 법규와 안전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음. 이번 문제가 발생한 업체들은 3차 협력사로, 직접 안전 관리 및 모니터링의 대상이 아님. 저희 삼성전자와 협력사 근로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LG전자 : “엘지전자가 모든 부품 공급망을 직접 모니터링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따라서 1차 업체를 통해 2차 이후 업체에서 메탄올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 요청 및 안내를 할 예정입니다."


맨 처음 인용한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의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좋겠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기업이 지켜야 할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글로벌 기준을 따르고 있다는 두 기업의 답변은 명백하게 국제 기준을 어기고 있다. 부품 원료 생산부터 부품 생산, 완제품 생산과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형성되는 ‘공급망’에 대한 대기업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국제 기준이다. 현재 노동건강연대는 이 사건을 UN 기업과 인권국에 진정을 해놓은 상태이다. 파견과 하청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 공급망의 책임성 개념이 확대되길 희망한다. 무책임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인 대기업에 실질적으로 책임을 묻게 할 한 가지 주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최초 메탄올 급성 중독에 의한 실명으로 이 사건이 알려졌지만, 피해자들은 뇌도 동시에 다쳤고, 여러 가지 합병증을 겪고 있다. 제대로 말을 하고, 잘 걷기 위한 재활치료를 받는 한편 눈과 뇌를 치료 중이면서, 다른 합병증 치료도 받아야 한다. 스스로 화장실을 가기에도 버거운 몸이다. 중간 중간 많은 통화를 하게 되는데 산재 보험 제도가절대적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새로 나타나는 질병도 보험 처리가 되냐고, 왜 노동부는 가끔씩 전화해사람을 괴롭히냐고도 묻는다. 원래 제도가 이렇게 피해자들을 우롱하냐는 한가족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 


구의역 사건이 있던 날, 한 피해자에게 연락이 왔다. 원래 한국이 이렇게 살기조차도 버거운 곳이었냐는 그 무거운목소리. 그리고 전해온 추모 메시지로글을 마치고자 한다.

2.구의역.jpg

메탄올 피해자가 구의역에 보내는 추모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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