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 안전한가요?] 유해 화학 물질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by 센터 posted Ju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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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순 화학섬유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 일과건강·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국장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조 노동자는 안전한가?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국민을 상대로 한 비밀이 얼마나 위험한지 극명하게 보여준 화학 물질 중독사건이다. 환경단체에 의하면 현재까지 피해 규모는 정부가 공식 인정한 옥시 제품 피해자 177명(사망자 70명)을 포함해서 1천여 명에 이른다. 정부는 현재 3차 피해자 접수를 받고 있다. 전체 피해자의 80퍼센트가 사용했던 제품을 생산한 옥시레킷벤키저는 유해 물질 PHMG 위험성을 알면서도 판매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옥시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의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생산한 애경과 엘지생활건강까지 국민적 분노는 확산되고 있다.


이번 참사는 최초 카펫 세척용으로 개발된 화학 물질을 우리나라 제조사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바꿔서 사용하면서 어떠한 제지나 관리 감독을 받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 용도 변경에 따른 유해성 검사 제도나 위해성을 소비자에게 알려야 하는 어떠한 제도도 없었기에 발생되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가족들에게 독가스를 흡입시킨 거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실험용 동물이 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너무나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이번이 처음일까! 이러한 비극은 대상이 시민이 아닌 화학 물질 제조회사의 노동자라는 점만 다른 뿐, 우리나라에선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어쩌면 모두의 무관심 속에 계속되어 왔던 비극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 막지 못하면서 우리 사회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직업병 사건으로 노동자 1천여 명이 중독되고 200명 가까이 사망한  1988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CS2) 직업병 참사가 있었다. 섬유 원단을 만드는 공정은 화학 물질의 노출 위험성을 막기 위한 보건 조치도 없었고 일하는 노동자에게 어느 누구도 화학 물질의 유독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1995년 LG전자 양산 공장의 세척작업 공정에서 2-브로모프로판이라는 생식 독성 물질에 3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 중독되어 생식 기능 장애 및 조혈 기관 장애 등을 일으킨 사고가 일어났다. 2004년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 신경 독성 물질인 노말헥산을 세척제로 사용하면서 창문 하나 없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보호구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일한 결과 다발성 신경 장애, 하반신 마비 증상으로 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두 건의 중독사고도 물론 유독 물질에 대한 정보 전달이 없었고 안전보건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벤젠 등 발암 물질 노출로 2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삼성전자반도체 사건, 그리고 최근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실명 위기를 초래한 메틸알코올 중독 사건까지•••.


이 모든 사건의 피해 노동자들은 취급하는 화학 물질의 독성 정보를 알 수가 없었고 일하는 공장은 그들을 보호해줄 수 없는 무방비 상태였다. 계속된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하면서 비극은 계속되었고 가습기 살균제까지 이른 것이다. 때문에 현재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이후 관심이 모아지길 바란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는 공정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조속히 실시하여 노출 가능성을 밝혀내고 기존 작업 환경 측정 결과 실태조사를 통해 피해 노동자들이 있는지 찾는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가습기.jpg

시민사회단체 옥시 불매 2차 집중행동 


화학 물질 취급 노동자의 위험 실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화학 산업 생산규모가 세계 6위로 한해 전체 화학 물질 유통량은 433백만 톤, 화학 물질 종류는 4만 종(2010년 기준)에 이른다. 2013년 정부가 실시한 유독 물질 취급 사업장 3,846개 사업장 전수 조사에 따르면 시설 노후화를 비롯한 화학사고 위험 항목 취약사항이 발견된 업체는 42퍼센트에 달했고 산업단지별 비교 분석에서는 20년이 지난 노후산업단지와 중소규모 사업장 위주로 구성된 산업단지 관리가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 물질의 위험 실태 중 발암성 물질 노출 실태는 심각한 우려 수준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010년 금속노조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발암 물질 진단 사업 결과 전체 64개 사업장 총 9,044개 제품 중 3,400개 제품(38퍼센트)에 발암 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화학섬유연맹이 전국의 27개 사업장 전체 3,484개 물질의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수거하여 분석한 결과 11.5퍼센트에 해당하는 401개 물질이 발암성 물질로 나타났다. 401개 발암 물질을 등급별로 구분하면 1급 발암 물질이 67개로 전체 물질 대비 1.9퍼센트, 2급 발암 물질이 201개로 5.8퍼센트, 3급 발암 물질이 133개로 3.8퍼센트였다.


발견된 발암 물질 성분은 155종으로 1급이 19종, 2급이 76종, 3급이 60종이었다. 1급 물질성분 중에서 발견된 빈도가 가장 높은 물질은 28개인 벤젠으로 석유 정제 사업장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23개인 황산은 사업장 대부분의 폐수처리장 사용 물질로 발견되었다. 주목할 점은 19개가 발견된 실리카(석영)로 화학업종에서 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 외 뷰테인 13개, 아이소뷰테인 8개, 포름알데히드/1,3-부타디엔이 각각 5개로 나타났다.


화학 물질 위험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화학 물질 알권리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2010년 심상정 의원실 조사 결과 전국 1만 6,547개 화학 물질 취급 사업장 중 86퍼센트가 화학 물질 정보를 비공개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경우는 취급 물질 중 92.5퍼센트가 비공개되고 있다. 2009년 노동부가 500여 개 사업장 MSDS 및 경고표시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한 결과를 보면 74.4퍼센트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노동 현장에서 화학 물질 위험 실태가 심각한 이유


노동 현장에서 화학 물질 위험 실태가 이러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부실한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의 1,700만 개 사업장 중에서 안전관리자 법정 선임 대상 사업장은 1퍼센트이며, 보건관리자 선임 대상 사업장은 0.8퍼센트에 불과하다. 선임 대상 사업장 중에서도 안전관리자 직접 고용 비율은 23퍼센트에 불과하고 76퍼센트는 위탁 관리이며, 보건관리자 직접 고용 비율은 19퍼센트이고, 위탁 관리는 80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비율도 완화되고, 겸직이 허용되었으며,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위탁 관리가 전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화학 물질 관련 각종 법령이 있어도 사업장에서는 사실상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없는 것이 현실이며, 정부 관리 감독 사업장 비율도 미미하여, 매년 실시하는 사업장 감독에서 90퍼센트 이상 사업장이 법 위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화학 물질 위험 실태에서 주목해야 할 점


사고와 직업병은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화학 물질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중대재해는 우리나라 전체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건설과 플랜트업종은 다단계 하청 구조와 일일 고용 등 단기 고용으로 인한 화학 물질 정보 제공, 교육 실시 등 기초안전보건관리에 취약하며 시공 과정에서 시멘트, 석면 등 각종 화학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석유화학, 발전소, 제철소 등 설비 보수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는 벤젠 등 고독성 물질에 단기간에 고노출되거나 화재, 폭발, 누출사고 위험에 놓여있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비파괴 방사선 작업은 다단계 하도급으로 방사선 경보기나 개인선량계 지급과 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도 없는 가운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병원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인 의료폐기물 관련 청소 노동자, 환자와 24시간 밀착되어 있는 간병 노동자들은 병원의 예방 및 감염 대책이 전무한 가운데 다양한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화학 물질 취급 사업장의 설비 보수는 거의 대부분 하청 노동자들이 진행하지만 이들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는 미흡하고 무리한 작업 지시로 화학 물질에 의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유해 화학 물질로부터 안전한 현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부천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시력 손상을 가져온 메틸알코올 중독 사건은 화학 물질에 대한 노동자 알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화학 물질에 대한 위험 정보를 사전에 교육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사업장은 지키지 않고 있다. 사고의 많은 원인은 취급된 화학 물질에 대한 정보 부재로 인한 것이 주된 것이다. 특히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MSDS 기재 내용 중 영업 비밀이 많아(50퍼센트) 알권리 보장에 제도적 한계가 있는 현실이다.


개별 노동자가 각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련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 정보에 대한 기업의 영업 비밀 주장이 엄격하게 제한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MSDS 상 영업 비밀에 대한 노동부 사전승인 제도를 도입하고 노동자가 해당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 자료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MSDS 상 영업 비밀에 대한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미국의 TSCA(Toxic Substances Control Act), 유럽연합(EU)의 REACH (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캐나다의 HMIRA(Hazardous Materials Informa-tion Review Act) 등에서 영업 비밀에 대한 사전승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유럽연합 REACH에서의 MSDS 관계 규정을 보면, 사업주는 영업 비밀과 관련된 화학 물질의 비밀 보호를 위해 유럽화학물질청(ECHA)에 해당 물질에 대한 비밀 보호 신청을 해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할 때 영업 비밀로 해야 하는 타당성에 대해 설명해야 하며, ECHA에서는 이를 검토하여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둘째, 화학 물질 유해 위험 작업의 외주화, 다단계 하도급 금지가 필요하다.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에 의한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작년, 광주에 형광등 제조업체인 남영전구에서 발생한 수은중독사고와 올 초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메탄올 중독에 의한 실명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하청 비정규 노동자를 포괄하는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8조 유해 위험 작업 하도급 금지 규정의 현실화로 방사선 취급 작업, 화학 설비 보수 작업 등 위험도가 높은 업무의 무분별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위해 위험 작업의 파견 노동 확대를 막아야 한다.


셋째, 중대재해에 대한 사업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 수많은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보면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에서 일어난다. 화학 물질에 의한 화재, 폭발, 누출사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산재사망사고만 보더라도 전근대적이고 반복적인 사고가 매년 줄지 않고 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사업주 벌금은 2천만 원으로 한 명당 50만 원 꼴이었다. 2012년 네 명이 질식사한 이마트 사고로 이마트가 물은 벌금은 100만 원이었다. 최근 3년간 중대재해 중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2,045건 중 무혐의 처리건 32퍼센트, 벌금형 64퍼센트, 징역형 62건으로 0.03퍼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강력하다. 영국은 6억 9천만 원, 미국은 최대 226억 9천만 원이 부과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산업사망을 기업에 의한 살인 행위’로 간주하는 일명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산업 재해 근절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한국 사회는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로 대표되는 큰 참사를 겪으며 기업 처벌 강화법 제정의 필요성이 높아진 만큼 하루빨리 ‘중대재해 기업 처벌 강화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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