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교육]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하방연대下方連帶를 지향하는 노동 교육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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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명|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느티나무’ 회장



노동대학에서 노동아카데미로 바뀌다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의 첫발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셨던 신영복 선생님께서 ‘대학을 거점으로 한 노동 교육 기관’ 설립을 주도하면서 시작되었다. 2000년 3월, 1기 수강생을 모집할 당시 공식 명칭은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 노동전문 교육과정 노동대학’이었다. 그러나 2013년 2학기부터 ‘노동대학’은 우여곡절 끝에 ‘노동아카데미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3년 1학기 강좌를 마칠 때 즈음의 일이다. 누군가 익명으로 국민신문고 민원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정식 대학도 아닌데 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고, 학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으니 시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민원을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에서 이관 받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에 사실 확인을 했고, ‘평생교육원 과정에 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안 되며, 시정되지 않을 경우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는 교육부의 입장이 전달되었다. 수강생 모두 정규 학위 과정이 아님을 알고 있어 오인의 여지도 없고, 일반적으로 ‘대학’이라는 명칭이 널리 통용되고 있고, 타 대학이나 기관에서도 정규 학위 과정이 아님에도 ‘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니 ‘노동대학’이라는 명칭 사용이 고등교육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변호사 의견서도 전달했다. 그러나 결국은 ‘노동아카데미’로 명칭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회대가 대학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교육부가 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많은 성공회대를 길들이려고 한다’, 혹은 ‘노동 교육에 대한 탄압의 시작이다’는 등의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했다.

하여간 그런 과정을 통해 노동대학을 노동아카데미로, 노동대학원을 심화과정으로, 학장을 주임교수로 변경하여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노동대학으로 지칭하겠다. 당시의 의미를 담아내는 명칭으로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대학은 사회 분위기에 따른 부침도 겪었다. 1기에 110명이 등록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이후 20기를 지나면서 등록생이 20~30명 정도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노동대학의 존립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위기 상황이었다. 20여 명의 수강생 등록비로는 강사 비용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노동대학 폐지라는 화두가 나왔다. 전·현직 노동대학 학장님들과 동문모임인 '느티나무' 회원들, 수강생들로 꾸려진 자치회를 중심으로 노동대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지 많은 고민의 장들을 가졌다. 그리하여 당시 현장 노동 교육의 거목이었던 하종강 교수님을 노동대학 학장으로 초빙하고 전직 학장님들과 ‘느티나무’가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동대학 활성화 대안이 제시되었다. 2011년 가을학기인 24기부터 8대 학장으로 취임한 하종강 학장님을 위시한 모두의 노력으로 노동대학은 다시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24기 이후부터 50~60여 명 이상의 수강생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강의 주제, 역사기행이 있는 노동대학


노동대학은 ‘정규적이고 지속적인 노동 교육’이라는 설립 취지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고,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매학기 강의 외에 특별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신입생과 졸업 동문들이 함께하는 1박 2일 입학 연수가 있다. 첫 강의도 이날 시작된다. 노동대학 운영 방식과 활동 내용을 담은 영상을 공유하고, 한 학기 교육 과정을 함께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소개한다. 그리고 저녁식사와 술이 준비된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이 자리에서 노동대학을 거쳐 간 선배들과 신입생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만든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함께하고 간단한 평가까지 하면 입학 연수가 종료된다.


7.입학식.jpg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치러진 33기 입학연수에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강의를 했다.(@노동대학)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함께 듣는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수업에 참여하는 데도 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너무나 열성적으로 수업을 듣는다. 강의가 끝나면 별다른 제약 없이 질의, 응답이 이어지고 조별 토론을 진행한다. 때로는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로가 살아왔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강의에서 느낀 점도 다르고 배워가는 점도 다르다. 다름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토론이다. 어떤 분들은 뒤풀이 장소에 가서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다른 조에 속했던 분들도 자연스럽게 그 토론에 동참할 수 있다.


본격적인 강좌가 시작되면 자치회장 및 부회장, 총무를 선출해 자치회을 구성한다. 자치회는 저녁을 못 먹고 수업에 참가하는 수강생들을 위해 김밥이나 간식 등을 준비하고, 수업 후 뒤풀이 자리, 체육대회 등을 계획하고 준비한다. 특히 체육대회는 자치회가 주관하는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이 날은 수강생뿐만 아니라 노동대학을 수료·졸업한 동문들도 함께한다. 부모를 따라왔던 어린 아이들이 20대가 되어서도 꼬박꼬박 참석하기도 한다. 운동장 한쪽에서 찌개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자발적으로 협찬한 음료수와 간식들을 나누며 어울린다.


역사기행 역시 자치회가 주관하고, 동문들이 함께한다. 근·현대사 전문가인 박준성 선생님과 한홍구 교수님 두 분을 주축으로 한 현장 강의가 이루어진다. 초창기에는 하루 일정으로 서울 및 근교에서 진행되었지만, 2011년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먼 현장에도 달려갔다. 위쪽으로는 철원·연천지역에서부터 아래쪽으로는 여수·순천·벌교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의 현장이자 생생한 교육의 현장들을 찾아갔다. 그래서 노동대학에서는 특히 역사기행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역사기행을 다녀오면 한 학기가 끝날 즈음이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었음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든든한 우군들이 존재한다는 정서적 연대감도 강해진다. 이것이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배운 하방연대(下方連帶)를 실천하는 첫걸음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7.체육대회.jpg 7.졸업여행.jpg

2015년 가을, 안산 노동대학과 함께한 체육대회               2015년 겨울, 박준성 선생님과 함께한 여순항쟁 역사기행


한 학기 수강의 종착지는 수료·졸업식이다. 수료 조건이 까다로울 수도 있지만, 현재는 80퍼센트 이상 출석, 교육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수료 리포트를 제출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바쁜 일정으로 출석일수가 부족하거나, 리포트를 제출하지 못해 수료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개근과 성실한 리포트 제출로 뿌듯하게 수료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2개 학기를 수료하여 졸업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연속 수료가 필요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꽤 오래 전에 수료했던 분이 뒤늦게 졸업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대학은 학습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경제적 형편 때문에 선뜻 수강 신청을 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 단체 활동가 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설립 초기 장학금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노동대학에 몸담았던 선배들의 애정과 열의 덕분이었다. 특히 1기 수강생이던 지하철 노조 소속의 해고 노동자 황○○ 선배님은 졸업 심포지엄에서 우수한 논문을 작성해 발표하는 등 노동대학을 열정적으로 다녔던 분이다. 그리고 노동대학에서 연인을 만나기도 했다(지금은 부부의 연을 맺고 계시다). 2002년, 이 두 분이 의기투합해 동문모임인 ‘느티나무’에 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느티나무’가 주축이 되어 10주년이 되던 2005년, 장학금 모금 활동을 하는 ‘100인후원회’를 만들 수 있는 주춧돌이 되었다. ‘100인후원회’는 지금까지 꾸준히 그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동대학 동문모임 ‘느티나무’


1기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문 모임 ‘느티나무’는 노동대학 운영에 큰 버팀목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성공회대학교에 들어서면 정면에 큰 느티나무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학생들이 모이게 되고,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친교의 장이 이루어진다. 동문 모임 명칭을 ‘느티나무’로 정한 것은 느티나무 그늘이 주는 큰 역할을 수행하자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는 수강생과 졸업 동문을 이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 가능한 수업도 같이 들으며 토론하고 삶의 문제를 공유한다. 노동대학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적립 기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나가려고 노력한다. 사회의 아픈 현장과 연대하며 사회 현실에 대한 공감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노숙농성 현장에 지지방문을 가기도 하고, 지난 4.13 총선이 치러지던 날엔 ‘느티나무’ 주관으로 1226차 정기 수요집회를 수강생과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나갔다.


대학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대학의 설립과 운영이 가능한 기본적인 틀은 성공회대에서 제공하지만, 내용을 채우고 발전시키는 주체적인 역할은 학장과 노동대학 수강생들, 그리고 ‘느티나무’가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어딘가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주체들이 숙의하여 결정한 내용들을 강의에 반영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노동대학을 운영한다. 그러고 보니 민주주의가 그대로 녹아있는 꽤나 근사한 구조다.


이 근사한 구조를 더 잘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작은 강사료에도 언제나 적극적으로 강의를 맡아줄 강사님들의 집합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는 일, 이전에 겪었던 노동대학의 침체기를 다시 맞지 않기 위해 꾸준하게 수강생들을 모집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일, 보다 많은 수강생들에게 보다 많은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확충하는 일, 노동대학 운영에 필요한 각종 지원금을 더 늘리고 지원 항목을 확대하기 위한 재원을 확충하는 일, 수료 및 졸업하신 분들이 이후에도 꾸준히 연대할 수 있도록 연계 조직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근사한 구조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전국 산업단지에 ‘지역별 노동대학’을 설립하고, 교통이나 지역적 한계로 외로이 사회 현실을 고민하는 분들과 연대하기 위해 ‘찾아가는 노동대학’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노동 및 사회 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낼 수 있는 역량 있는 노동자를 배출하는 노동대학을 전국의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긴 얘기를 들어준 여러분과 저는 다른 어떤 관계와도 바꿀 수 없는 노동대학 동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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