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교육]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세상을 바꾸려는 동지들을 기다립니다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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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하면 특징적인 것이 우선 이름이 길다. 그래서 약칭을 쓴다. ‘사이버 노동대학’이라고 쓰기도 했고 ‘전태일 노동대학’이라고 쓰기도 한다. 새 천년이 시작되던 때인 설립 초기에는 전자를 약칭으로 쓰다가 창립 10주년인 2010년 이후로는 후자를 쓰고 있다.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또는 ‘전태일 노동대학’이라고 하면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을 학교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올바른 내용을 가르쳐야 하고, 또 충실하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담을 감수하기로 각오하고 쓰고 있다. 창립 당시에 이름을 정할 때도 그렇고 1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약칭을 바꿀 때도 그렇다.


‘학습하고 조직하고 투쟁하라’


학습과 교육은 투쟁의 보조물이 아니다. 어쩌면 학습과 교육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투쟁이다. 학습하고 교육하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것은 즉자적 의식과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생적 투쟁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투쟁도 나름 노동자의 삶을 유지·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한계는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투쟁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되어야 한다.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나의 정리해고를 막고 나의 고용을 지키기 위한 투쟁인가, 정리해고라는 부당한 자본의 경영 정책을 막기 위한 투쟁인가? 전자라면 실리주의이고 후자라면 정의파다. 만약 전자라면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때처럼 식당 아주머니와 젊은 투사들을 희생시키고 자기들의 고용을 지키는 결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결과는 폐허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인휘 동지의 소설 《폐허를 보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후자라면 그런 부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장렬하게 패배하더라도 끝까지 투쟁하고, 나아가 전국적으로 김대중 정권이 제정한 정리해고법제 철폐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했다.


희망하는 바가 적고 목적하는 바가 희미함을 자랑하는 세대를 전태일 동지는 비판했다. 전태일 동지가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 목적하는 바가 희미한 노동 운동을 비판할 것이다. 학습과 교육을 투쟁의 보조물 처럼 생각하는 노동 운동을 비판할 것이다. ‘학습하고 조직하고 투쟁하라’, 이것이 선배 노동자들이 남겨준 교훈이다. 이 구호에서도 보듯이 투쟁보다 조직이 먼저고, 조직보다 학습이 먼저인 것이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이런 정신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런 정신으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5.합동교육.jpg

2015년 7월, 충북 영동 전태일 노동대학 마음수련원에서 진행한 1학년 합동교육(@전태일 노동대학)


참된 진리 추구하는 전태일 노동대학


위에서 실리 추구 활동과 정의 추구 활동을 대비시켜 이야기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학습과 교육은 단지 사적 개인들의 실리 추구를 넘어 무엇이 정의인지 이해하고 깨닫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이 불의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쪽에는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는 소수의 사람이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는 가진 거라고는 정신과 육체를 포함하여 몸뚱이 하나밖에 없어서 착취당하면서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살아가야 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설사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인간은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으로 나뉜 계급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른바 초역사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이 거짓 진리에 맞선다. 그리고 참된 진리를 가르친다. 이 참된 진리에 기초하여 진리 추구 노동 운동이 형성되고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진리야말로 우리 노동자들을 자유로운 인간으로 해방시킬 최상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진리인가? 하나, 역사는 진보하며 역사상의 어떤 문명 또는 생산 양식도 영원할 수 없고, 그 생산 양식으로 인류를 진보시키는 역할이 수명을 다하면 쇠퇴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으며 바꾸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자본주의 문명이 타락 쇠퇴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둘, 사회가 소수의 지배 계급과 다수의 피지배 계급으로 나뉘어져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착취하는 계급 사회가 된 것은 길어야 반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찬란한 반만 년 역사? 오히려 반만 년의 계급 사회다. 현생인류의 역사가 넉넉잡아 5만 년이라고 하면 그 1/10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하는 지점에 이르면 계급 사회는 소멸되어야 하고 따라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 계급 사회가 사라지면서 남과 여, 백인과 흑인, 능력 있는 자와 없는 자 등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차별 일체가 사라지고, 인간의 물질적 부가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부가 흘러넘치는 참된 문명사회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사회 정의에 관해서는 비교적 공부하기가 쉽다. 신자유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비교적 알기 쉽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많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대표적인데, 그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질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자연적 질서로 전제되고 있다. 또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흔하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에서도 반미의식은 적지 않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형태 또는 한 단계로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 의식이 부족하니 자본주의 다음에 어떤 세상이 올 것인지 내다볼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진리에 대한 의식이 매우 부족하다.


5.마음수련.jpg

2015년 10월, 지리산, 빨치산 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 비트 앞에서 (@전태일 노동대학)


학습과 실천을 병행하는 노동 교육기관


진리는 정의보다 공부하기가 더 어렵다. 요새는 사회일반에서는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 아예 진리니 진리탐구니 하는 말조차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1381년 농민 반란으로 떨쳐나서서 농노-영주제 폐지를 주장했던 영국 농민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이 정의인 동시에 진리라고 선언했다. 이런 사실이나 지점은 노동 운동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진리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탐구 없이는 자기 것으로 잘 획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 계급이 자신의 일꾼을 키우기 위해 경영대학이니 MBA니 하면서 강도 높게 공부시키듯이 노동 계급의 일꾼들도 강도 높게 공부해야 한다.


활동가들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런 취지에서 전태일 노동대학은 교과 과정이 3년에 걸친 3개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은 기초교양 과정으로 자본주의 비판을 공부한다. 2학년은 기본이론 과정으로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비판을 주로 공부한다. 3학년은 전문실천 과정으로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사회로서의 사회주의와 그런 사회를 전망 목표로 하는 노동 운동 실천에 대해 공부한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사이버 대학이므로 인터넷을 주된 수단으로 교육하고 학습한다. 요즘은 모바일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지역별로(한 학기에 세 번) 또는 전국 합동으로(한 학기에 한 번) 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한다. 이때 동료 학생들을 통해서 노동 현실과 활동에 대해 많이 듣고 배운다. 또 마음공부 즉 정신 교육도 실시한다(1년에 한 번). 진리 획득은 지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강조할 점으로, 전태일 노동대학은 노동 문제 이론가가 아니라 노동 운동의 실천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으로서 학습과 실천을 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식만 배우고 실천하지 않는 학생은 우리 대학과 맞지 않다. 반대로 실천 활동이 바빠서 공부하지 않는 학생도 맞지 않다. 그런 식의 이론적 실천이나 이론 없는 실천은 모두 노동 운동의 정도가 아니다. 치열하게 학습할수록 치열하게 실천해야 하고, 치열하게 실천할수록 치열하게 학습해야 한다. 현장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동지들의 입학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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