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교육] 변화를 위한 여정旅程의 첫걸음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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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찬|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 센터 부소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실태조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실한 조사가 많아서라기보다는 ‘뻔히 아는’ 사실을 뭐 하러 돈 들여가며 헛짓 하냐는 쪽이 많은 것 같다. 과연 안다는 것이 뭘까?지난해 서울 어느 자치구에서 그 지역에 밀집한 영세제조업종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올해엔 그 지역에서 노동 관련 사업을 조직하기 위해 활동가들이 모였다. 첫 회의를 마치고 지난해 조사사업을 주관했던 활동가가 단체톡방에 남긴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은 사업주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주 명백한 반면 노동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면접자가 계속 욕구를 끌어내는 질문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거 해보시고 싶으세요, 저런 거 해보시고 싶으세요?”」


집단화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의 처지는 생각보다 쉽게 잡히지 않는다. 간유리 너머에 있는 형상을 가늠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럴진대 주체 형성과 운동(변화)의 경로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러니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있다. 하지만 이 글이 조사사업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기까지 하고, 교육 활동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자.


지역 사회 노동(자) 교육


노동 시장의 분단화와 현재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 집단이 형성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중요한 활동이 바로 상담과 노동(자)교육이다. 상담은 소통과 유대감이며, 교육은 주체 형성과 변화를 위한 여정(운동)의 첫걸음이다. 종래에 주체 형성은 노동조합 조직을 일컬었고 교육은 노동조합을 조직(유지)하기 위해서 기능했다면, 최근엔 노동조합을 전제로 하지 않고도 교육 활동(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예컨대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의 확장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노동조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 교육이라고 하여 노동조합을 전제로 하는 교육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있어서도 분량의 차이는 있겠으나, 노동에 대한 인식과 노동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조합이 다뤄진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노동(자) 교육은 노동조합 밖에서도 수요와 교육 활동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둘째, 노동조합 교육과는 다른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셋째, 교육의 내용과 초점도 점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노동(자) 교육은 결국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연하게 개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처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작동되고 있는 원리 속에서 끊임없이 배제되고 부당함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인식하고, 연대해야 할 대상과 바꿔야 할 문제와 지향해야 할 사회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초·중·고교 12년 과정에서 월급쟁이(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도 가르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인식 자체를 불온시하고 있다. 이러니 노동조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 때에야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 아마도 대개의 경우 노동자로서 나를 인식하고 자존감 갖기, 노동자들 요구의 정당함과 자본가의 탐욕과 권력의 부정의함, 단결 투쟁의 중요성…, 대체로 이런 것들에다가 당면한 요구안 해설… 이런 내용들로 구성될 것이다. 또 노동조합 결성 이후에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교육이라면 대체적으로 총파업을 비롯한 집중 투쟁 동원을 위한 정세 교육, 임·단협을 앞둔 조합원 교육 그리고 소수가 듣는 전문 교육 기관에서 운영하는 과정의 이수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교육안이라면 노동조합원이 아닌 대중강좌로 구성하기엔 뚜렷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헌데 최근 들어 지역 사회 노동 운동으로 확장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면서 노동 교육의 내용과 폭이 상당히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앞서 얘기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비롯해서 청소년노동인권강사단교육, 시민노동법률학교, 마을과 노동이 함께하는 교실사업, 시민노동대학 과정 개설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문제는 이와 같은 교육 활동을 노동 교육으로 볼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제기다. 혹자는 ‘대상이 노동자가 아닌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진단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들어 시민 교육이지 노동 교육이 아니라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노동’이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노동조합원이 아닌 모두는 시민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면, 운동을 정파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비판은 실천적으로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적으로 노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 끊임없는 연구와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여야 모두에게 10년씩 권력을 줘봤으나, 온갖 정치적 수사만 난무할 뿐이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끼고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를 어떻게 규명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노동의 관점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실사구시하고 적극적인 규명과 제안이 크게 호응 받을 수 있는 지형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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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남권 지역에서 진행한 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 양성교육(@서울노동권익센터)


지역 사회 교육 활동의 특징


지역 사회에서 이뤄지는 교육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교육 방식에 있어서 일방적인 강의식이 아닌 참여형 학습이든 다양한 방식이 늘 고민된다는 점이다. 이 또한 대상의 차이로부터 자연스레 형성되는 고민이다. 필자도 가끔 교육자로 나설 때가 있는데, 경험 없는 강사의 특징이 청중과 대화할 준비가 아닌 뭘 많이, 이를테면 PPT페이지가 쓸데없이 많아진다는 거다. 항상 시간에 쫓겨   ‘와다다다…’ 쏟아내고 헐떡거린다.


이런 예는 어떨까? 의료·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이 있었다. 또 노동개악 반대 투쟁이 있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는 당장 이번 주말에 총궐기 투쟁에 동원을 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주말집회에 최대한 동원하기 위한 것이 교육시간 내내 목표다(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교육과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은 한층 성숙할 것이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같은 주제로 교육을 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강사라 하더라도 이 교육 참가자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주말 총궐기 투쟁에 참여를 할까? 따라서 같은 주제의 교육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다음에도 이런 주제의 교육을 또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질의·응답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조직된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활동을 통해서 조직화 과정을 가져갈 테니 말이다.


지역 사회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실천적으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조직된 대상이 아니라 조직화의 긴 여정 가운데 하나이기에 당연히 교육 주관 단위와 교육 참가자들 사이에, 교육 참가자들 각각의 사이에 관계 맺기와 연대의 방법을 구하게 된다. 이른바 적(敵)이 누구냐를 지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육 과정은 캠페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부터 공감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답’을 구하는 과정은 교육 이후 과정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혹자는 적을 명확히 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화에 진전이 없다는 비판을 한다. 사업장 단위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권, 자본가와 같은 단어로는 어림없다. 캠페인(선전전)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개념일 테고, ‘도대체 왜? 합리적 대안이, 다수의 연대가 가로막히고 있는가?’를 찾는 일일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단체 생활을 얘기할 때면 “이거저거 꽤 해봤는데, 제일 어려웠던 게 교육이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필자가 실력이 부족한 이유가 크겠지만, 또 다른 요인은 교육만큼 민감하게 여기는 사업이 없다는 현실이다. 노동조합 내에서 교육사업은 그 자체로 조직사업이고 누가, 어떤 내용의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서 조합원들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총선 전에 어떤 노동조합에서 정세 교육을 기획했단다. 총선 직전 창당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간부는 그쪽 명망가를 불러서 교육을 하자고 주장한다. 대표자는 딱 잘라 거절하기도 부담스러워서 ‘당 이야기는 안 하는 조건’으로 그 강사를 불렀단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차라리 조합원 토론을 잘 조직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요즘은 토론 조직하고 진행하는 전문가도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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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근로자복지센터와 지역사회가 함께 기획한 '새움학교' 강좌(@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 교육프로그램 연구


앞서 초·중·고교 12년 교육 과정도 언급했지만, 우리에겐 노동(자) 교육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다. 엄청나게 쏟아 부어야 할 부분이다. 몇 가지 비판의 부분도 있지만, 지역 사회 노동 운동으로의 확장 과정이 대중적인 노동 교육 활동의 확장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교육 활동 가운데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으로 두 가지가 새롭게 연구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조직화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 활동가는 지역과 노동자의 생활을 이해하고 마을 활동가는 노동을 이해하는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으로서 노동과 마을이 만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아직까지 ‘이겁니다’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올해엔 서울 3개 지역에서 3개의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 문제를 사업장 내의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생활 전반의 문제로 이해하는 조직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노동복지 상담사’ 양성프로그램이다. 이 또한 이제 막 이름만 띄워놓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 배경엔 오랫동안 많은 활동가들의 고민이 담겨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동안 많은 활동가들이 ‘교육 활동’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대안을 찾으려는 모색이 있어서 성과들이 축적되고 있고, 후발 주자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사회 노동 활동가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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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각종 문화강좌, 심리정서지원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나, 여기에선 노동교육의 범주로 다루진 않는다. 노동조합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이는 분명히 조직사업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그것은 조직사업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까지 다루게 된다면 혼란스럽게 될 수 있어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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