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우수상] 비非정규직인가? 생구生口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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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비정규직 노동자



총무부 경리 직원은 책상 위에 20만 원을 올려둔 채 점심을 먹고 왔다. 그 20만 원이 사라졌다. 점심시간 회사에 남아 있었던 직원은 우리 회사 소속 비정규직 김씨 아저씨다. 총무부 직원들 눈초리는 매섭게 김씨 아저씨를 향한다.

한 해 동안 함께 지낸 김씨 아저씨는 청소뿐 아니라, 무거운 물건을 척척 들어 옮기고,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직원들을 도와주신 분이다. 조카뻘 되는 젊은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중년 나이에 다시금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늘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20만 원이 사라진 그날부터 김씨 아저씨는 좀체 직원들 눈에 띄지 않았고, 지하실 골방에 주로 머물렀다. 여전히 총무과 직원들은 사라진 20만 원이 김씨 아저씨의 주머니에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CCTV도 물증도 없다. 심증도 아닌 짐작만 있을 뿐이다. 아무도 김씨 아저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날의 행적도 묻지 않았다. 비정규직 김씨 아저씨에게 재계약은 없었다. 마지막 날, 짐을 싸들고 힘없이 나가는 김씨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 사건은 15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 회사의 비정규직은 청소하는 김씨 아저씨 한 명뿐이었다. 김씨 아저씨가 그렇게 나간 후, 직원 50여 명의 작은 사무실은 ‘용역업체 직원’에게 청소를 맡겼다. 그때 오신 분들은 이렇게 작은 건물에서 청소 용역을 쓴다고 황당해 하며 말하곤 했다. 용역업체 청소 직원은 6개월마다 바뀌었고, 이후 회사는 해마다 계약직 직원 채용을 부서마다 한 명씩, 두 명씩 늘려갔다. 그날의 김씨 아저씨와 20대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직원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마음은 30초 공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나는 내게 말한다. ‘나는 정규직이야, 내가 비정규직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정리해고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우리 부서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부장만 회사에 남고, 나와 입사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 직원들까지 깡그리 정리해고를 당했다. 32세 그해 봄, ‘직장바라기’였던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나는 곧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비非정규직, 정규직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야? 단어가 생각의 틀을 만드는데 ‘아니다’의 개념은 실체가 없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은 그 정의조차도 모호한 무책임한 단어로, 있어도 보이지 않고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30대의 내 젊음은 비정규직에 묻혀 사그라졌다. 한 번 시작한 비정규직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럴수가···.’ 내가 비정규직에 처음 발을 디딜 땐 잠시 스쳐가는, 빨리 벗어나야 할 혼잡한 정류장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라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해고가 언제든지 가능한, 노동권 대부분을 상실한 비정규직에게는 인간 기본권도 인격권도 없다. 비정규직을 사용가치 있는 소모품, 장부에 기록되는 비용으로만 생각한다. 내가 10년의 기간제 비정규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조건을 감내 했기에 가능했다.


하나, 아프지 마라! 비정규직은 아프면 죽는다. 비정규직이 한 달 이상 장기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리면 병으로든 실직으로든 죽게 될 확률이 높다. 10년을 일해도 병가 일수는 암 치료를 받든, 교통사고 중상을 당하든 일주일이다. 7일 넘게 치료를 받기 위해 쉴 수 없다. 비정규직 최장 계약기간은 1년이고, 1년마다 새로운 계약서를 쓴다. 계약기간 기준으로 연차일수를 받게 되니, 1년차나 10년차나 연차일수는 같다. 월단위로 계약한 경우에는 연차일수가 더 짧아진다. 둘, 아이는 낳고 싶으면 낳아라. 단, 출산 휴가가 필요한 그날로 계약해지, 즉 해고다! 육아 휴직? 퉤퉤퉤!!! 비정규직 엄마에겐 해당 없음! 출산과 동시 실업자인데 실업자에게 휴직이 어찌 있겠는가? 출산 휴가 급여와 육아 휴직 급여는 비정규직 모성에게는 우주 밖의 이야기다. 납세의 의무만 있지 민주 시민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없다. 셋, 재계약이 되려면 군말 없이 ‘맡겨만 주십시오.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일하라. 조선시대 여인네들처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을 기억해라. 소신과 정직은 정중히 사절한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생구生口다! 비정규직은 아프고, 죽어가고 있다. 국민 건강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업무 스트레스는 8.71퍼센트이지만 비정규직은 33퍼센트이고, 사망률도 정규직보다 3.57배 더 높다. 체념적인 ‘비정규직의 설움’이라는 문학적 감수성 짙은 언어로 스스로를 포기하기엔 한 번 뿐인 이 세상이 억울하다.


중국 ‘가마우지 낚시법’을 본 적이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겹쳐 보인다. 가마우지라는 이름의 새는 기러기 비슷하게 생겼는데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적은 개체 수이지만 서식한다. 가마우지 낚시법은 이렇다. 가마우지의 목 아래쪽에 줄을 둘러 조여 맨다. 가마우지가 뛰어난 잠수 실력으로 물고기를 낚아챈다. 그러나 가마우지는 목줄이 매여져 있어 잡은 물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오히려 가마우지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 때문에 숨이 막혀 주인에게 간다. 주인은 ‘생명의 은인’ 행세를 하며 가마우지의 목을 흩어내 큼직한 물고기를 목구멍에서 빼 낸다.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에도 실이 질끈 매어져 있다. 가마우지는 숨 막히는 원인이 주인이 동여 맨 숨통을 조이는 줄 때문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배고파 또다시 사냥에 나선다. 큼직하니 팔 수 있는 물고기는 주인의 것이고, 작은 새끼 물고기만 가마우지에게 허락된 그날의 품삯이다. 


비정규직은 같은 일 아니, 더 위험하고 더 어렵고 더 많은 일을 하며,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해야 버틸 수 있다. 정규직과의 비교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며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늘 배고프며, 목과 발이 주인에게 묶여진 가마우지처럼, 비정규직은 힘겹게 일하고 적은 급여로 가난하게 살아가며, 목숨 줄은 계약서의 ‘갑’에게 잡혀 있다.


비정규직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도움을 받거나 참고가 될 만한 비정규직 관련 연구논문도 책도 좀체 찾기 힘든 21세기 대한민국. 약한 동물도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 속에서, 이 시대 비정규직인 내가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었던 방법을 공개한다.

첫 번째, 독을 품은 개구리처럼 혼자서 맞선다. ‘너 죽고, 나 살고’가 진정한 승자지만, 이 방법은 ‘나 죽고, 너 죽고’도 각오해야 하는 구식 방법이다. 같은 직종일 경우 재취업이 어려워져 자칫 직업을 바꿔야 할 위험부담도 있다. 비정규직 연대가 어려운 지금의 노동 시장에서 혼자서 싸우는 각개전투인 이 방법이 가장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독을 품은 개구리의 색깔은 화려하다.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야 강한 동물이 실수로 먹지 않는다. 독을 품은 비정규직은 튀는 행동을 해도 좋다. 단, 명심해야 할 것은 살아야 한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튀어라.


내가 다섯 번째 계약한 직장에서 근무한지 30일 됐을 때 일이다. 직속 상사가 으름장을 놨다.

“넌, 기간제야! 정규직과 똑같은 조건으로 일할 생각 하지 마! 내가 시키는 대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

멍하다.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잘못 했습니다, 시키는 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아리며 빌까?’ 아니면 ‘때려칠까?’ 둘 다 싫다. 숭고한 내 밥벌이는 모욕당했다. 내 생존권, 내 인격은 내가 지키자. 직속 상사와 사업주에게 ‘난 을이 아니다. 당신은 갑이 아니다. 우린 계약당사자다. 나는 계약서대로 일한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나? 당신 수틀린다고 내 생존권을 두고 협박하지 마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했다. 이 사건은, 직속 상사가 내게 찾아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1년 계약만료 후, 재계약은 없었지만 중도사퇴를 하지 않았고, 초장에 독을 내 보였으니 상사를 춘향이로 모시는 향단이 역할도 하지 않았다. 난 재계약 대신 인격권을 선택했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


두 번째, 개미처럼 집단행동을 한다. 개미의 천적은 개미가 한두 마리만 보여도 공격하지 못한다. 개미 한두 마리 있는 곳 가까이에는 개미가 떼거지로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개미 떼의 공격을 받으면, 천적은 위험해진다. 함께하라. 모여라! 집단행동을 하는 거다. 맞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거다! 집단의 힘은 강하다. 비정규직이라도 노동조합이 있으면 더 나은 복지, 급여, 근무 조건을 단체 협약 협상을 통해 받아낼 수 있다. 생구가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는 합리적이며 효과가 가장 좋은 안전한 방법이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게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900만, 노동조합 조직률은 1.5퍼센트다. 지금부터라도 함께할 사람을 모아라. 그래야 산다. 억울하면 바꾸자.


마지막 나의 생존법, 노동법을 배우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 땅에서 사는 건 고달프다. 하루하루가 외줄타기로 피가 마른다. 나는 비정규직 10년 동안 일터를 여섯 번 옮겼다. 마흔을 넘기자 원서를 낼 수 있는 곳도 팍 줄었다. 이젠 비정규직 자리를 지키는 것도 어렵다. 가마우지처럼 목구멍이 더 팽팽하게 조여 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지쳐가는 퇴근길, 도로변 현수막을 보고 성동근로자복지센터 노동법 강좌를 알게 됐다. 처음엔 ‘법을 몰라 당하고 사나?’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노동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기회라 생각하고 강의를 듣게 됐다. 노동법을 배우면서, 여태 내가 상식선에서만 노동 문제를 풀어냈지 노동법을 몰라 당하고 있다는 거조차도 모르는 채 지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랬다, 임금 노동자로 십 수 년을 살면서 노동법을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특성화고’라 불리는 당시 실업계인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에서는 직장 회식 자리 예절, 화장법은 가르쳤어도 근로 기준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근로 기준법의 존재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통해 주워들었을 뿐이다. 사업주는 근로 기준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면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다.


배워서 남 주는 노동법을 올해 써 먹었다. 2년 전 퇴직한 회사에서 성과급을 빠뜨리고 퇴직금을 계산했다. 급여 성격의 성과급은 퇴직금에 포함되고, 임금채권 소멸시효는 3년이다. 퇴사한 회사에 전화해 퇴직금이 잘못 계산된 것을 설명했다. 회사 측은 퇴직금이 잘못 지급된 것을 인정했고, 성과급을 포함해 다시 계산한 퇴직금 추가 금액을 지급했다. 나뿐만 아니라 2년 전 함께 퇴직한 기간제 동료도 퇴직금을 재정산 받았다. 이후 퇴직하는 퇴직자들도 성과급을 포함한 퇴직금을 받게 된다. ‘고맙다, 노동법!’


나는 오늘도 기간제 노동자로 살고 있다. 오늘은 어떤 부당한 일에 몸서리치며 퇴근하게 될지 불안하다. 계약이 끝나는 내년 2월이면, 나는 차갑게 얼어붙은 거리로 나와 꽁꽁 언 손에 이력서를 들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겠지. 아주 조금씩, 새털만치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좋아지고는 있으나, 비정규직 자체가 차별이다.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삶을 살더라도 생구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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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구(生口) : 소나 돼지처럼 거래되거나 그와 같이 취급되는 사람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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