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 심사평] 기록 또한 저항의 한 방식이다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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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시인



많은 사람들이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록하는 일은 그 과정을 통해 나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지금과 다른 현실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들 기록에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나면 휴식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적은 임금으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과 고뇌 탓에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글이라는 것은 아무나 쓸 수 없는, 어느 정도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는 두려움이 선뜻 글쓰기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실시하는 수기 공모전은 기록을 부추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하는 일 역시 저항의 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글들을 읽어가며 공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글을 쓴 노동자들의 처지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에 대해 공감하며, 여전히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자본의 후안무치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인간보다 돈을 먼저 섬기는 자들에게는 구걸이 아닌 투쟁이 우리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응모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의 괴물 같은 모습을 폭로하며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누가 더 많이 고통받았나, 혹은 누가 더 열심히 싸웠나 하는 것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현실을 글이라는 수단으로 얼마나 잘 드러냈느냐 하는 걸 들여다보는 게 심사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훌륭한 글들도 많았지만, 너무 당연한 말들로만 이루어진 아쉬운 글들도 더러 눈에 띈 게 사실입니다. 글 솜씨가 좋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에 앞서 얼마나 구체적이면서 생생한 내용을 담아내려 했느냐 하는 점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기’라는 양식은 결국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므로 노동 현장 혹은 투쟁 현장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삶과 고민 속으로 끌어들여서 녹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감동은 투쟁보고서와 같은 형식에 들어 있지 않고 진솔한 자기 이야기에 담겨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대상으로 선정한 <거위의 꿈>은 그런 점에서 현장의 상황과 자신의 고민을 잘 결합한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본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성에 대한 각성이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졌으면 싶은 아쉬움이 있기도 했지만, 부당함에 맞서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모습이 신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4편의 우수상을 선정함에 있어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을 통해 모아낸 큰 줄기는 일단 투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식의 서술보다는 내용의 생생함이 돋보이는 글, 그리고 글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면 가능하면 비슷한 직종이 아닌 다양한 직종의 이야기를 선정하자는 데로 모아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각기 다른 현장에서 분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담아낸 4편의 글에 우수상이라는 격려를 얹어줄 수 있었습니다.


당선된 분들에게는 아낌없는 축하를, 그리고 아쉽게 상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과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노동자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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