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나아가다]장그래, 왜 그래? 노조하면 안 그래~

by 센터 posted Mar 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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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민규 민주노총 비정규직전략본부 실장




“에이. 이거 이름만 비정규직 종합대책이지 사실은 정규직을 노린 거구만?”


박근혜 정부가 작년 12월 29일 내놓은 비정규대책을 설명하다 보면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거짓은 아니다. ‘장그래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정부 대책이 노리는 곳은 장그래가 아니라 김 대리와 오 과장, 안영이였다.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에만 정리해고를 시행하던 저들은, 이제 경영 위기가 아니더라도 근무평점, 인사고과, 성과·업적 평가를 통해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

임금 체계 개편과 직무평가 제도 도입!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국가 직무표준(NCS)을 앞세워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 직무 평가를 수행하고, 그에 따라 직무급 도입이라는 미명 아래 전반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개별 (성과) 연봉제 도입을 전제로 한다.

그럼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분연히 일어서야 할 세력은 마땅히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임금도 삭감하고 해고도 쉽게 하고 눈 밖에 나면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이 나설 차례”라고 설명을 해본다.


“그래도 우리는 노동조합이 있고 단체협약이 있으니 방어가 될 거야.”


노동조합을 가진 정규직 노동자들의 답변이다. 사실은 이 얘기도 거짓이 아니다. 대부분의 정규직 노조들은 해고 기준과 절차, 임금 체계에 대해 단체협약에 꼼꼼하게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법과 가이드라인을 개악한다 해도 단체협약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누굴 노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 더 이상 빼앗길 게 없는 비정규직도 아니고, 노조를 가진 정규직도 아니다. 노조라는 보호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 참으로 비열하게도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이들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박근혜만의 작품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가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역대 정권의 노동 정책으로 조직노동자들 일부도 피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임금 수준과 노동 조건이 조금씩 상승해 왔다. 그리고 맨 밑바닥의 최저임금 수준 미조직 노동자들(미조직 노동 ②)은 더 빼앗길 게 없어서 현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사이에 위치한 미조직 노동 ①, 즉 기본급에다 일정한 수당과 상여금을 받는 노동자들, 그래도 미조직 노동 ②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을 보장받던 계층은 지속적으로 무너져 왔다. 김대중 정권 시절 IMF 공황 시기에는 현대자동차, 만도기계를 비롯해 조직노동 상층 일부가 상당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조직노동자들만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정리해고제와 함께 도입된 근로자파견제는 이후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2년마다 해고를 반복하는 노동자층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주 40시간제’ 도입이라는 미명 아래, 대부분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토요일 무급을 강요당했다. 노조를 가진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토요일에 쉬어도 8시간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미조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 권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쟁점이 되어온 통상임금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조를 가진 정규직 노동자들 일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아 상당한 임금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최저임금에 걸쳐 있는 노동자들은 더 깎을 임금도 없었고, 임금 인상 효과를 누릴 정기상여금도 없었다.

하지만 일부 수당과 상여금을 받고 있던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문제가 쟁점이 되자 자본가들로부터 상당한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임금피크제 도입, 포괄임금제 도입, 제수당과 상여금의 기본급화 등으로 대부분 임금이 깎이고 만다.

매년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것을 빌미로 자본가들은 미조직노동 ①에 대한 고삐를 더 조여 왔다. 상여금과 제수당을 기본급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법정 최저임금을 맞춰준 것. 즉,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임금 총액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점점 미조직 노동 ②의 대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휴일수당을 없애고, 탄력근로시간제를 확대하며,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단체협약으로 방어가 되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일이 또다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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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비정규직 격차는 더 벌어지고 조직노동은 계속 고립무원의 상태로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노동 부문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일부는 오히려 조건이 상승한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서 노동 조건이 조금 처지긴 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있던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노동자들의 분포는 완만한 등고선을 그리다가 점차 절벽으로 변한다. 조직노동자들은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절벽 밑으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처지로 고립된다.

그래서 최경환 부총리와 같은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의 고통은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보호되고 있어서 기업들이 정규직 충원을 하지 않으니 비정규직이 양산된다고 말이다. 노동자들의 분포가 만들어낸 절벽이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할수록, 최경환 부총리의 거짓말은 점점 사실처럼 들리게 된다.

물론 공공기관 정상화, 공무원 연금 개악 등 조직노동자들도 상당한 공격을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조직노동자 전체를 한목에 적으로 만들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어떤 때에는 현대차와 같은 제조업 조직노동자를, 어떤 때에는 공공부문 조직노동자를, 어떤 때에는 민간서비스 조직노동자들을 공격했다. 한꺼번에 이들을 공격한 적은 IMF 때가 유일했다.

그 결과, 공격당하지 않은 조직노동자들 일부의 조건은 조금씩 나아졌다. 정부는 이런 지점을 적극 활용해 ‘귀족 노동자’ 이데올로기를 펼친다. 경제 사정이 또다시 IMF와 같은 상황으로 몰리면 조직노동 전반을 공격하는 때가 오겠지만, 그때가 오기까진 절대로 조직노동 전체를 한목에 적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조직노동 일부를 고임금 상태로 남겨놓아야만 ‘정규직 과보호’, ‘이중적인 노동시장’ 등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견 노동, 빗장을 완전히 푼다


이런 조건에서 박근혜 정부는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조치를 끼워 넣었다. 5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는 업종 제한 없이 파견을 허용하자! 아니, 경로우대 할 게 따로 있지, 왜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부터 고령자들을 우선순위로 배치한단 말인가?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기간제한 없이 파견을 허용하자! 이게 무슨 말일까? 아, 박근혜 정부는 정말 가공할 정책을 내놓았다. 표준직업분류표 상 대분류 1(관리직)과 대분류 2(전문직)에 포함된 모든 업무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자고 한다. 그것도 파견법에 명시된 ‘2년 기간 제한’도 적용되지 않도록, 다시 말해 ‘평생 파견’의 문을 열어주자고 한다.

말이 좋아 대분류 1, 2 등 2개 업무처럼 보이지만, 세세분류로 보면 무려 400개가 넘는 업무들이 포함된다. 초·중·고 교사는 물론이고 간호사 업무도 포함된다. ‘물류 배송 전문직’이라고 포장하면 택배 노동자들도, ‘기계장치 수리 전문직’이라고 둔갑시키면 자동차 정비사도, ‘품질검사 전문직’이라고 하면 사업장마다 존재하는 QC 업무들 모두에 파견이 가능해진다.


장그래에게 노동조합을!


하지만 노동자들이 공격만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회만 되면 “이건 아니야”, “우린 화가 많이 나 있다구”라는 표현을 한다. 18년 무쟁의라는 오욕의 역사를 뚫고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파 집행부를 세우고 파업에 나섰다. 정몽준 왕국이라 불리던 얼어붙은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교섭을 하고 파업을 진행한다.

“이쯤 하면 되지 않았어?” 하며 들고 온 잠정 합의에 대해 현대중공업 조합원 2/3가 반대표를 던진다. 그 직후에 펼쳐진 대의원 선거에서 10%도 채 되지 않던 민주파 대의원의 구성을, 단숨에 과반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직 우린 싸울 힘이 있다구!”

어디 그뿐인가?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의 직선으로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조합원들은 “박근혜와 맞장 뜨는 총파업”을 내건 쌍용자동차 해고자 한상균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이지 않았던가. 이렇게 대중들은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잘 나가는 종합상사의 계약직 신입사원 장그래, 그가 부디 2년의 기간을 넘어 정규직이 되기를 많은 이들이 응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계약 해지였다. 장그래는 속으로 되뇌인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다.” 정말 죽도록 열심히 일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않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제 다른 장그래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린다. 원 인터내셔널에 없었던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한다. 물론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지난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구경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이를테면 한국GM 군산공장은 가동률이 50%대로 떨어져서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극심한 고용 불안을 느끼는 사업장이다. 이미 작년에 비정규직 사내하청 360여 명이 ‘자진퇴사’라는 이름으로 길거리에 쫓겨났다. 정규직도 위기를 느끼는데 언감생심 비정규직이 나설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난 1월 20일, 군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1명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용기 있게 나섰다. 비록 2명, 3명, 아니 수십 명을 조직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군산공장과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고용을 보장받고 권리를 쟁취하겠다고 나서는 장그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옆의 장그래들도 지난 십수 년 동안 보고 듣고 느끼며 학습한 것이다. 정규직 과보호? 사실대로 말해라. 재벌들이야말로 과보호되고 있잖아! 너희들이 정규직을 안 뽑아서 비정규직이 늘어난 건데 왜 남 탓을 하고 그래?

김대중과 노무현이, 이명박과 박근혜가 해온 일들을 겪으며,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박근혜 정권은 선거가 없는 올해가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공격을 밀어붙일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지만, 장그래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선거가 없기에 장그래들이 기댈 곳은 집단적인 저항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정세에서 비정규노동 조직화를 고민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드라마 〈미생〉의 등장인물에 노동조합을 추가하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미생의 각 장면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상상하자.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장그래에게 노동조합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자. 바로 그게 가능해진 정세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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