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란?] 산재보험 50년, 바꿀 수 있다면 스웨덴처럼

by 센터 posted Aug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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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본 글은 <산재보험 50년 토론회 노동자가 바라본 산재보험실태와 개혁방안> 토론회 발제문 중 일부를 담은 것으로서 전문은 민주노총 홈페이지(http://www.nodong.org) 에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글|임준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1. 서론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은 ‘업무상 사유로 인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 즉 직업성 손상 및 질환에 대해서 법에서 정한 인정 기준에 부합할 경우 해당 환자의 청구에 따라 현물급여 및 현금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196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산재보험은 보편적 사회보장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실시된 사회보험제도로 사업주와 국가가 재원을 부담하여 산재환자의 의료보장 및 소득보장을 위해 실시되는 제도다(이인재 등, 2010). 2010년 기준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 수가 약 1,608,361개,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 수가 약 14,198,748명에 달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용노동부, 2011)
한국은 직업성 손상과 질환으로 인한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이 OECD 회원 국가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두 번째로 높은 멕시코에 비해서도 2배가 높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수근 등, 2009). 그런데 높은 사망만인율에 비해 직업성 손상 및 질병의 발생률을 반영하고 있는 재해율은 OECD 평균의 1/5 수준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재해율이 낮은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망만인율과 재해율의 비가 유사해야 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에 근거해 볼 때 한국의 재해율은 실제 발생하고 있는 직업성 손상 및 질병의 크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oos etc., 1980).
건강보험 자료에 기반하여 분석한 임준 등(2007)의 연구 결과를 보면 2006년 한 해 동안에 일하다가 다친 직업성 손상은 1,080,000건으로 추정되는데 반해 그해 실제로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은 직업성 손상은 89,000여 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신상도 등(2010)의 연구에서도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 중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함에도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직업성 손상자 수가 1년 간 21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초해 볼 때에 직업성 손상 및 질병에 이환된 노동자 중 상당수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재해율이 낮다는 것은 실제 산재 발생이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 급여를 받지 못한 채 건강보험의 급여를 받고 있거나 의료기관에서 일반 환자로 처리가 되어 아예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노동자가 절대 다수라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이처럼 산재보험의 적용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이 사업주 부담인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노동자의 개인 부담이 매우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되어 사업주에서 노동자로 부담이 전가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산재 환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문제는 현행 법률 위반에 해당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좌혜경 등(2013)은 직업성 손상뿐 아니라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까지 포함하여 연도별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을 추정하였는데, 최소값이 2014년 한 해에 2,866억 원이고, 최대값이 6,093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의 누적분은 최소값이 1조 6812억 원이고, 최대값이 3조 5746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아야 할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될 경우 무엇보다도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여 발생하는 노동자 건강의 문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건강보험은 적용 대상의 보편성 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다.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도 문제이지만, 소득 손실로 인한 가계 부담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는 산재보험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에서도 소득 보장을 해 주기 때문에 의료보험으로 보장받는 것이 가계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의 건강보험은 소득 손실에 대한 보장 기능이 전혀 없어서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소득 보장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이고 기업에서 별도의 소득 손실에 대한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치료비 부담뿐 아니라 소득 손실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게 되고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산재 환자가 산재 병원 등과 같이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갖춘 병원을 이용하지 못한 채 건강보험으로 일반 병의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터로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어서야 산재보험을 신청하게 된다. 이처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되어서야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게 되는 현 산재보험 체계는 산재환자의 조기 직장 및 사회 복귀라는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을 전혀 실현하지도 못 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자가 영구적인 장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상황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2. 산재보험의 현황과 문제점
 
1) 낮은 급여 보장성

먼저, 요양급여의 보장성이 높지 않은 문제를 들 수 있다. 산재보험의 요양급여 범위는 건강보험의 급여 항목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차이는 건강보험의 경우 요양급여에 본인 부담이 존재하지만 산재보험은 본인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면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재보험의 요양급여 범위가 건강보험의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신의료기술 등과 같은 비급여 진료비는 산재보험에서도 급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본인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선택진료료 등과 같은 일부 항목은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에서는 보장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상급 종합병원의 경우와 같이 비급여가 많은 병원의 경우는 상당한 수준의 본인 부담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산재보험에서 소득 보전 차원으로 제공해 주는 휴업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지 않은 문제를 들 수 있다. 현행 산재보험은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만 휴업급여로 제공해 주고 있어서 대기업과 같이 별도의 임금 보전에 대한 단체협약이 없는 경우는 가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양급여의 보장성이 낮고 보호자가 간병을 할 수밖에 없는 병원 환경에서 재해를 당한 이후 가계의 실질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인 경우가 많은데, 배우자가 간병을 할 경우 가계의 실질 임금이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더욱이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일부 대기업처럼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산재에 따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후퇴를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일반적인 질병으로 인한 상병수당(휴업급여)이 평균 임금의 80%인 것을 감안할 때에 산재보험의 휴업급여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산재보험은 치료가 완전히 종결된 후 장해 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애로 인한 소득 손실에 대하여 장해급여를 통하여 보상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장해등급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조차도 보상의 수준이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아 재해노동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2) 제한적인 적용 대상

현행 산재보험은 법률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가 적용 대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농업, 건설업 등 업종별로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존재한다. 또한 소규모 음식점 등과 같이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고,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1인 사업장 또는 농민 등 자영업자들도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 중 상당수가 아직도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고, 기존에 적용이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도 회사 측에서 노동자에게 적용 제외를 신청하도록 유도하여 실제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10%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런데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하여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을 정하고 있고 산재 보험료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에서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재해 노동자의 신청으로 적용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산재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한다거나 사전 예방보다 사후약방문식의 행정 처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산재 적용 대상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을 해 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재해나 직업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리기 때문에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게 된다. 이래저래 산재보험 적용에서 배제되기는 매한가지다.


3) 취약한 산재보험의 접근성

사고성 재해와 직업성 질환으로 치료를 받게 된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보호자가 산재보험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게 되는데, 실제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사전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즉 재해가 업무 때문에 발생하였는지,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발생하였는지를 따져서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산재로 인정을 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재보험 신청자 중 상당수가 산재보험의 급여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일부 직업성 암이나 뇌혈관질환 등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산재 인정 범위가 협소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의 접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노동자가 사고성 재해 및 직업병이 발생하여 치료와 요양이 필요할 경우 노동자 또는 보호자(대리인)는 본인과 회사의 날인, 병원 의사의 소견서 등이 포함된 요양신청서 3부를 작성하고, 재해경위서 및 목격자 진술서 등 증빙 서류를 함께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만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근로복지공단 지사는 요양신청서가 접수되면 회사의 담당자를 불러 작업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자문 의사에게 작업관련성에 대한 자문을 받은 후 최종적인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승인 과정이 사고성 재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는 1~2주 안에 승인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직업병의 경우는 작업 관련성에 대한 다툼이 커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승인 과정만 한정 없이 길어지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요양이 인정이 되기 전까지 치료비에서 실제 본인부담 비율이 50%에 달하는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아야 된다. 만약 산재 신청이 불승인될 경우는 행정심판절차를 밟든지 아니면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리게 되어 재해 노동자 본인과 가계에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현행 산재보험은 재해 노동자에게 업무 관련성의 입증을 요구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사전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며, 그 기준마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침해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산재 이후 긴급하고 적절한 치료 및 재활 서비스를 받아야 할 재해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주의 측면에서 보면 산재 은폐를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4) 부실한 재활과 직장 복귀의 어려움

산재보험의 목적은 재해 노동자가 신속한 치료와 보상을 통해 직장과 사회에 조기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데에 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은 재해 노동자가 조기에 직장에 복귀할 수 없는 제도다. 정부의 실태 조사에 의해서도 산재로 보상을 받은 노동자 중에 원 직장에 복직하거나 새로운 직장에 재취업을 하는 경우는 5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원 직장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원 직장 또는 새로운 직장에 재취업을 하는 독일 등에 비교해볼 때 거의 재활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데에는 초기 산재가 발생한 시점부터 재활 체계가 작동하여 원 직장에 복귀할 때까지 통합적인 치료와 재활이 이루어지는 서구 복지국가와 달리 처음에 대부분 건강보험을 이용하게 되어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그 중 일부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되어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적용을 받는 등 직업재활이 매우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재해 노동자가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받더라도 상당수가 원 직장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제도적으로 원 직장 복귀 등을 포함한 사업주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재해노동자의 과거 직업력과 현재의 상태에 기초한 적절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창업 중심의 재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산재의료원에 재활센터가 새롭게 구축되고 관련 인력이 보강되고 있고 직장 복귀에 맞추어져 있는 재활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으며 산재지정 의료기관과 산재의료원 간에 연계체계가 구축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초 요양 단계에서 산재로 신청되지 못한 채 건강보험으로 급성기 치료를 거친 후 나중에 산재요양 및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는 한 재활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해도 재활 체계 및 프로그램의 분절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중증도가 심하지 않은 산재 환자에게 초기부터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원 직장 복귀 및 추가적인 악화를 방지할 수 있는데도 현행 산재보험제도는 상당한 정도의 중증도가 발생한 이후에야 직업재활 체계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서 문제가 해결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5) 기업의 부담 능력과 역행하는 차등보험요율 제도

현재 산재보험은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과 사업장이 산재보험료를 많이 부담하는 차등보험요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예방 효과라는 이유로 차등보험요율 제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 재해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도 효과가 불명확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등보험요율 제도는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보험료 부담을 증가시켜서 오히려 산재 은폐의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부담 증가가 소규모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데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보험료 부담 증가는 곧바로 노동자의 임금으로 반영되어 그렇지 않아도 낮은 임금을 더 낮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기업과 소기업의 임금 격차의 원인으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등보험요율 제도는 사회적 연대를 원리로 하는 사회보험의 연대적 원리 및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제도다. 만약 건강보험이 질병이 많이 발생할 위험이 큰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많이 부담한다고 하면 민간보험과 다를 바가 없고 질병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하여 공동체가 공동으로 해결하고자 만든 사회보험의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산재보험도 마찬가지다. 산재라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공동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산재보험을 만들었는데, 위험에 따라 기여를 다르게 한다면 사회적 연대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강제 가입의 원칙과도 맞지 않게 된다.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공동 대응을 하기 위하여 강제 가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기여를 다르게 한다면 왜 강제 가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등보험요율 제도는 실제 위험을 생산한 자는 보험요율이 낮고 힘이 없어서 위험을 떠안은 자는 보험요율이 높은 매우 불공평한 제도라는 점에서 매우 부정직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실제 상당수의 위험은 대기업에서 생산하고 하청이나 용역 등의 방법으로 중소기업 사업장과 비정규직에 위험을 전가시키고 있는데, 그래서 발생한 산재 결과에 의해 보험요율을 높이 설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3. 산재보험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1) 노동자 건강보장 제도의 통합 필요성

현재의 산재보험은 노동자 건강이 지향하는 바를 담보해 내기 어려운 낡은 틀을 갖고 있다는 점과 자본의 축적 체제가 변화는 과정에서 고용 관계의 변화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담보할 만한 틀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산재보험은 불건강 상태에 처한 노동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불건강 상태 이전으로 복귀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권을 실현하겠다는 철학과 목표에 기반해서 성립,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재해에서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산재로 인한 개별 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 과정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 자본주의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에서 성립,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 및 사회시민운동의 발전과 시민 의식의 향상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권리 의식이 커져가게 되었고, 노동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 더 나아가 모든 시민의 건강권이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어 나가게 되면서 기존의 산재보험의 틀이 변화된 권리 의식을 담아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선진국에서 동일한 속도와 체계는 아니지만, 엄격한 원인주의에 기초한 과거의 틀을 벗고 노동자의 불건강 상태라는 결과에 착목하여 노동자와 보편적 시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평등하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제도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전히 산재보험 제도의 독립성이 강한 조합주의 전통의 국가들도 자영업자 등 기존에 포괄하지 못한 일하는 사람을 산재보험의 틀에 포함시켜 나가고 있고, 북유럽 등 국가주의적 전통이 형성된 나라들은 통합적인 건강보장 제도가 정착되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 기초할 때에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직업성 유무에 따라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을 구분하고 별도의 보장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을 못하여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소득 손실에 대하여 보전을 받아야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은 직업성 유무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여 업무 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행정 절차에 기인한 사회적 비용 문제 뿐 아니라 건강할 권리의 평평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은 체계라 할 수 있다.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불건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노동자 건강에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원인을 한두 개의 원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 관련성을 갖고 있고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엄격하게 업무의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기능 재정립

장기적으로 북유럽과 같이 직업 관련성과 상관없는 통합적인 노동자 건강보장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건강할 권리가 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라고 한다면, 불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최대한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질병의 원인과 대상자의 차이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현행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무상의료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강화된다는 조건에서 노동자든 비노동자든 직업성 질환이든 비직업성 질환이든 건강보험 체계에서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산재보험은 상병수당(휴업급여)을 담당하는 사회보험 기구로 확대 개편하여 현재와 같이 직업성 질환자만 상병수당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업성 유무와 상관없이 소득 손실이 발생하는 질환에 대해서 모든 임금노동자에게 상병수당이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요구된다.
물론 더 깊숙이 들어가면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기능 재정립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모두 부담을 하는데, 건강보험으로 요양급여 부분이 통합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를 모두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해서 사업주가 자신 또는 주주 몫으로 돌아가는 이윤 중 일부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가시키게 된다면 사업주 부담과 노동자 부담의 비율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회임금에 대한 보편적 시각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부담 비율을 줄이고 사업주 부담 비율을 늘리는 작업, 즉 사회임금 부분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기능 재정립을 부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당장에 통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는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왜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바꾸기 위하여 각각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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