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란?] 비정규노동자 산재 신청의 현실과 장벽

by 센터 posted Aug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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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권동희 공인노무사


산재보험, 잃어버린 50년
산재보험 제도가 50년이 되었다고 한다. 참 긴 세월이다. 50년이면 강산이 5번 정도 변할 시기인데, 정작 산재보험제도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산재보험 제도가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에 기초함에도 정작 노동자들 중 산재법이 무엇인지, 산재보험 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인정 기준이 무엇인지 등을 배워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산재보험 제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운영해 온 주체, 즉 정부와 국가 그리고 사용자의 책임이다.
통상 노동자들은 회사 내에서 업무를 하다가 다친 경우 산재라는 개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회사가 산재 신청을 해 주어야만 가능하다고 오해하고 있다. 현재 노동자가 업무로 인해 다치거나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 4일 이상의 요양치료를 필요로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면 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이란 것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다. 독일처럼 산재전문 의사가 대신 신청해 주는 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 산재 신청은 모두 재해자에게 증명(입증)책임을 부과한다. 즉, 노동자가 산재인지 아닌지 여부를 자료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그럼 요양이 아닌 죽은 경우에도 죽은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가? 이 때는 유족이 해야 한다.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대신 해 주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다. 다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사업주가 산재 신청에 조력을 해 주어야 할 의무는 규정하고 있지만, 조력을 해 주지 않는다고 처벌되지 않는다. 벌칙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요양치료를 필요로 할 경우 요양급여신청서, 초진소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초진소견서는 최종 내원한 양방 병원 주치의에게 받는다. 간혹 의사들이 초진소견서를 써주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또는 산재 제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초진소견서 작성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초진소견서 없이 제출해도 무방하다. 사망의 경우 제출하는 유족급여청구서에는 초진소견서 대신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를 첨부해서 제출하면 된다.
문제는 요양급여청구서나 유족급여청구서 모두 하단 좌측에 사업주 도장을 받는 난이 있다. 이로 인해 사업주 날인을 받지 못하면 산재 신청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꽤나 많이 본다. 사업주의 도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 사업주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백지에 기재해서 제출하면 그만이다.



사례1: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촉탁직 노동자
A 노동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촉탁직 노동자였다. 부서 야유회가 있어 반장이 같이 가자고 해서 일요일에 참여했다. 야유회 도중 족구를 하다가 다쳤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산재 처리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현대자동차 촉탁직 노동자의 계약 기간은 2~3개월 정도이다. 회사가 2년 이내 범위 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규직 노동조합에도, 그렇다고 사내하청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해 보호받지 못하는 불행한 노동자다. 명백히 부서 야유회라는 회사의 공식 행사에 참여해서 다쳤음에도 회사가 산재 신청을 거부해서 곤란을 겪고 있었다. A 노동자는 결국 정규직 노조 노안(노동자 안전)부장에게 문의를 하게 되었고, 본인의 조력으로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다. 회사에서 날인을 거부한 사안이었으므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별도로 사업주의 의견서를 받았다. 회사는 임의적인 야유회이고 강제성이 없는 참여라고 해서 사업주 지배 관리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단체협약·노무관리·관행상 실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산재로 처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다시 발생했다. 대부분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할 수 없는 것은 ‘해고’등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 A 노동자도 결국 산재 신청을 요청한 이후 회사에서는 계약 기간 만료로 해고 조치하였다. 이런 해고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사안은 중대하게 다친 경우나 사망한 경우, 명백히 장해가 남는 사고에 국한된다.



사례2: 우체국 수화물 분류 계약직 노동자
2년 전 산재가 불승인되어 온 우체국 계약직 노동자 B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우체국 업무상 수화물 분류 작업은 대단한 육체적 노동인데다가 근로시간도 상당하다. B 노동자의 경우 추석 성수기 업무가 집중될 때, 소포를 실어 옮기는 팔레트에 오른발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이후 골절상에 대해서 며칠 간 공상으로 처리되었고, 이후 출근해서 왼쪽 무릎에 힘을 주는 자세로 소포 분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왼쪽 무릎에 ‘반월상 연골 파열’이라는 상병이 발생하게 되었고, 회사에 산재 신청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공상 처리된 사실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다. B 노동자는 자신의 상병에 대해 산재 신청을 했으나 불승인되었고, 회사는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도 있고 입증할 자료라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B 노동자의 경우처럼 공상 처리한 사실마저도 부정할 경우, 사고와 재해와의 인과 관계를 노동자가 입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오히려 다수 사업장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에 있어서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례3: 현대삼호중공업 하청회사 노동자
C 노동자의 경우 현대삼호중공업의 하청회사 노동자였다. 평소 건강한 57세의 여성노동자로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 요인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담당하던 업무가 2인 1조에서 1인 1조로 줄어들고, 업무량이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잔업 특근이 증가하던 중 ‘자발성 뇌출혈’이 발생하여 산재 신청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하청회사는 사업주 날인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고 이전 6개월 동안 1회의 연장근무를 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업무량이 줄어들어 1인 1조로 변경했다고 하며, C 노동자가 담당했던 용접 작업 등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현재 공단은 거의 모든 산재 신청 건에 대해 사업주의 문답서를 받는 형식으로 확인을 거친다. C 노동자의 경우처럼 사업주 날인 거부, 문답서상 사실 왜곡 진술, 불승인될 수 있는 자료 제공 등이 이루어지면, 산재 인정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는 하청회사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원청회사의 지시나 의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어떤 하청회사가 원청회사의 지침을 어겨가면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특히 건설 현장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사례4: 건설일용직 노동자
D 노동자는 건설일용직 노동자였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청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했다. 업무 중 발꿈치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고 난 후 하청회사에 얘기했으나 원청 소장이 나서서 공상 처리하자고 했다. 며칠간 치료비에 임금을 주고 난 이후, 통증이 지속되어 큰 병원에 가보니 쉽게 나을 병이 아니라고 했다. 다시 회사에 얘기하니 원청에서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산재 신청을 하려 했고, 주위에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사고에 대한 확인서를 요청했으나 모두 회사의 눈치를 보면서 거부했다. 심지어 산재 신청 후 원청회사는 동료들이 사고를 보지 못했다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D 노동자의 산재는 결국 불승인되어, 심사청구 및 재심사청구에서도 기각(불승인)되었다.
건설 현장에서 원청 사업주들이 산재 승인을 방해하는 대개의 경우는 이와 같다. 심지어 사업주 문답서 이외 별도로 전문 노무사를 선임해서, 왜 산재가 아닌지에 대해 장황한 의견서와 증거 자료를 제출하기도 한다. 산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노동자와 원청사업주, 그리고 사업주가 선임한 노무사와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사례5: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
처음부터 산재 신청 자체가 원천적으로 막힌 경우도 많다. E 노동자의 경우 경주신라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에 근무하는 경기보조원 노동자이다. 경기보조원 뿐만 아니라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택배 및 퀵서비스 노동자는 현재 산재법 125조에 의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규정에 의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사업주가 법 적용에 대한 적용제외 신청을 한 경우에는 혜택을 볼 수 없다. E 노동자는 사업주가 어느 날 내민 ‘적용제외신청서’에 사인을 했다. E 노동자뿐만 아니라 회사에 있는 모든 경기보조원들은 사업주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신청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였다. 이후 E 노동자는 회사에서 디폴트(골프를 치다가 홈이 파인 곳) 보수를 위해 불렀고, 전동카트를 타고 가다가 뒤로 넘어져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 그때 사인만 하지 않았다면, 회사에서 적용제외 신청만 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 그 아쉬움
이 밖에도 말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산재 이야기가 있다. 노동법이, 그리고 노동법의 하위 법률인 산재법과 그 제도가 노동자들의 투쟁과 권리로 만들어져 왔던 역사를 생각하면, 오늘날의 산재보험 앞에 선 비정규노동자의 현실은 아쉬움을 넘어 깊은 슬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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