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_최우수상] 20년 이상 장기근속이 죄인가?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허지희  세종호텔 청소 노동자


허지희2.jpg


세종호텔은 예전부터 장기근속자가 많았다. 계약직도 1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단체협약이 있어 정규직 300여 명이 일하는 작지만, 화목한 특2급 호텔이었다. 그러나 113억 회계 부정과 비리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세종대학교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세종호텔은 조용할 날이 없다.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A급 찬동 인사인 주명건 회장은 중간 관리자들을 앞세워 세종호텔노조 탈퇴와 복수노조 가입을 종용했다. 결국 새로 만든 노조가 다수 노조가 되었다. 


20년 이상 장기근속해 온 여성 노동자를 객실 청소 노동자로 발령내는 일은 거의 나가라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성공적인 듯했다. 교환실장과 프론트 여직원을 청소 노동자로 발령내니 스스로 사표를 냈고, 노조 간부의 부인이기도 한 경리과 직원이 무릎 관절 이상으로 전환배치를 거부하자 해고했다. 


호텔 뷔페에서 단아하게 한복을 입고 고객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트리스였던 영진은 참으로 고왔다. 그녀가 둘째 아이 출산 이후 객실을 청소하는 룸메이드로 발령났다. 호텔 커피숍에서 첫 번째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할 때 이미 둘째를 임신 중이어서 서빙을 할 수 없어지자 지배인의 미움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더니 객실 청소로 발령난 것이다. 영업부 직원이 객실부로 발령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랫동안 총무과에서 일했으나 주명건 회장의 재판에서 반대 측 증언을 한 란희는 그의 미움을 톡톡히 받았는지 교환실 경리과 등 여러 부서로 전환배치를 당하다가 객실 청소 노동자로 발령받았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육아휴직을 내어 쉴지언정 그만두지 않았다.


나는 1994년 공채로 입사해 대표전화를 받는 전화 교환 일을 했다. 입사 당시 전화 교환은 여덟 명이 24시간 3교대 근무를 했다. 30년 이상 근무한 실장님이 축하를 받으며 정년 퇴임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직장생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주명건이 호텔 회장으로 들어온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종호텔노조 간부였던 교환 실장님이 객실 청소에 발령이 나자 퇴사를 결정하고, 교환실은 세 명이 2교대하는 근무 형태로 바뀌었다.


교환 실장님이 전환배치 문제로 퇴사하자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나를 지키기 위해 노조 파업에 동참했다. 2012년 파업 당시 우리는 단체협약인 1년 이상 일해 온 계약직의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걸고 호텔 로비 농성을 했다. 첫 파업에 자신감 부족으로 복귀해 버리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나도 파업이 길어지자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부당한 회사의 행태에 맞서 당당히 싸워 38일 만에 승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첫 파업을 경험하면서 사측도 진화해갔다. 현장 통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노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진행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세종호텔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탈퇴하라는 개별적인 설득과 협박은 지속되었다.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조차 세종호텔노조를 떠나갔다. 로비 점거 38일 동안 숙식을 함께했고 팔뚝질과 노동가를 배우고, 머리를 맞대 집회를 준비하고 매 교섭의 긴장과 승리의 기쁨 등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동지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는 슬픔과 실망감은 일반 조합원인 나조차도 견뎌내기 힘들 만큼 서운했다. 당신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 주었는데 이렇게 떠나가느냐는 원망이 생길 만큼. 나중에는 기본급 6개월 치를 받고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과 시간이 흐르며 250여 명이었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은 이제 해고자 포함 15명에 불과하다.


하루 열다섯 객실을 청소하는 일을 못 버티고 퇴사할 줄 알았던 영진, 란희가 버텨내자 사우나에 근무하던 희정도 버텨내고 일을 배우고 아플지언정 퇴사하지 않았다. 아프면 아픈 대로 수술하고 치료하며 일을 해 나갔다. 그녀들은 자신이 가입한 소속 노조와 상관없이 스스로 버텨내는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근속상을 받는 날이었다. 나는 전화 교환과 통합된 프런트 직원들이 맞춰준 큰 꽃다발도 받고 들떠있었다. 그런데 당일 오후 5시에 인사발령이 났다. 교환실 동료와 함께 청소 노동자인 룸어텐던트로 전환배치되었다. 원래 룸어텐던트로 입사한 나이 많은 후배님들과 타 부서에서 전환배치되어 온 어린 선배님들이 있었다. 그들이 버텼으니 나도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은 전환배치를 거부하고 해고된 세종호텔노조의 전 위원장인 김상진 동지도 처음 해보는 청소 노동이 힘들겠지만 직접 경험해보고 그래도 도저히 못 하겠으면 한 달 후든 두 달 후든 그때 포기하면 되니 일단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힘이 생겼다. 20년 동안 입어 온 교환실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다시 입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그리고 앞치마를 두른 새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객실 청소 교육은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되었다. 엎드려 욕조를 닦고 고객이 사용한 변기를 닦으려니 면장갑과 고무장갑 두 개를 꼈어도 손대기 힘들었다. 비대 노즐에는 변 찌꺼기가 묻어 있기도 했다. 첫날 열세 개의 화장실을 닦다 보니 더러움보다 허리가 아팠다. 교육 둘째 날 일을 마치니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서러운데 “미국은 대학교수도 청소 일로 투잡을 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위로랍시고 던진 남편이 더 미웠다. 서럽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순대국 가게에서 안주 없이 소주 한 병을 연달아 마시고 가게가 떠나가도록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다음날 새벽 스마트폰으로 월급이 입금된 것을 알았다. 전화를 받든 청소를 하든 월급은 같았고 우리 가족은 돈이 필요하고 월급쟁이인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청소일에 힘을 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침대 시트를 교체하는 베드 메이킹을 시작하며 매일 아침 손가락 통증으로 잠을 깼고 테니스엘보가 생겼다. 하지 않던 일의 과로가 일상이 되니 생리가 없어졌고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면 너무 아파 금이라도 갔나 해서 병원에 가보니 진단은 목디스크였다. 일을 하면 할수록 병명이 늘어갔다.


세종호텔에서는 전에 없던 딥클리닝이라는 업무를 시키고 인스펙터라는 업무를 새로 만들었다. 딥클리닝 직원이 따로 있는 다른 호텔과 달리 룸어텐던트에게 매일 한 방씩 딥클리닝을 하고 검사받는 것인데 몇 가지 규정만 있을 뿐 천장부터 침대 아래까지 ‘다’ 청소하라는 것이다. 회사는 룸어텐던트로 일하던 두 명을 인스펙터라 부르고 청소한 방을 사진 찍고 채점하게 했다. 초반엔 지적한 부분의 사진을 청소한 직원 이름과 함께 벽면에 전시했다. 인격 모독이라며 항의가 거세자 개인 차트를 만들어 매일 채점했다. 


청소 노동도 힘들었지만 지적당하고 사진 찍히고 인스펙터가 “빠진 물건 가지고 와라.”, “걸레 가져와 닦아라.” 하며 주는 스트레스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고객의 컴플레인이 있어도 없어도 팀장은 수시로 경위서를 요구했다. 고객이 잃어버린 화장품과 인형을 발견해 보관해줘도 칭찬은커녕 제때 안 내렸다고 경위서, 고객의 빨대를 버렸다고 경위서, 인스펙터 점검에서 무료 생수 넣는 걸 잊었다고 경위서, 조합원들이 모여 모닝커피 마셨다고 근무지 이탈 경위서, 지각이 아닌데도 늦었다고 경위서. 납득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서 항의하면 경위서에 억울하다는 내용을 상세히 적으라고 말한다. 교환실 20년 동안 써본 적 없는 경위서를 수시로 요구했다.


그 이유는 성과연봉제 때문이다. 세종호텔은 친 사 측 교섭 대표 노조와 합의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매해 임금을 10퍼센트 인상하거나 삭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전 계장급 직원에게 도입된 연봉제는 최대 30퍼센트까지 삭감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교섭 대표 노조는 조합원에게 의사조차 묻지 않고 비민주적으로 합의했다. 20년 이상 장기근속자 월급이 용역 룸어텐던트의 최저임금보다 많으니 회사는 임금 삭감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딥클리닝과 경위서의 축적으로 업무 성과를 수치화하고 삭감할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성과연봉제 첫해 내 연봉은 9퍼센트 삭감되어 1년 중 한 달 가까운 월급이 날아갔다. 성과연봉제는 이런 식으로 회사 마음대로 주고 싶은 만큼 줄 수 있도록 해준 합법적인 악법이다. 조합원 중에는 여러 해에 걸쳐 삭감되어 월급이 반 토막 난 분도 계시다.  


청소 노동자로 전환배치된 후부터 나는 복직을 위해 노조와 함께 싸우고 있다. 선전전과 집회에 참석해 회사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체 게바라가 그랬단다.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하는 만큼 주어진다.”고. 나는 스스로 회사에 복직을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여기고 세종호텔노조와 함께하고 있다. 세종호텔 룸어텐던트 파트의 영진, 희정, 영은, 경미, 란희, 그리고 나의 공통점은 모두 둘째가 2007년 황금돼지띠라는 점이다. 그해 태어난 아이들이 복이 많은 반면 세종호텔에서 일하는 그 아이들의 엄마인 우리들은 웨이트리스, 전화 교환, 경리과 직원이었으나 객실 청소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황금돼지띠 엄마인 우리들 가운데 아직 퇴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소속된 노조와 상관없이 또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정년까지 버텨보자고 맥주 한 병 흔들며 결기를 다지곤 한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