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0원이거나 혹은 4,860원이 안되거나] 4,860원만 받고 어떻게 살아_최저임금, 당사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by 편집국 posted Apr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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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번 꼭지에서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최저임금의 당사자라 하면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 노동자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비정규노동>에서는 당사자들을 연령대별로 나누어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노년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청소년노동조합 준비모임의 이응이 활동가와 청년유니온의 정준영 사무국장,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처장님이 소중한 글을 보내주셨다.

 

누가 88만원 세대라고 했는가. 난 제발 한 달에 88만원이라도 벌어보고 싶다.

 

2012년 11월 난 탈가정·탈학교 청소년이 되었다. 당장 월세와 생활비가 필요했으니 바로 임금노동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노동자 들이 그렇듯이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이었다. 일을 하게 된 곳은 대기업 ‘아워홈’ 직영의 한식 패스트푸드 전문점 이었는데 딱 최저임금을 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주휴수당도 또한 못 받았고, 명절에도 일해야 했다. 지정된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해야 했고 검은색 신발과 머리망을 해야 했다. 옷 갈아입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라고 요구했고 위생 관리한답시고 귀걸이도 하면 안 되었다. 퇴근 후 매니저(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정규직을 이렇게 불렀다)의 개인적인 심부름도 해야 했고 물론 그 시간은 일한 시간으로 쳐주지 않았다.

 

 

처음에 일하기로 했던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는데 매출이 떨어졌다며 오후 1시까지만 일하게 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엔 기름때가 잔뜩 끼어있는 후라이어나 냉장고 청소를 해야 했다. 노동 강도는 높은데 노동시간은 짧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너무 피곤해서 활동도 못하고, 회의시간에 졸았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1시간 안에 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시키는,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쪽쪽 빨아 먹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고 나면 나에게 들어오는 월급은 20만원 후반에서 30만원 후반사이. 내가 한 달을 그렇게 일해서 받은 돈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다. 월세는 20만원이었고, 당시가 겨울이라 공과금도 5만원, 교통비도 6만원이 들었다. 식비나 다른 생활비도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다행히도 당시에는 원고료를 받으며 기고글을 쓰기도 하였고, 학내투쟁으로 받은 상의 상금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만 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받았던 월급은 인간다운 생활은 고사하고,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것만 같은 금액이었다.

 

 

그 한식 패스트푸드점은 더 이상 일을 못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후 이제까지 겪었던 부당한 대우 등에 대응을 해볼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알바들을 착취하고 갈궜던 매니저들도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그 매니저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싶어 대응하지 못했다.

 

 

지금 일하는 곳은 시급이 6,000원이고, 주휴수당은 없다. 노동 강도도 전에 일했던 한식 패스트푸드 전문점에 비해 훨씬 낮고, 대우도 인간적이다. 그렇다보니 주변 청소년 활동가들은 내 시급이 정말 높다 말하고, 나 역시 비교적 높은 시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급 6,000원으론 인간답게 생활하기 부족하다. 사용자가 하루에 4시간만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다른 곳보다 시급이 높은 편이라는 생각도 있고, 언제 지금보다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일하는 곳처럼 그나마 인간답게 대우해주고, 손님이 없으면 잠시 쉬게도 해주고, 일한시간 딱딱 맞춰서 돈 주는 곳이 매우 드문 편이다.

 

 

매년 물가는 무섭게 치솟는데 비해 최저임금은 겨우 몇백 원씩 오른다. 당연히 노동시간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고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답게 사는 건 먼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고, 인간처럼 사는 것도 힘들다. 하루 4시간만 일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저임금이 올라야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노동시간이 줄어야 여가시간이 생기고, 여가시간이 생겨야 놀러도 다니고, 가끔 비싼 밥도 먹고 그러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언젠간 이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글 │ 청소년노동조합 준비모임 이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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