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창립15주년 좌담]비정규 노동 운동의 평가와 과제, 전망

by 센터 posted Jun 0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좌담.JPG

참석자 : 김민수 |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진억 |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사업국장
               박점규  |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정의헌 | 전국지역업종일반노조협의회 고문
진행자 :  이남신 | 센터 소장
정    리 :  강인수 | 센터 편집부장
시   간 :  2015년 5월 2일
장   소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실


편집자 주 :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문을 연 지 15년이 되었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처절해지고 있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이들의 울림이 퍼질 때마다 우리 센터가 해야 할 역할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낮은 곳을 향한 연대, 비정규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하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것이 센터의 바람이다. 센터 15주년을 맞아 비정규 운동 현장에서 몸담아 온 네 분을 모시고 두 시간 여에 걸쳐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8년의 비정규 운동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의 비정규직 문제를 짚어본다.                           


1998년부터 시작된 비정규 운동


이남신: 2015년 5월 20일이면 비정규센터 창립 15주년이 됩니다. 1998년부터 비정규 운동이 시작됐다고 본다면 20년이 다돼가네요. 비정규 운동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창기 이야기부터 나누면 좋겠습니다.


정의헌: IMF 이전에는 비정규직이 없었던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없었죠.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을 일반화할 만한 차별이 많이 없었다는 뜻도 되고,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일정한 시간 일하고 나면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거나 가능성이 높은 조건들 때문이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IMF 이후는 그 차별이 더 확대되고 고착화되는 과정을 겪어 왔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 내부의 하층 계급을 지칭하는 면이 상당히 커졌다고 보입니다.


김진억: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997년 민주노총 정치세력화하면서 국민승리21 만들고 권영길 대표가 출마했잖아요. 신자유주의 공세가 점차 전문화된다는 것을 조금씩 인식했는데 그러면서 불안정 노동 얘기가 됐던 것 같아요. 여러 영역에서 비정규직 관련된 고민과 문제의식이 생겼는데 민주노총에서는 담당자 고민으로 그쳤고, 사회단체 중에서는 사회진보연대 등 여러 단체에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도에 파견철폐공대위가 만들어졌죠. 박승흡 초대 소장이 중심이 되어 비정규센터도 그때 만들어졌어요.

 1990년대 말 2000년도 초반에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이 활성화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였어요. 그때는 개념 가지고 싸웠거든요. 비전형 근로자냐, 비정규직이냐. 관변 쪽에서는 비전형 개념으로 잡았는데, 싸움을 전개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됐죠.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화한 것은 한통 계약직이라고 봅니다. 1998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뭔지도 모르고 했죠. 1999년도에 골프장 경기도우미 노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재능교육 교사, 2000년 들어서서 한통 비정규직, 서울대 청소경비, 방송사 비정규직으로 쭉 이어지면서 2000년도 초반이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이 격화되고 전면적으로 드러난시기가 됐죠.


박점규: 한라중공업부터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를 사내하청 운동의 발아기로 본다면 2005년이 사내하청 노조들이 대거 결성되는 성장기로 볼 수 있죠. 2005년 6월 4일이 기아차 화성 공장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진 날이고요, 6월 13일 현대하이스코비정규직 지회, 7월 5일 기륭전자 분회, 9월 4일 동희오토 노조가 연이어 조직됐죠. 규모 있는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노조가 만들어지고 대규모 투쟁이 2006~2008년으로 쭉 이어졌어요. 이후 소강 상태로 가다가 작년과 재작년을 재부흥기, 성장기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결성일이 7월 14일인데 10년 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만든 날이 7월 5일이거든요. 이렇게 만나는 지점에서 올해 사내하청 동지들의 10년 전 투쟁들을 되돌아보는 평가와 자료를 모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김민수 : 저는 1998년도에 열 살이 안 됐습니다.(웃음) 제일 많이 봤던 건 이랜드 투쟁이었죠.  한 사회를 설명하는 개념어로서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포괄하기 쉽지 않은 영역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실업의상태라고 봐요. 청년실업이라는 개념이 생겼는데 실업 상태도 노동 시장 자체가 없는게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자기 삶을 가꾸어나가는 괜찮은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가없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비정규직 문제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기 문제를 비정규직 문제로 보는 게 대단히 어렵다고 보거든요. 결과적으로 사람의 가치의 문제, 사람의 값의 문제로 적극적 의미로 다뤄지기보다는 정규직이 아닌 상태라는 소극적 해석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되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정규 운동의 성과와 한계

이남신.JPG



이남신 | 센터 소장


이남신: 사회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2015년 오늘의 시점에서 비정규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의헌: 노동 시장에서 고용불안에 떠는 하청 노동자로 인지된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지점에서 10~20년의 노동 운동 역사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장기적으로 더 노력하고 돌아봐야 할 문제겠지만, 지금까지는 당사자로서는 매우 치열하고 절박하게 싸우면서 노조를 확대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죠. 하지만 전반적인 비정규직 구조화를 막는 데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운동의 새로운 전망과 주체를 세우는데 역할과 사명이 중요해진 부분은 나름 성과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매우 불충분하지만 씨앗이라고 생각하고 잘 키워내야 하겠죠. 문제는 비정규 운동이 정규직이 주도하고 있는 운동의 역사적 시점 속에 있기 때문에 정규직 운동 방식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지향이나 의지를 얼마만큼 가꾸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고 보입니다.


김진억: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에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의제화하고 해결과제로 전면화시켰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수많은 조직화와 투쟁 과정 속에서 대부분 실패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불안정 노동, 비정규직화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결국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확산, 제도화됐어요. 2000년부터 조금씩 법제도 개선 투쟁을 고민하면서 민주노총이 법제도 개선 대책을 제출했죠. 하지만 2006년 말 노무현 정권 때 기간제법이 만들어지고, 그 구조 속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확산되는 과정 속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점규: 극도의 고용 불안 상태에서도 노조 결성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것 자체가 비정규직의 투쟁 성과인 것 같아요. 그 어려운 환경에서 정규직 노조 결성에 비하면 깨진 게 더 많으니까요. 18년의 지난 역사가 차곡차곡 밑거름이 돼서 지금의 사내하청 동지들이 조직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웬만한 사업장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게 됐잖아요. 사회적 정당성도 확보했기 때문에 법제도적으로도 이러한 판결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쉬운 점은  원·하청의 단결 문제라고 봐요. 현대중공업이 2003년도에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했다가 민주노총 금속 노조에서 제명됐는데 12년 만에 반성문 쓰고 돌아왔잖아요. 월요일부터 정규직 대의원들이 현장에서 노조 가입을 받아요. 하지만 전체 사업장을 놓고 보면 원·하청이 단결하기보다 외면하고, 사실상 묵인 방조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해결해야 할 뼈아픈 문제이자 한계죠.


산별 노조 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남신: 산별 노조 운동에 대한 평가를 빠트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산별 노조 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론이 대체로 실패한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과 연대 등 비정규직 문제와 연동해서 실패 요인을 짚어주시죠.


정의헌: 전노협 시절의 노조는 조직 시스템으로 보면 기업별 노조예요. 다만 연대 방식이 지역 단위로서, 말하자면 대중적 연대, 지역의 일상적 연대를 가능하게 했던조건이 있었다고 보고, 조직 구조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데···. 그 지점보다는 정치 문제가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전노협 시절 전국연합이 있었잖아요. 전국연합 안에 5전(전노협, 전농, 전대협, 전빈련, 전교조)이 있었어요. 어쨌든 전두환 정권에 대한 민주 전선, 정치적전선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전선 조직이 있었고, 거기에 포괄된 조직이 전선체의 정치적 지향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함께 싸워나갔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사실상 지금은 진보정치 실패 이후에 전선 형태라든지당의 형태로든 정치적 구심이 없는 거예요.노조들이 자기 생존권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지만 더 멀리 나아가는 자기 전망이없는 거죠. 지금도 민주노총 총파업 국면에서 비어있는 지점이 정치라고 봐요. 전노협은 기업별 노조였지만 그런 역할을 담당했어요. 민주노총이 조금은 이완되고 무너져온 정규직 노조의 틀 안에 제한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정치적 구심이 없는 부분이 있죠.

정의헌.JPG



정의헌 | 전국지역업종일반노조협의회 고문


박점규: 대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평가 과정에 있는 거고 현재진행형으로 말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경주는 노조 천국’이라고 조선일보가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적이 있어요. 경주는 노조를 만들 때마다 그 안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다 조합원으로 받아요. 한 번도 그렇게 안 해본 적이 없어요. 다스(DAS)가 이명박 형 사업장이잖아요.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어요.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고 조합 가입 받았어요. 잘하고 있더라고요. 산별 노조의 지역 지부가 강력하게 건설되고 예산이 집중되면서 과거에 기업별 노조일 때 하지 못했던 일이예요.

IMF 이전에도 마찬가지고 노조 초기 발아기였던 87년 이후에도 마찬가지고 대기업 공장의 계급적 인식 문제가 있죠. 자기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방패막이하고 외주화를 합의해줬잖아요. 한국노총, 민주노총 상관없이 활짝 열렸던 거죠. 정규직 노조 다 있었지만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이에 비정규직이 양산됐잖아요. 힘이 없어서 빼앗긴 것도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그 동지들이 다시 싸워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인데, 이것을 담을 그릇, 조직이 산별 노조냐 일반 노조냐, 어떤 거냐를 떠나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있는 거라고 봐요.


김진억: 산별 노조가 모든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조직이잖아요. 산별 노조의 기본 정신만 제대로 실현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산별 노조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묻지마 산별’ ‘무늬만 산별’이라는 건데요. 기존 산별 노조의 지향과 정신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산별 노조가 그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계급주체 형성이 상당한 정도로 진전됐어야 하는데 시대적 상황이 그것을 담보하기에는 만만치 않았겠다 싶어요. 대규모 구조조정 속에서 내 고용, 내 생존 지키는 것도 어렵잖아요. 그러니 내 문제로 다가왔을 때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죠. 민주노총 현장 간부들도 그 정도 인식이 있죠. 그런데 내 사업장 비정규직 문제로 돌아왔을 때는 내 발등 찍기가 돼서 현장 정서가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도 많이 있었어요. 롯데호텔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하면서 싸웠고, 이랜드 투쟁도 그렇고···. 산별 노조를 다른 각도로 비판하면 신자유주의 시대 산별 노조가 과연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투쟁 조직이냐는 거죠. 왜냐면 과거에는 작업장 수탈, 착취였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소외를 하든 배제를 하든 문화적 지배를 하든 우리 생활의 모든 형태를 장악하고 있어서 작업장 중심의 단결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거구요.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서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해야만 작업장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재생산 문제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산별 노조에 대해서 다른 방식의 실험과 모색을 할 필요가 있어요.


이남신: 청년유니온은 세대별 노조로서 조직 노조 바깥에 진을 친 셈인데, 산별 노조 평가도 겸해서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와같은 새로운 세대별 노조를 만든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요.


김민수: 산별 노조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단상 같은 게 있어요. 노동 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이 2000년대 이후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산업들에는 취약했던 것 아니냐. 패션업계 열정페이 문제를 제기하는과정에서 디자인하는 사람들을 담을 그릇이 없더라고요. 제가 고민하는 것은 비정규 운동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것을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결국 예산과 사업인데 비정규 운동을 하기 위해 많이 도와주고 있다 하더라도 전체 노동 운동에서 비정규 운동 사업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될 것인지 궁금했어요.


비정규직 조직화, 한계와 전망


이남신: 산별 노조 평가에 대해서는 열어두고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고요, 비정규 운동에 대해서는 현재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상당히 진척돼 왔다고 보여요. 비정규 노조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점을 짚어주시죠.


정의헌 : 두 가지 점에서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는 조직화가 많이 늘은 거죠. 공공 부문의 성공적인 사례인 학교비정규직 노조와 전통적인 비정규직 노조인 건설 노조, 이 두 곳만 10여만 명이잖아요. 특수한 영역에서 다수의 비정규직이 조직화됐지만 민주노총 산하 모든 산별 노조 안에서 봤을 때는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취약했던 지점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사자들이긴 하지만 대단히 치열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었죠. 투쟁이란 게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지만, 절박한 생존권 쟁취 투쟁이잖아요.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자기 투쟁으로 밀어 올리지 못하고, 일정하게 조직은 됐지만 사실상 비정규직 투쟁이 여러 운동의 주류로 온전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점규: 저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어렵지 않았어요. 워낙 절박한 상황 속에서 상담이 오거든요. 해고를 한 달 앞두고, 하루 앞두고, 아니면 내부 구조조정을 앞두고, 아니면 너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 과정 속에서 노조 상담이 오기 때문에 조직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당수가 사람과 조직을 남기는 게 만만치 않죠. 어려운 싸움이 전개되죠. 조직하기는 쉬우나 싸움은 무지 어렵고 격렬하다는 게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남아있어요. 우리 운동이 조합주의, 실리주의, 작업장 투쟁 중심, 내 요구 중심 이런 것들을 많이 비판하잖아요. 그런데 비정규 주체 운동이 주체가 가지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사회적 위치는 있지만 과연 비정규 조합원들이 시대적 상황에서 전체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자기 지향과 전망을 가지고 있냐. 제가 볼 때는 취약하다고 생각해요. 투쟁의 격렬성으로 따지면 87년도에 정규직 선배 노동자 투쟁도 격렬했거든요. IMF 맞으면서 점차 생활에 안주하게 된 거죠. 그 사이에 사회주의권 몰락도 있었고, 그러면서 운동의 지향과 전망을 상실한 것도 있어요. 전체 신자유주의에 맞선 계급 운동으로서 비정규 주체들이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되는 과제가 있다는 고민이 드네요.

박점규.JPG



박점규 |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김진억: 정규직의 조직화 투쟁도 그랬어요. 노동조합이 있는 한 계속 개선하잖아요. 몇 번 싸우다보면 사용자도 더 이상 싸우기 싫어요. 그러면 적정 수준에서 작업장의 노동 조건은 개선한다고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만큼 비정규직 조직화에 성공한사업장은 그렇게 갈 거예요. 특히 지불 능력이 있는 대기업은 그렇게 갈 거예요. 그속에서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현실에 안주하게 되죠. 노조 활동이 작업장에서는 내권리 투쟁으로 귀결되기 십상이구요. 주변의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 영세 소기업하청업체 노동자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면서 기존 정규직 운동이 걸어왔던 흐름으로편입될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계급적 의식을 가지고 연대해야 해요. 작업장이건 지역에서의 생활문화 연대건 기본적인 지향과 자기 실천을 멈춰서는 안 돼요. 그런 주체로서 비정규 조합원들이 바로 서고,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기에서 비정규 운동의 승패와 전망이 달려있지 않겠냐고 보는 거죠.


이남신 : 청년은 조직화 자체가 미미하기도 한데다 그 자체가 당면 과제이기도 해서 조금은 결이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연동해서 문제의식을 이야기해주시죠.


김민수: 조직화에 대해 청년 노동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기 쉽지 않네요. 지금의 무너져 내린 노동 시장에 적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우려가 있어요. 조직화의 크기냐, 사회적 연대의 크기로 볼 거냐. 그렇게 본다면 말로는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고 그 정신을 확대해야 하고 안에 있는 촉탁 노동자를 봐야하고 사업장을 얘기해야 한다고 하죠. 결국 돌아서보면 모든 평가 기준은 조직화거든요.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주체들의 힘과 사회적 연대가 지지를 모아가는 속도와 세력이 강화되는 속도에 비해 사회구성원들의 삶이 무너지고 그들의 삶이 흩어지고 찢어지고 조직될 수 없는 상태로 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요. 따라서 굳이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개인에게는 동료 시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맥도날드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알바노조도 그런 고민으로 조직화하고 있는 거거든요. 결과적으로 중요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조직화 관점에서 주목해서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려되는 것은 투쟁의 격렬성과 조직화는 연동되어 있어서 양날의 칼이잖아요. 조직하기 위해서 투쟁이 격렬해야 되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투쟁의 격렬성이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확보하는 관점에서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 저렇게까지 싸워야 하나,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쁘게 바라보면 유별난 사람들로 비춰질 수 있는 거 아니냐는 거죠.


박점규: 우리 집이 이사할 때 웅진 정수기 필터 가는 기사분이 오셨어요. 삼성전자서비스 조직하고 그럴 때였어요. 얘기해보니 하청이구나, 비정규직이라 생각하고 슬쩍 얘기를 건넸더니 저한테 하는 얘기가 “삼성이 바뀌면 좀 영향을 좀 받겠죠.” 하더라고요. 그 사회에서의 계급 대리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자본과 노동 계급 전쟁 과정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지지만 그중에 대리전 같은 중요한 전투가 있었다는 거죠. 한국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적대감이나 교육 수준을 봤을 때 우리가 아무리 있는 힘의 두 배 세 배 쏟는다 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노동자 조직률이 급격히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의 싸움이 조직력과 무관하게 중요한 의제를 사회적으로 던지는 또 다른 중요한 한 전선이라고 봐요.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정규직화 해내는 것 자체가 같은 영역의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김진억: 사람과 조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통신 비정규직 투쟁은 사람과 조직을 못 남겼어요. 그 뒤로 케이블 방송 통신 쪽 노조가 꽤 오랫동안 없었어요. 혼자로는 공포예요. 비정규직 초기에는 역사적 의미를 남기는 투쟁들이 많았어요. 한국통신·기륭·재능 투쟁도 그랬고요. 싸움에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의미를 남기는 투쟁이었거든요. 점차 의미를 남기는 투쟁에서 사람과 조직을 남기는 투쟁, 희망과 전망을 나누는 투쟁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진억.JPG





김진억 |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 사업국장


김민수: 패션업계 사례도 있지만, 온라인 중심으로 하다 보니 IT업계, 출판업계, 디자인 일을 하시는 분들이 비슷하다는 댓글을 달아요. 사실 조직 형태 유형도 없고 주체들도 척박한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한 번 한 게 다인데 싸움을 지켜본 사람들이 있는 거죠.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기만 한 건데.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었고 들여다봐주는 사람도 없었던 거죠. 한 번 딱 드러내니까 테이프가 풀리는 느낌이랄까, 대표 선수가 거는 싸움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 연대, 희망버스 운동


이남신: 비정규 문제는 노동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 사회 문제, 여성 문제 등이기도 한데요. 희망버스 운동이 그런 의미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핵심 매개로 한 사회적 연대 운동인 희망버스 운동에 대한 평가와 과제에 대해 희망버스 기획단이었던 박점규 집행위원부터 말씀해주시죠.


박점규: 희망버스부터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까지 반드시 비정규직 역사는 아니었어요. 쌍용자동차에 모아진 사회적 연대 흐름, 2009년 용산, 쌍차 진압 이후에 2010년부터 있어왔던 사회적 연대가 사실은 희망버스로 한번 타올랐다고 보는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런 마음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보는 거죠. 한편에서는 그동안의 노조 조직 운동이 자기 조직 내로 많은 역량이 지나치게 쏠리면서,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취약했거든요. IMF 이후 조직 노동도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복원하기도 쉽지 않았죠.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법안 앞에서 조직 노동 운동이 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싸움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 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수 언론이나 우리 사회 전체의 흑색선전이나 왜곡이 너무 극심해요. 그래서 지난 4월 민주노총 총파업도 자기 기득권을 지키려는 파업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람들한테 적지 않게 있는 거죠. 사실은 고소, 고발, 수배, 임금 손실, 그 많은 걸 감수하는 파업이었잖아요. 민주노총이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파업인건데 국민들에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죠. 그런 점에서 볼 때 비정규 운동이나 희망버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는 자유롭고 대국민적인 설득력이나 호소 여지가 넓은 운동 방식인 것 같아요.


김진억: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자본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노조의 힘만으로는 넘어서기 어려워요. 저는 노동자의 진정한 힘은 현장의 힘과 사회적 힘이 같이 결합될 때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봐요. 희망버스가 그걸 보여준 거잖아요. 우리가 구조조정 정리해고 발생할 때 사회적 연대의 힘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일상화된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어떻게 사회적 연대를 할 건가가 고민이죠. 일상적으로 시야와 관점을 더불어 사는 삶, 말하자면 자본을 넘어서는 대안의 삶에 두고 끊임없이 모색하고 실천해야죠. 그게 자기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쉼 없이 연대를 실천하고 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봐요.


김민수: 노동 시장을 포함해서 사회 구성원 전반의 삶이 파괴되는 조건에서 조직되어 있는 주체라는 것이 과연 전체 시민 중에 몇 퍼센트나 될 거냐. 사회적 연대가 조직과 조직 간 연대의 소극적 의미 규정을 벗어나서 조직되어진 주체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로 확장하는 과정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희망버스가 가지는 상당한 힘을 평가하면 세 가지가 조화됐다고 생각해요. 발랄하다, 재미있다, 버스 타고 가네, 마실 나가네 같은 형식과 김진숙으로 표상되는 상징. 내용적으로는 정리해고로 인한 고공농성이라는 싸움이 내 삶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시민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거라고 봐요. 그런데 비정규 운동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희망버스의 형식과 상징은 배웠는데 내용까지 가져왔냐. 형식과 상징만 배우다 보니 고공농성은 더 가열차지고 형식은 발랄해지기 위해 애쓰는데 내용적으로 시민들과 접점을 만드는데 계속 허해지다보니 더 격렬해지고 대중적으로 희망버스의 그 때 그 정신은 사라지고 거리감은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의헌: 우리나라에서 희망버스가 주목받는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있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회계 조작을 해서 사람이 죽고 하는 데도 크게 문제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고. 세월호조차도 그런 거잖아요. 희망버스가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점에서 신선하달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이 황폐한 시대에 자기 양심을 돌아보면서 살고, 살려고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죠.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회적 의미


이남신: 최근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뜨거운 노동 의제이자 노사 관계 이슈로 부각돼 왔는데요. 그 배경과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민수: 간접고용이 단어로만 놓고 보면 고용 형태의 한 유형이잖아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도 지금 상황에서 상당수 대중들에게 ‘정규직이 아닌 상태’라는 고용 형태로 인지되는 양상이기 때문에 부문 형태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어요. 간접고용 운동이라는 것이 다수의 노동자 중에 특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고용 형태인 사람들의 싸움에 갇혀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최저 임금 운동을 하면서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최저 임금은 내 월급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요. 그 사람들이 150~180만 원 받더라도 총 노동 시간 자체가 길고 포괄임금제로 되어 있다 보니 시간당 임금이 장시간 노동과 결부돼서 최저 임금이 나오는 거죠. 자기는 시급 8천 원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까 놀라거든요. 최저 임금 운동이 청년들에게 공감을 주려면 장치가 필요합니다. 간접고용도 분명히 그런 게 있을 거라고 봐요. 대중들에게 공감 받았던 주요했던 메시지는 삼성의 옷을 입었는데 삼성 직원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메시지들이 확장성이 있었다고 보거든요.

김민수.JPG



김민수 | 청년유니온 위원장


박점규: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담당으로 일할 때 우리끼리 간접고용 직접고용 나누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저는 간접고용이라고 잘 안 쓰고 사내하청이라고 해요.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이라고 부르니까. 간접고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잖아요. 우리가 만든 거지.


김진억: 생산직,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 조직을 먼저 시작했고, 최근에 기초서비스 쪽···. 저는 더 확산될 거라고 봐요. 워낙 말도 안 되는 열악한 상황이다 보니 불만들은 있거든요. 단지 돌파구는 필요한데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만 넘어서면 되는 거죠. 삼성이든 SK, LG든 케이블 방송이든 투쟁의 성과들이 특히, 대공장의 다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확산될 거라는 거죠. 시간적으로 조급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일상의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지역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만나야 해요. 저는 그게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좀 더 대중적 방식의 접근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희망버스가 유의미했던 거죠. 고리타분한 운동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 방식의 대중적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점,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면 최저 임금 투쟁이든 이후의 투쟁이든 다른 방식으로 양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간접고용 노동자 조직 투쟁의 확산도 이런 과정과 연동돼 있다고 봅니다.


정의헌: 직접고용 부문은 학교비정규직 노조가 대규모로 자리를 잡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무기계약이 확대되는 성과가 있죠. 특수고용은 화물과 건설 정도에서 고착돼 있는 느낌이고. 유일하게 일상적으로 전선 형성하면서 싸움을 곳곳에서 벌여내고 있는 부분이 간접고용이기 때문에 간접고용 문제가 우리의 화두로, 의제로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 운동의 전망, 비정규 운동 단체에 바란다


이남신: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 비정규 운동의 전망과 핵심과제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그리고 비정규노동센터를 비롯한 비정규 운동 단체의 역할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정의헌: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노동 시장 양극화의 모습이라고 봐요. 정치적, 사회적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 쪽에서는 조직화로, 의식화로, 노동 운동의 확산으로 민주 노조 운동의 주체 변화로, 그런 변화의 추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정세가 매우 엄중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기로일 수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좌충우돌하면서 10년쯤 후에 대중적 흐름으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87년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우리 시대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요. 후진들에게 발전적인 맥을 이어주지 못하고···.

최저 임금 같은 경우에 1만 원 제기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봤을 때 이게 되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최저 임금이 아니라 일을 하면 생활이 보장돼야 하는 게 정상이다라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확산시키면서 올해는 아니어도 내년, 후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싸울 수 있어야죠.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정몽구가 사장인데 엉뚱한 놈들이 나와서 엉뚱한 짓하고, 진짜 사장이 아닌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거죠. 혼란스럽게 눈속임하는 거죠. 요즘 같은 세월에 10~12시간씩 일하며 산다는 게 이상한 거지. 자본주의 발전 수준이 하루 네 시간만 일해도 전 인류가 풍성하게 먹고 살만한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 되는 거냐고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은 사상과 이념과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일 수밖에 없어요.


이남신: 비정규센터 15주년의 의미도 담아서 지역 비정규 단체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도 말씀해주시죠.


정의헌: 비정규센터는 잘해야 된다고 봐요.(웃음) 이게 씨앗이긴 한데 이런 힘들이 모여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다시 도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 우리가 치열하게 싸워도 그 성과가 어떻게 갈지 몰라요. 비정규센터가 비정규 운동에 헌신하고 연대하면서 그 안에서 주체들을 센터 주변으로 잘 모아내고 하나로 잘 만들어내고, 토론과 만남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점규: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센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진억: 센터가 비정규 운동의 조직화와 투쟁을 종합하는 역할을 해왔잖아요. 그것을 넘어 비정규 사업장의 조직화, 투쟁 활동 및 일상 활동과 경험을 종합하는 역할, 정책과 전망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센터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으니까 지역 네트워킹하면서 연대를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직화와 투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지역과의 생활문화연대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수: 한국 사회 운동에 대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인데요. 운동권들이 회의를 할 때 초안을 누가 쓰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초안을 누가 쓰느냐가 사업의 프레임이고 주도권이잖아요. 보통 초안을 저쪽에서 쓰는데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뒤집기가 쉽지 않아요. 비정규직 종합대책, 공무원 연금 개혁안, 세월호 시행령 초안은 저쪽에서 제출하고 막는 싸움은 우리가 하고···. 덜 나빠지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절박하면서도 힘든 것 같아요. 덜 나빠지기 위한 싸움을 하지 말고 더 좋아지기 위한 싸움을 할 때 힘이 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싸움을 하고 싶고, 주요했던 게 사회적 힘과 연대인 것 같아요. 덜 나빠지기 위한 싸움은 혼자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 더 좋아지기 위한 싸움은 혼자서는 안 되잖아요.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를 만나야 되잖아요.

센터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투쟁 현안을 넘어서서 더 좋아지기 위한 싸움을 비정규센터에서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운동도 돈과 사람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비정규 운동 단위에서 사업에 대한 연대는 하는데 자원에 대한 연대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명분도 있고 정당성도 있고 만들어 갈 내용도 있다고 한다면 물적 토대를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비정규센터가 그 역할도 같이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남신: ‘자원에 대한 연대’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네요. 주말인데도 오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