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Talk] 활동가는 처음이라

by 센터 posted Sep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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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이 이용주 대전노동권익센터 활동가
  • 인터뷰어 안무늬 센터 상임활동가

 

1144.png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안무늬 활동가입니다. 센터에 들어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인터뷰로 이용주 활동가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14.png대전노동권익센터 권익지원팀 법률 담당 이용주 활동가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대전노동권익센터는 노무사가 상근직이 아니라 화, 목 이틀 방문을 하는 곳이다 보니, 제가 먼저 내담자와 기본적인 상담을 하기도 하고, 노무사와 연결을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44.png그럼 이전에는 무슨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이 센터가 첫 직장이고, 110개월 일하다 군복무를 하고 직장에 복귀한 지 10개월 됐습니다. 이 센터가 너무 좋아서 군복무 후에도 다시 들어 가서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던 것은, 군 공백 때문에 휴직을 하고, 그때 대체 인력을 쓰면 또 비정규직이 생기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아예 퇴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복귀하고 다시 센터에 연락을 했는데 원래 TO가 없던 자리를 저를 위해 하나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활동하게 됐습니다.

 

1144.png그렇다면 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요?

 

114.png사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사회문제나 활동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습니 다. 노동에 대해서도 노조에 대해서도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여기 센터장님을 알게 되고, 지역사회에서 노동운동하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편입 준비하던 때에 센터장님을 만난 거였는데 편입 대신 활동을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 하셨습니다. 처음엔 군대도 아직 다녀오지 않았고 편입도 고민하던 시기여서 거절했지만 다음에 만나 또 물어보셔서 그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근무 시작하게 됐습니다.

 

1144.png처음에는 왜 거절하셨던 거예요? 그리고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요?

 

114.png처음에 거절했던 이유는 편입도 있었고, 편입 준비하며 시간을 벌어서 더 놀고 싶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직장 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컸습니다. 접해보지 않았던 일이어서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1144.png부모님의 영향이요? 어떤 부분에서?

 

114.png아버지가 노조에 대해 이해도 있으시고, 사용자 입장이심에도 조합원을 도와주다 회사에 걸리기도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너는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노동 쪽에서 일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너의 적성에 맞을거 같아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해주셨습니다.

 

1144.png이용주 활동가님은 원래 노동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관심이 많으셨군요. 그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고 했는데 학교 다닐 때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114.png주로 노인, 청소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센터에서 제안해주셨던 때가 마침 2019년도였는데, 원래는 3명에서 7명으로 증원되기도 하고, 대전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센터였다가 대전노동권익센터로 명칭이 바뀔때였습니다. 그땐 관심사였던 청소년 노동인권 사업 파트에 제안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빼면 만 3년 동안 활동했네요.

 

1144.png3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어떤 활동을 할 때가 힘드셨나요?

 

114.png조직화 사업이요. 사람을 만나는 건 좋아하지만 목적의식을 갖고 만나는 게 힘듭니다. 만나는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 목적으로 이끄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사업 중 소규모 노동자 네트워크 조직화 사업이 있는데 그 중 대덕유니온이라는 단체에서 처음 활동하던 때가 가장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대덕유니온은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나 소규모 공단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고, ‘안산 좋은 이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지역구 노동조합인데 대부분 구성원이 40~50대이고, 23살 때 처음 활동을 하다 보니 나이 차이도 나서 어려웠어요. 연령대가 안 맞아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144.png거기에서는 용주 활동가님은 무슨 활동을 하셨나요?

 

114.png노조처럼 임단협을 할 수 없으니 대덕구에 노동정책을 제시하는 사회적 교섭, 예를 들면 거리 캠페인 나가서 구민들에게 내가 원하는 노동정책은 무엇인지묻는 스티커 설문, 설문 결과를 가지고 대덕구에 정책 제안하는 활동, 지역구 노동 정책 관련 서명운동 등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1144.png그 조직화 사업 때 어떤 것이 어려운가요?

 

114.png아까 말한 것처럼 40, 50대 분들과 목적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함께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하면 그분들 이야기에 끼기도 어려 웠습니다. 사업의 대상으로 만나니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게 있어도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그분들도 저를 좋아해 주시고, 친밀감이 많이 형성됐습니다.

 

1144.png힘든 점이 많이 있었네요. 그럼 어떻게 대덕유니온 활동을 용주 활동가님이 담당하게 되셨어요?

 

114.png우선 제가 센터에 취업하자마자 대덕구민이기 때문에 같이 창립준비 활동을 했고, 임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제가 부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대전은 서비스직이 몰려있는 도시인데 그 중 대덕구에는 생산직이 몰려 있는 특성이 있거든요. 대전의 산업단지공단이 대덕구에 있어 소규모 영세사업장들이 몰려 있습니다. 조합원님들 대부분 40~50대 여성노동자들이고, 대부분 보육 교사, 요양보호사, 마트 파트타임 노동자, 생산직 단시간 근로자, 식당 종사자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44.png대덕유니온 활동에 대해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114.png우선 센터에서 2018년에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생활환경 실태조사를한 적 있는데 그때 실태조사 하면서 대덕구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분들과 네트워크를 꾸준히 가져갔으며 중 일부가 대덕유니온 조합원이 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근본적으로 힘들었던 건 지역노동조합이라는 자체가 선례도 많이 없고, 저도 노조라는 걸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맡다 보니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알기로 노조라 하면 임단협도 하고 해야 하는데 인원이 적고 임단협을 할 수 없어 기존에 알고 있던 노조와 달랐거든요.

저도 처음인데 조합원분들도 노조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이분들과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역 내 노조의 이분, 저분들을 찾아다니며 많이 질문했습니다. 처음에 노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운영하는지, 우리는 형태가 다른데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계속 조언을 구했습니다. 운영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1년 넘게 고민했습니다. 사회적 교섭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게 노조가 맞는 건지 고민했습니다. 고민이 될수록 운영위원들과 계속 대화하고, 같이 노력하며 맞춰 나갔습니다.

 

1144.png고민이 될수록 조합원들과 더 대화로 풀어나가려 하셨군요. 용주 활동가님도, 조합원들도 처음이었던 대덕유니온활동, 그 외에 센터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거였나요?

 

114.png가장 힘들었던 활동은 딱히 없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부정적이지 않고, 낙천적인 편입니다. 안 좋게 말하면 자아성찰이 부족한 편?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고민을 주변에 많이 나누고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편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비가 한 번 있었네요. 19년에 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청소년 노동 담당이었는데, 그때 청소년노동인권박람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전 지역 학교를 찾아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센터에서 이런 박람회도 처음 이고 저도 처음 해보는 것이다 보니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0명 정도가 참가하는 행사였는데 부스는 어떤 것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회도 제가 봐야 하고, 인원 배치 등 총 책임자가 저라서 힘들었습니다. 주변에 서도 다 느낄 정도로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회식하다가 울었습니다. 안도의 눈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1144.png저도 지금까지 늘 작은 단체에서만 활동하다가 예전에 400명 가까이 되는 행사, 1천 명 참석한 집회를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저런 대형 행사를 맡으니 너무 긴장해서 위경련까지 있었습니다. 그 기분을 잘 알아요.

 

114.png그래도 그 이후로 2천 명까지는 수용 가능한 행사를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많이 붙었습니다. 제가 1월에 입사하고 5월에 그 행사를 치르고, 11월에 같은 행사를 다른 학교에서 또 치렀는데 그때는 순탄하게 하면서 날아다녔다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코로나 때문에 박람회를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코로나 때문에 부담 느끼기도 하고, 협조가 쉽지 않아 하반기에 시도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마저 안 되면 유관기관의 도움을 받아 거리 에서라도 해볼 예정입니다.

 

1144.png이용주 활동가님 확실히 성장하셨네요. 그럼 19년도에 용주 활동가님을 울게 만들었던 그 청소년노동인권박람회를 소개해주세요.

 

114.png기본적으로 노동인권 홍보 및 취업에 필요한 내용들을 부스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노동인권 퀴즈 맞히기, 내 꿈의 직장을 그려보기, 근로계약서 작성하기, 모의면접, 자기소개서 작성하기, 노동인권 방탈출, 그리고 제가 꼭하고 싶어서 넣은 모의교섭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모의교섭의 경우 실제교섭 중인 노조를 찾아가서 조언도 듣고 교섭을 진행하시는 담당자를 모셔와서 진행하기도 했어요. 12~15개 부스를 운영합니다.

 

1144.png다른 팀 참여 없이 자체 부스 12개는 진짜 많은 것 아닌가요? 제가 예전에 진행했던 행사에서 20개짜리 부스를 운영했는데 반은 대학생 동아리가 맡아서 했는데 그것조차 힘들었거든요.

 

114.png그래서 다른 곳에 진짜 많이 물어봤습니다. 행사를 많이 해본 다른 단체에 조언을 많이 구했습니다. 이걸 노동인권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혼자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끝난 게 아쉽습니다. ‘그래도 반별로 갈 수 있는 곳에서라도 부스 내용으로 활동해보자해서 가고 있고요. 그 내용으로 들어가는 게 교섭, 이건 학생들이 진짜 좋아하니까요. “네가 사측, 내가 노측해서 모의교섭을 해보면 멱살 잡고 싸울 것처럼 열심히 합니다. 그 외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반별로 한 프로그램씩 돌아가면서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행사로 할 때와의 분위기가 달라서 올해는 꼭 박람회로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1144.png청소년들이 마냥 이렇게 행사만 한다고 잘 참여하지는 않을 텐데, 청소년의 흥미를 유발할 어떤 게 또 있나요? 예를 들면 굿즈라던가?

 

114.png그 전에는 따로 굿즈는 없었고 작년에 청년 사업을 하면서 일러스트 관련 학과 재학생 2명과 청년서포터즈 사업을 함께 하면서 노동인권 캐릭터를 스티커로 만들어 배포·홍보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토끼 모양으로 노동이를 만들었어요. 더 귀엽고 친근하게 캐릭터 사업을 진행하면 좋은데, 대학생 친구들이 취업 준비 중이어서 다른 디자인, 상품이 나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노동인권 수업에 나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면 귀여운 캐릭터라 반응이 좋습니다.

 

1144.png이렇게 청소년 사업을 열심히 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114.png우선 제가 아르바이트를 중3부터 했습니다. 택배, 고기집, 당구장, 노래방, 편의점, 카페, 예식장, PC, 배달 라이더 등등.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몰라서 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1144.png저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긴 했지만 저는 거의 서비스직 한정이었는데, 다양하게 많이 하셨네요. 그 중에서 가장 열악했던 곳은 어디였나요?

 

114.png노동인권이 가장 열악한 곳은 택배물류센터라고 생각합니다. 배달은 어쨌든 과정이 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인데 택배는 우리가 안 보이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사고가 많습니다. 컨베이어에 손이 낀다거나 포장이 덜 된 상품에 베이거나 찔리거나, 그리고 임금 중간에 가로채기를 많이 해요. 허브마다 팀장이나 관리자들이 인원을 구해 오면서 미성년자들도 데리고 옵니다. 근데 성인이랑 똑같은 일을 해도 돈을 덜 줍니다. 또 학교 후배나 지인을 통해 청소년을 알선해주는 전문브로커가 있기도 하고요. 미성년자 학생들의 경우, 임금 가로채기 당하는걸 알면서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고 경우가 많아요.

저 학생 시절에는 브로커나 선배들이 인원을 채워야 한다며 강제로 시키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물류센터의 경우 노조가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144.png저는 아무래도 식당을 시작으로 백화점, 헬스장 등에서 주로 해본지라 그런 것까진 몰랐는데, 듣고 나니 미성년자 알바 노조가 정말 절실한 것 같습니다.

 

114.png연소근로자는 우선 야간근로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많은 돈을 구하려 하는 학생들이 있고 그 점을 알고 악용하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잘 모를 거라 생각하니까. 그런데 학생들은 알면서도 가는 거예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생은 고사하고 중1, 2 때도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 학교는 노동인권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학교 담당 선생님께서 방학을 앞두고 애들 사이에서 방학 때 택배아르바이트를 간다는 얘기들이 들리고 있다. 교육 때 청소년은 야간근로가 안 된다고 꼭 설명해달라고 말한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1144.png이게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쿠팡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저희 집에서 셔틀 다니는 곳이 신선센터뿐이어서 거기서 포장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계속 서 있고, 무겁고, 춥고, 새벽이라 졸리고, 근데 다음날 통장에 찍힌 돈을 보니까 아 이래서 사람들이 계속 가는구나싶었죠.

 

114.png그렇죠. 거기다 학기 중에는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어렵고 하다 보니 학생들이 더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택배는 당일 퇴근길에 현금으로 주기 때문에요. 생각해보면 저도 브로커활동을 한 적은 있습니다. ‘좋은 브로커였죠.

 

1144.png무슨 일을 하셨던 건가요?

 

114.png고등학생 때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일하기 하루 전날 인력 25-30명이 펑크가 났다고 연락이 왔고 펑크 난 인력을 하루 만에 다 채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식장에서 저한테 청소년 주임을 달아주고 매주 일정한 인원을 청소년들로 배치할 수 있도록 TO를 주었 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을 많이 소개해줬죠. 주말에 일과시간 중 하루 근무하고, 최저임금 이상에 당일 현금 지급이고, 택배나 배달보다 안전하니까 주변에 많이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 많아서 더 고생 많은 날엔 친구들이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택시비라도 챙겨줄 수 없냐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럼 그 지배인님이 사비로라도 무리 무리마다 택시비도 주시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만두고 나서도 제 소개로 일하던 친구가 거기에서 꾸준히 일하기도 했습니다.

 

1144.png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했나봐요.

 

114.png우선 학기 중인 학생들에게도 무리가 없는 알바라고 생각합니다. 평일에는 학업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친구랑 같이 일할 수도 있으니 장점이고요. 그리고 친구들 중 몇 명은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뷔페에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습니다. 애들이 친해진 즉석 코너 조리사분들에게 음식 요청도 하고, 저녁은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아했습니다.

 

1144.png그렇게 오랫동안, 여러 분야의 아르바이트를 해보셨기 때문에 미성년자 알바 노조에 관한 관심이 있으시군요. 그럼 그것 말고도 앞으로 해보고 싶으신 활동이 또 있다면요?

 

114.png요즘 이런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23살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왔지만 다양한 활동들을 경험하며 활동을 하는 것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계속 활동을 할 생각이기도 하고 노동권익센터 밖에서 환경, 통일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장 마음에 가는 것은 노동운동이고 앞으로 노동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이런 고민을 여러 사람들과 계속해서 나누다 보면 다양한 조언들을 해주십니다. 누구는 저에게 현장으로 가봐라, 누구는 현장만이 정답이 아니며 저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분명 또 있다, 아예 노무사를 고민해봐라 등 이렇게 다양한 조언들을 해주시고 있고, 계속해서 답을 찾아 나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자 합니다. 갑자기 계기가 있던 건 아니지만 한 달쯤 전부터 이런 고민 들을 안고 주변분들에게 고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는 나는 어떤지, 선배들의 삶은 어땠는지 들어보기도 합니다.

 

1144.png저도 한때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관심 있는 분야가 너무 많았거든요. 내가 어떤 쪽에서 가장 활동하고 싶은지, 어떤 쪽에서 날 가장 필요로 할지,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이런 고민들이요. 그러다 지금 한국비정규센터에 와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용주 활동가님은 어떤가요?

 

114.png이전에는 뉴스도 안 보고 살았습니다. 이런 활동 자체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고,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고, 대학교도 남들 다 가니까 갔습니다.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대학을 들어갔다가 전문대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편입을 준비하던 중 센터장님을 만나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성실하지 못했던 과거의 제 모습을 알고도 과거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지금 내가 보기엔 착하고 성실해 믿음이 간다며 같이 활동해 보자 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인정받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많이 깨닫고, 지금도 계속 변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144.png그렇다면 요즘은 활동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어떤 건가요?

 

114.png활동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을 때, 새로운 세상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1144.png엄청난 외향인의 면모가 보이는데, MBTI는 뭐예요?

 

114.png저는 ENFP. 100%E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있고, 힘들어도 사람을 만나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이렇게 활동을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나의 비전을 갖고, 활동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내가 이 사회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44.png그럼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114.png센터에 같이 일하는 친한 형과 술 마시다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습니다. ‘모 노총 대전지역본부장을 내가 하고, 대전노동권익센터장을 네가 하고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저는 어떤 자리에 앉고 또 그 자리에 걸맞은 격식 차리는 것보다 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 ‘잡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1144.png앞으로 대전 지역사회나 우리나라 노동계에 정말 중요한 분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활동을 많이 기대해보겠습니다.

 

114.png, 그렇게 되기 위해 올해 하는 행사들을 잘 마쳐야 합니다.

 

1144.png올해 어떤 행사들이 예정돼 있나요?

 

114.png우선 8월 말을 기점으로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네트워크 관련 프로그램이 하반기 쭉 진행될 예정이며 10월에는 대전노동존중주간이 있습니다. 유관기관과 토론회나 캠페인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문화제, 청소년노동 인권박람회 등 다양한 사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1144.png모 노총 대전지역본부장을 향해 올해도 열심히 달려가는 이용주 활동가님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보겠습니다. 다음에 노동인권박람회 등에서 뵙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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