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관계에서 출발한 연대: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 참여 관찰기

by 센터 posted Jun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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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관계에서 출발한 연대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 참여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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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 청년·신입 상근자 집담회 N° 001 우리의 내:일, 다시 보기, 함께 보기


한 모임이 있다. 20221월부터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후 2,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들이 모여 서로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한다. 한 번 모일 때마다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다. 전국에 센터들이 흩어져 있기에 주로 줌을 통해 만난다. 반기 혹은 분기마다 지역에 있는 노동센터를 선정해 오프라인으로 만난다. 노동센터에 방문해 가능하다면 센터장님과 면담을 한다. 이를 통해 해당 센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듣고, 묻는다. 지금까지 대전, 광주, 울산 북구 센터를 방문했다.

 

나는 20224월부터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시작은 학위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학위논문 작업은 끝났지만 계속 참여하고 있다. 20231,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 주도로 전국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대상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43명이 참여했다. 이 인식조사 결과와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신은 참여자와 관찰자 사이 끼인 위치에 놓여 있으니, 글을 쓰기 좋을 것이라며. 이에, 인식조사 결과와 참여 관찰 과정에서 느꼈던 지점들을 간략히 정리했다.

 

한비네 청년활동가 모임(?)

 

처음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 텔레그램 방에 초대되었을 때, 내게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방의 이름이었다. ‘한비네 청년활동가 모임(?)’. 물음표는 모임 뒤에 붙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청년활동가 뒤에 붙어 있었다. 이 모임에 속한 구성원들은 스스로 활동가라고 호명하는 것을 망설이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모임 안에 스스로를 활동가로 여기는 구성원과 활동가로 여기지 않는 구성원이 공존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괄호 열고, 물음표, 괄호 닫고는 이를 아우르는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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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에게 입사 동기를 물었다. 비정규직과 취약계층 지원에 관심이 많아서 입사한 비율은 71%였지만,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입사한 비율은 약 36%였다. 입사 동기는 대체로 노동운동 활동과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그 사이에 분포되어 있었다.

 

느슨한 연대, 무해한 관계

 

8명 내외 청년 상근자들로 시작한 이 모임은 느슨한 연대를 좇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자 센터에서 맡은 업무들이 있기에, 모임 참여에 따른 추가 업무 부담을 지우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모임을 통해 서로의 업무를 교류하며, 구성원들은 관계를 쌓아나갔다. 2022년 말쯤, 이 모임을 조금 더 확대해보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전국 노동센터 신입·청년 상근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집담회를 진행함으로써 모임 확장의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어떠한 문항을 실태조사에서 물을지 토의하고, 전국 센터에 전화해 실태조사에 응해달라고 요청하고, 실태조사 응답자 중 집담회 참여가 가능한 사람들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20233, 대전에서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집담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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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에서 청년·신입 상근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 고충 처리 통로 확보 여부, 이직에 관한 생각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다. 그중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결과는 한비네 각 사업에 대한 중요성 질문에 관한 응답이었다. 76%의 응답자가 직무역량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활동에 대해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없었다. 그러나 친목과 연대감을 높이기 위한 정기 워크숍에 대해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21%였다. 이는 직무역량 강화와 무관한, 단순한 친목 및 연대감 형성을 위한 모임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비율이 낮지 않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최근 젊은이들이 “‘무해에 상당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며, 타인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1)는 점을 포착하며, 요사이 시대를 무해의 시대라고 불렀다. 이 진단이 맞는다면,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사람이 되려면 타인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 그러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일을 엮어내기 위해선 서로에게 일정 부분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담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느슨한 연대관계에서 느슨한에만 방점이 찍혀 있으면, 연대는 잘 안 만들어질2)가능성이 높다.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의 경우, 느슨한 관계를 토대로 연대를 도모하는 것, 자발적으로 일을 도모하는 것까지 약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실태조사 및 청년·신입 상근자 집담회 추진은 상급자가 지시해서 도모한 것이 아니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고, 추진 과정이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모임을 참여 관찰하며 크게 느끼고 있는 점 중 하나는 구성원들이 이 모임 참여에 효능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로 출발했지만, 각기 다른 지역에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업무 애로사항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등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직무역량 강화의 장으로도 이 모임은 기능하고 있었다. 이들이 도모하는 것이 변화이든, 활동이든 그 내용과 지향은 상이할지라도 이 모임은 이들이 도모하는 것을 가능케 하도록 구성원들을 엮고, 연결해내고 있었다. 내가 느낀 바가 맞다면,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들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이들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열어주는 것, 그리고 당분간은 가시적 성과들을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지켜봐 줄 수 있는 상급자의 인내심이다.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한 토대

 

20233, 집담회 과정에서 나누었던 참여자들의 대화 중 내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내용은 노동운동가의 자녀로 성장하며 활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반감이 있어 집담회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는 한 노동센터 청년·신입 상근자의 언급이었다.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운동가의 자녀로서 성장하며 겪었던 여러 어려움으로부터 형성된, 운동/활동에 대한 반감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 운동의 일부인 탈코르셋 운동 참여자들의 운동 이탈 경험을 분석한 최근 연구는 연대의 강화를 위해 펼쳤던 동일시의 정치3)가 어떻게 운동 참여자 개개인을 소진시켰는지 드러냈다. 획일화된 상을 요구하는 운동 전략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치와 관점에 따라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이 활동이나 운동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임에서 좇는 것이 운동이나 활동이 아니라는 점에도 모임 구성원 간 이견이 존재하겠지만, 이 모임이 운동이나 활동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이것이 곧 이들이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제 청년·신입 상근자 모임 구성원은 17명이 되었다.

 

1) 김홍중, 무해의 시대, 《서울리뷰오브북스》 1권, 2021, pp. 23-35. p.23.

2) 〈혼자 살지만 혼자 살지 않는다…‘싱글 중년’도 중요한 건 ‘관계’〉, 한겨레, 2023.04.22.

3) 박현아·이나은, 《탈코르셋을 그만둔 여성들》, 《문화와 사회》 제31권 1호, 2023, pp. 89-148. 

p.138.

 

이병권 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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