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기댈 수 없는 청년노동의 문제_청년유니온이 블랙기업에 맞선 운동을 시작합니다

by 센터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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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세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비정규직 양산과 대규모 해고의 주범, 기간제법
얼마 전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청년연대은행 토닥 등 청년 활동을 하는 단체들과 함께 영화 〈카트〉를 관람했다. 〈카트〉의 모티브가 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파업’은 당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기간제법’) 이 통과된 후 시행이 시작된 7월, 기존에 마트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단지 영화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현실은 이 영화와 꼭 닮아 있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입안된 기간제법은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과 대규모 해고를 낳으며 요란한 시작을 알렸고, 이후 많은 기업과 회사에서 이 법을 악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당시 570만 명이던 비정규직은 이듬해 잠시 줄어드는 것 같았지만 이후 계속 상승세를 보이더니 올해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근로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이었던 나, 쓰라린 경험과 깨달음
나도 지난 2011년에서 2013년까지 방송국에서 파견직·계약직으로 2년을 꼬박 근무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이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 2011년 6월 20일에서 2013년 6월 19일, 딱 2년이 되는 하루 전날까지 근무하고 퇴사한 것이다. 들어갈 때부터 ‘1년 계약에, 1년 연장 가능, 2년 이후엔 연장 불가’라고 못 박고 들어갔으므로 따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느냐고, 혹은 일을 잘해도 정규직이 될 수 없냐고 물으면 파견업체에서는 당연하게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그렇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 모두 ‘법’ 앞에서 무력해졌다. 법이 그렇다는데. 정해진 법조차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은 곳이 많으니 법을 지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째서 상시적인 업무를 하는데 파견직, 계약직 사용을 남발하는가.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충분히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2년 이후 ‘계약해지’가 아니라 사실상 합법적 ‘해고’임을 깨달았다.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에 요구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임을 더 이야기하지 못한 게 너무너무 안타까웠다.비정규직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청년들이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명감을 갖게 하지 못하고 ‘단순 노동’으로 소모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방송국 SNS 뉴스 업무도 크게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일의전문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해외 뉴스들의 SNS 사례와 방향을 분석하고, 적용해 보고, 시도해 보고, SNS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또 이를 방송국 내부로 가져와 피드백 하는 일은 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될지 모른다. 실제 해외 언론사들은 비중 있게 SNS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타 방송사보다 높은 ‘팔로워 수’와 인지도에만 관심 있을 뿐,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용 안정과 노동의 질, 업무의 질에는 관심도 없었다.


youth_1.JPG

2014년 11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청년유니온 주최로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블랙기업에 맞서기 시작한 청년유니온
청년유니온은 11월 9일 청년들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에 맞서겠다는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을 통해 청년유니온이 진행하고자 하는 블랙기업 운동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알려 나갔고, 당사자들이 블랙기업의 부당함을 직접 제보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blackcorp.kr)도 열었다. 사이트를 연 지 며칠 사이에 30여 건의 제보가 들어왔다. 반복적인 임금체불, 근로시간 변경 강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넘어선 근무 강요, 직장 내 성추행, 자진 퇴사 강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한 장기간 인턴(수습) 채용, 과도한 영업 실적 강제, 강압적인 조직 문화와 비합리적인 평가제도 등 청년들이 일하면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은 그동안 들어온 사실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임금체불, 법정수당 미지급, 부당해고와 같이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영역을 넘어서 성추행, 조직문화 강요와 업무실적 강제 등 법령을 넘어선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있다. 임금이 낮아야만, 노동 착취가 심해야만, 법을 어겨야만 문제가 아니라 청년의 꿈과 미래를 저당 잡고 청년들의 노력을 악용하는 게 바로 블랙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쁜 기업이야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청년의 입장에서, 청년 노동 현실에서 바라보는 블랙기업의 문제는 훨씬 더 명확하게 보인다.


youth_블랙기업 사이트.jpg




마땅히 누려야 할 청년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자
지난 9월 굴지의 경제 단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했던 청년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임직원의 발언에 희망을 가지고 쪼개기 계약과 성희롱까지 참았다가 계약이 해지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신 대기업 LG유플러스에서 악성 민원을 담당했던 청년은 매일 악성 고객을 응대하면서도 회사의 판매량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도 못하기 일쑤였고,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받지 못했다. 결국 청년은 “노동청에 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청년유니온은 제일 먼저 중소기업중앙회와 LG유플러스 서울 본사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 개별 사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청년노동의 측면으로 접근하여 이 문제들을 사회에 제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청년유니온은 그간 법조차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은 사업장들과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보호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들을 많이 펼쳐왔다. 이제는 청년의 꿈과 미래를 저당잡고 희망고문하는 기업들, 권력형 성추행과 과도한 영업 실적 강제, 위압적인 조직 문화 등 법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문제들에 맞서 함께 싸워 나가려 한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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