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최고의 경험, 노동조합 10년_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서경지부 고려대분회 이영숙 전 분회장

by 센터 posted Apr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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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이 길을1.JPG

 

편집자 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서경지부 고려대분회는 2004년 7월 1일 전국에서 두 번째로 시설관리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후 10년간 강력한 조직력과 투쟁력으로 헌신적으로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영숙 전 분회장이 있었다. 산별노동조합로 재편되기 이전, 고려대분회가 고려대 지부였던 시절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분회장으로 활동했던 이영숙 전 분회장은 지금은 분회장을 그만두고 빗자루를 잡았다. 고려대학교 이공계 캠퍼스 제2공학관에서 일을 마친 이영숙 분회장을 만나 고려대분회 10년의 역사와 본인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2004년 7월 1일, 노동조합을 만들다
내가 고대에 들어온 게 2003년 9월 16일이야. 이전에는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었어. 가정에서 살림만 하고, 손주 보고 살았지. 그러다가 몸도 안 좋아지고, 천식도 심해져서 겸사겸사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
노동조합은 2004년 7월 1일에 만들어졌어. 하지만 그 시작은 2003년 10월이었어. 학생들이 우리 쉬는 곳에 찾아왔거든. 와서 이것저것 묻고 다녔지. 그때는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였으니까 노동조합을 하면 뭔가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 아마 학생들이 처음부터 노동조합하자고 찾아왔으면 숨고, 문도 안 열어줬을 거야. 그런데 학생들이 처음부터 노동조합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니었거든. 그냥 어떻게 생활하는지 월급은 얼마나 받는지를 물었었지.
학생들과 만나고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껴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애로사항이 많았어. 당시 조합원이 전체 일하는 노동자 중에 70%가 조금 안됐거든. 그리고 노동조합을 한다고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노동조합을 해 본 사람도 없고,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한다고 모이기는 했는데 회사 편인 사람도 있었거든.
처음에 지부장을 뽑으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지부장을 뽑겠다고 회의를 하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할 만한 사람 붙들려고 하면 이후 집에 뭐가 있다고, 일이 있다고 다 빠져나가고…. 그때 학생들이 실망을 많이 했지. 사실 나도 지부장을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노동조합이 뭔지, 지부장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았다면 절대 안 했겠지. 그런데 잘 모르니까 그냥 하게 되었지. 처음에는 겁나기도 했어. 되든 안 되든 마이크 잡으라고 하고, 시청광장에서도 마이크 잡아보고. 정말 멋도 모르고 시작했던 지부장이었지.

 

 

단결, 그리고 첫 투쟁
노동조합이 없었으면 우리들 삶은 정말 어두웠을 거야. 당시에는 최저임금을 몰랐잖아. 노동조합이 생기고 보니까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있더라고. 당시 우리가 한 달에 65만 원을 받았거든. 퇴직금 이런 것 다 합쳐 연봉제로 해서 한 달에 65만 원.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이게 최저임금법 위반이었더라고. 그 때 우리 업체가 JD1이었는데 회사에 이야기를 하니까 회사가 3만 5천 원인가 3만 7천 원 인상을 이야기 하더라고.
그때 우리가 고민을 많이 했어. 우리랑 같이 연대하던 학생들은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고 싸우자고 하는 거야. 그런데 당시에는 비조합원도 많았으니까 지부장 입장에서 고민을 했던  거지. 싸우려면 준비도 많이 필요하고, 돈도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조합원들을 다 모아놓고 이야기를 했어. 지금이야 회의를 실내에서, 공간을 빌려서 하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잘 빌려주지도 않았어. 그래서 조합원들을 민주광장 위 풍물패 학생들 풍물 치는 곳에 다 모았지. 그래서 회의를 했어.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 투쟁력이 약하니 접어야 한다는 의견부터 인상된 금액 3만 7천 원 모아서 싸우자는 의견까지. 그런데 결국은 아직은 우리가 싸우기는 어렵겠다고 의견을 모은 거야. 그때 같이 있던 학생이 털썩 주저앉더라고. 많이 실망했나봐. 그 당시 학생들도 학교에 불만이 많았던 때였거든. 그래서 그 학생은 같이 싸울 수 있고, 같이 싸우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되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쨌든 우리가 만들어진 지도 얼마 안됐고, 당시 우리의 단결력도 싸우기에는 부족했으니 3만 7천 원 받고, 급여에 식대를 추가하는 등 몇 가지를 얻고 첫해 싸움을 마무리했지. 당시 우리가 얻은 한 달 식대가 5천 원이었거든. 5천 원이 작아 보일 수는 있겠지만 식대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같이 싸우던 사람들이 일단 식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어. 일단 올해에 만들어 놓으면, 내년 내후년에 거기에 살을 붙여서 계속 늘려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준거지. 그게 2004년, 우리의 첫 싸움의 기억이야.

 

고려대분회.jpg

 

노동조합 활동을 온전히 보장받기까지
처음 지부장이 되어서는 힘들었어.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전임을 따기는 했는데 회사가 내가 일하던 곳에 일할 사람을 안 구해줬거든. 사람이 없으니까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집회도 다니고, 지부장 활동도 했지. 한번은 학생이 당시 내가 일하던 창의관에 새벽같이 뛰어온 거야. 그리고 하는 말이 지금 여의도에서 집회 벌어졌다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당시 신한증권 앞에서 해고가 있어가지고 집회가 있었거든. 찾아갔더니만 어휴, 용역깡패들이 엄청 많더라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힘들게 일하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10월 1일에 회사에 “나 전임하겠습니다.” 하고 나와 버렸어.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사람을 하나 더 고용하면 인건비하고 이런 것들이 1년에 천만 원은 드니까 처음에는 사람을 안 쓴 거야. 그러니까 당시 업체 소장하고, 소장 마누라가 내가 할 청소를 다했지. 두 사람이 내 욕 엄청 많이 했어. 나를 갈아먹는다고도 하고, 나를 씹어 먹는다고도 하고.
지금이야 우리가 계속 싸워서 방(청소노동자 쉼터)도 있지만 당시에는 방이 어디 있어. 노동조합 사무실도 없었지. 그래서 학생들이 생명공학관에 자신들이 쓰던 공간을 하나 내줬어. 처음에는 총무과에서 우리가 거기 사용하는 것을 허락을 안 했어. 우리가 쓰려고 그 공간을 다 치우고 했더니만 총무과 과장이 와서 아주 난리를 폈어. 그래서 우리가 학생들을 찾아가서 학교에 공문을 하나 보내달라고 해서 어찌어찌 생명공학관 106호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얻었어. 그리고 거기에 8년 가까이 있게 된 거지.

 

 

보이지 않는 노동에서 학교의 구성원으로
처음 지부장 되었을 때 힘은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즐거웠어. 하루하루 쟁취하고, 가서 큰소리도 치고 하니 즐거웠지. 무엇보다 소장한테 큰소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좋았고, 신났어. 노동조합이 없을 당시에 우리는 죽은 듯이 살았잖아. 소장이 발을 구르고 호통을 치면 벌벌 떨고, 무서웠지. 말도 안 나오고. 그런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는 같은 레벨이 된 거야. 그리고 그 전에는 우리가 총무처 같은 곳에 갈 생각이나 했겠어. 학교 직원들과 우리 사이에는 높고, 보이지 않는 담이 있는 것 같았어.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그 담을 뚫고 들어간 거지. 한번은 업체 입찰 할 때 우리가 빨간 조끼 입고, 참관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거든. 그랬더니만 당시 부장이었던 사람이 “이 아줌마들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왔냐?”며 소리친 적도 있었어. 당시에 우리도 노동조합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까 겁이 많이 났었지. 우리가 공문까지 들고 갔는데도 본 척도 안 하니.
그런데 이제 차차 싸워가니까 이제는 총무처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학교 직원들에게도 할 말을 다 하게 되는 거지. 한번은 우리가 총무처를 점거했던 적도 있었어. 우리가 총무처를 9일 동안 점거하면서 총무처 직원들은 쫓겨나 있었지. 이렇게 싸우면서 우리가 고대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동등하다는 것을 배우고, 느꼈어. 이제는 누구 앞에서건 우리가 “우리의 사용자는 학교가 아니냐. 우리가 학교에서 일하지, 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잖냐.”라는 말도 할 줄 알게 되고, 이렇게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서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었다는 것을, 자부심이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본관항의방문.jpg

 

자랑스러운 노동조합, 단결력이 답이다
나는 우리 노동조합이 자랑스러워. 처음에는 조합원 비율이 전체의 70%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계속 현장에서 싸우면서 한때는 100%가 다 조합원 이었던 적도 있었거든. 또 우리가 서울에 있는 대학 중에서는 제일 먼저 노동조합이 생겼잖아. 우리 학교에서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다른 학교에서도 막 노동조합이 생겼지. 그러다 보니 고대 시설분회라고 하면 여기저기에서 알아주고, 최상의 투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던 것이 좋았어. 물론 세월이 지나다보니 지금 위기가 오기는 했어. 한국노총이 들어왔거든. 아직 조합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공계에서 일하는 분들 일부가 그쪽으로 넘어갔어. 그렇다 보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해. 하지만 다 같은 노동자이고, 또 함께 싸울 사람들이잖아. 그러니 그 사람들을 타박하거나 나무라고 싶지는 않아. 우리가 언제는 쉬웠어? 청소노동자들은 항상 어려웠지. 그래도 여태까지 단결력으로 뚫고 지나왔거든. 이번에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사실 걱정이 되는 건 우리 노동조합이 10년이 되다보니 이런저런 면에서 느슨해진 것이 보인다는 거야. 특히 해마다 업체가 바뀌는데 다른 회사가 들어오면 우리 단결력도 떨어지고, 헤이해지거든. 오히려 이런 것이 걱정이야.

 

 

10년이 지나 다시 빗자루를 들다
이번에 현장에 들어가면서 고민이 많았어. 다시 현장에 가야 하는지를 망설였는데 ‘나도 청소하러 들어온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일한 지 10개월 만에 전임을 했고, 10년 동안 전임을 했으니까 청소 일을 내가 잘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던 거지. 10년 만에 빗자루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힘들더라고. 안 하던 일을 오랜만에 하니까. 강의실 청소하고 쓰레기를 내 놓는 것이 장난이 아니야. 새벽잠도 못자고 나와서 하는 일이다 보니 더 힘들지. 이전에는 발언할 때 “우리 청소 노동자들 정말 힘들다.”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때도 힘들었지만 다시 일해 보니 정말 힘들더라고. 냄새도 많이 나고. 아침에 강의실 두 개 청소하고 나면 지치지. 이렇게 다시 일을 해보니 이제는 어디 가도 “우리 청소노동자들이 이런 것 때문에 힘들다.”라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것이 힘든지, 어떤 점이 열악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거지.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노고가 이렇게 큰 것을 학교에서 알아야 하는데.

 

 

집단교섭, 힘들지라도 서로 더불어
이번에 우리가 토요일 근무를 없앴거든. 주 5일제를 하게 된 거지. 주 5일제를 하게 되면 좋기는 한데 임금이 줄었어. 원래 토요일에 일하면 1.5배를 받잖아. 그 수당 받던 것이 14만 7천 원 정도인데 그게 없어진 거지. 그런데 토요일에 일은 하지 않지만 쓰레기도 없어진 것은 아니잖아. 쓰레기를 토요일에 두 봉지, 월요일에 두 봉지 치웠었다고 하면 이제 월요일에 몰아서 네 봉지를 치워야 하는 거지. 우리 일이 없어진 것이 아닌데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회사에 임금 인상 요구를 하고 있어.
이전에 1대1로 교섭을 했을 때에는 며칠이면 끝났을 싸움이었거든. 대부분 쟁의행위를 하기도 전에 조정에 들어가면 끝났어. 그런데 이번에는 집단교섭을 하다 보니 힘든 점들이 있어. 지금 우리가 집단교섭을 4년 째 하고 있는데 다른 학교 사안들도 같이 해결해야 하니까 우리가 조정절차에서 합의를 못 하는 거야. 우리 학교만 생각하면 합의할 만한 안이라고 해도 다른 학교 생각하면 합의할 수가 없는 거지. 그렇다 보니 싸움도 길어지고 있어. 이전에는 3일이면 학교가 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더라고. 이번에 집단교섭이 들어간 학교가 14개고, 총 16개 현장에서 집단교섭이 들어갔는데 쉽지 않아. 우리야 업체가 하나지만 다른 학교는 학교마다 업체가 여럿인 경우도 많거든. 교섭 자리에 가면 회사 사람들만 한 30명이 앉아있어. 그렇다 보니 합의가 어려워지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똘똘 뭉쳐 싸우면 더 큰 힘이 되고, 다른 노동자들도 같이 좋아지는 거니까 힘들어도 집단교섭에 함께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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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10년, 내 생애 가장 값진 경험
노동조합을 10년간 하면서 조직이라는 것이 참 무섭고, 좋기도 하지만 나쁘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어. 여기도 하나의 직장이니까 선후배 관계도 좋아야 하고, 또 알게 모르게 경쟁도 있더라고. 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경쟁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 우리는 서로 보듬어 안고, 서로 이해하고, 어려울 때 같이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노동자는 하나라고 하잖아. 우리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똘똘 뭉쳐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세상이 변한건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더라고. 하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함께 뭉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나는 이제 정년이 2년 남았어. 10년 동안 분회장을 했는데 10년을 후회하지 않아.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었지. 나중에 늙어서도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야. 또 10년 동안 안 가본 곳도 없지. 부산대학도 가보고, 청주에도 갔었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위해서 같이 싸우기도 했고. 정말 분회장으로서 10년이 보람 있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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