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일상을 찾게 되었어요(2)_이태의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본부장

by 편집국 posted Apr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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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2년 노동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곳이 바로 학교비정규직이다. 올 하반기 투쟁의 핵이었던 학교비정규직은 학교현장에서 최초로 파업을 성공시켰고, 4개의 노동조합이 함께 구성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투쟁 속에서 그 규모가 4만 명까지 커지는 조직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성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역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끌어낸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의 이태의 본부장의 노력은 가장 돋보였다.

지난 호 <비정규노동>에서는 이태의 본부장을 모시고, 이태의 본부장의 삶과 투쟁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번 호는 그의 남은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눈에 밟히는 아이들

아이들이 가장 자주하는 말이 짜증난다는 거예요. 뭔가 금방 폭발할 것 같아요. 항상 그러니 늘 짜증이 나고, 감정을 표현할 줄을 몰라요. 그런 상황들을 자주 보는데, 예를 들어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자기한테 친구가 걸려서 크게 다치잖아요? 당장 가서 돌봐야 할 상황이에요. 근데 내가 아닌 친구를 위해서, 긴급한 상황에 위험에 처한 애를 위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가 웃어요. 상황이 어색하니까 다 같이 웃다 보니, 넘어졌던 애만 바보 되죠. 그게 실제 상황이에요. 나는 그런 애들이 그렇게 불쌍해 보여요. 가서 넘어진 애를 일으켜보고, 다쳤으면 양호실에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야 되잖아요.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이 우습고 어색하고, 넘어진 애를 조롱하게 되고 자기 합리화 시키죠. 그게 자기 일이 되면 짜증나서 폭발하는 거구요. 이게 경쟁사회 속에서의 놀이문화에요.
소외되는 애들 있잖아요. 운동장에서 혼자 떨어져서 구석에 있든지, 교실에선 한마디도 못하는 애들이 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시설을 관리하니까 학생들 분리수거 등 생활지도를 같이 하는데, 일부러 그런 애들을 뽑아요. 학생부장한테 얘기해서 봉사하게끔 나한테 보내달라 그러죠. 교실에서는 따돌림 당한 애들인데, 일부러 난 막 시켜요. 어느 반에서 분리수거를 잘했는지 너희가 별표 매겨와라. 얘한테는 이게 엄청나게 큰 시도에요. 분리수거 해오는 애들 보고선 자기가 잘한다, 못 한다 별표를 매겨주는 거죠. 또, 잘한 반은 추천하게 해요. 그럼 그 반 불러서 피자 사주거든요. 자기가 그 역할을 한 거죠.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1학년 때 이렇게 시켜보고 눈여겨봤다 2학년 때 그 역할을 또 시켜. 그럼 얘가 3학년 때는 그 역할을 자기 반에서 수행해요. 봉사부장을 한다든가, 표창장도 받고. 난 그게 교육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내가 본 거니까.
실제로 있었던 사롄데, 소위 문제학생 둘이 사고치고 해결을 못하니까 같이 죽자고 강에 뛰어들었어요.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나왔어요. 살아남은 아이는 친구가 죽은 이 상황을 통해서 자신을 치유한다거나 그에 준하는 시도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얘 일상이 안 변해요. 지켜보는 전 감당이 안 됐어요. 얘 속에서 상처가 곪아가고 있는 건가? 학교에서는 별의별 짓을 다 해 갖고 퇴학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그 학교에서 졸업을 했어요. 그 동안 일부러 자주 말도 걸어 주고, 졸업할 땐 꽃다발도 줬죠. 나중에 자기 부모님 데리고 와서 인사하면서 울더라고. 고등학교에 갔는데 공부는 못 쫓아가니까 미용학원 다닌다고 자랑하면서.

나는 그냥 걔를 지켜보고 말만 건넸을 뿐이에요. 애가 고등학교 진학해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고, 미용도 배우고, 이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 나는 이것도 큰 발전이라고 보거든요. 이게 내 눈 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학교의 상황이고, 이런 환경 속에 아이들이 있어요.

 
차별의 경험과 문제의식의 시작
[누가나에게이길을]추가2.jpg 제가 노조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나는 학교에서 맘 좋은 아저씨지만, 그래도 교사가 칭찬 한번 해주면 애들이 더 잘하잖아요. 학기 초에 칭찬해주면 애들이 1년 동안 잘해요. 내가 몇 번 해보니까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교사들한테도 이걸 요구했어요. 그런데 감히 비정규직이 교사한테 가르치듯이 얘기한다며 싸움이 붙은 거야. 학생부장이 나랑 동갑내기였어요. 광주 상황도 함께 보고 컸던 친구야. 사적으로 술자리에서 그 당시 얘기 나누고 의기투합하던 친구예요. 그래서 스스럼없이 얘기한 거죠. 근데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는 학생부장이고 나는 비정규직. 이렇게 된 거야. 난 꿈에도 생각 못했죠.

학교 사회에서 교사가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신성권을 내가 침범했다 생각한 거죠. 나는 그저 학교생활 자체가 너무 좋았을 뿐이었어요. 싸운 그날 화가 나서 학교에 공부하러 안 가고 전회련 설명회 하는데 갔어요. 거기서 코 꿰었죠.

전회련의 공식적인 이름은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인데요. 그 이름을 만든 사연이 웃겨요. 초기에는 당연히 이름이 없었죠. 우리 차장님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셔서 노동조합 교육도 가고 그랬어요. 각 교육기관 공무원 에는 일반직이 있고 기능직이 있어요. 기능직들이 그 중에서도 차별 받는다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한테 가서 노조가 있다고 교육을 했는데, 기능직 조리사 한 명이 비정규직 조리사 한 명을 데리고 왔어요. 조리사가 볼 때, 비정규직 조리사가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대우가 너무 형편없다면서 데리고 와 상담을 한 거예요. 이 얘기를 듣고, “처우개선이 너무 열악하니까 조직만 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수원과 화성에서 조리사 10명으로 만든 것이 전회련의 모태에요.


‘전회련’ 버려야 할 이름
2009년 4월에 경기도 교육청 교육감 보궐선거가 있었어요. 교육감 후보들한테 정책질의를 하는데 단체 이름이 필요하잖아요? 신분을 따지자면 학교 비정규직이잖아요. 그런데 학교 비정규직들의 당시 정서에는 일반적으로 비정규직들이 갖는 어떤 특별한 공감대도 없었고,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요. 내가 학교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내 아이한테도 얘기하지 못하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만큼 차별이 심하다는 거예요. 내 아이가 내가 일 다니는 학교에 배정이 되잖아요? 그럼 창피하다고 일 그만둬요. 그게 현실이었어요. 그러니까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게다가 당시는 ‘내가 노동조합 조합원이다’, ‘내 권리를 찾아서 신장시킨다.’ 같은 의지를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부르면 좋겠냐. 학교에서 우릴 회계직이라고 부르고, 회계직이라고 하면 돈 만지는 사람으로 알기 쉽잖아요. 회계직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전국의 비정규직을 아우르면서 가자 해서 ‘전국’자를 앞에 붙이고. 학교만이 아니고 교육청도 있고 도서실도 있고 여러 가지 교육기관이 있으니까, 교육기관 전체로 하자. 교육기관 회계직. 우리가 아직 힘이 적어서 노조로 하면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연합회로 시작하자. 힘이 세지면 노동조합으로 전환하자. 이렇게 만든 이름이에요. 그 이름으로 정책질의 보내면서 '전회련'이 시작되었죠.
어찌 보면, 좀 유연하게 접근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지은 건데. 전 지금도 전회련이란 이름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야 목표도 정확해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학교 비정규직의 자존감도 무시당한 거죠. 회계직? 돈을 셈하는 직종의 명칭을 사람의 직급에 붙이는 것은 맞지 않죠.  비정규직으로 당하는 차별을 직급 명이 가리고 있는 거잖아요. 빨리 극복해야 될 이름이에요. 슬슬 우리 내부에서 그런 논의가 시작됐어요.


학교 회계직도 당당한 교육의 주체다
2009년도에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됐잖아요. 교육감에게 ‘학교 회계직도 당당한 교육의 주체입니다.’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해 달라 그랬죠. 그렇게 하면 난 비정규직들이 엄청 몰려올 줄 알았어요. 근데 오십 명도 안 오는 거예요. 궁여지책으로 기능직 노조에 얘기해서, 그 학교에 있는 비정규직 좀 한 명씩 데려 오시라고 했어요. 기능직 노조하고 우리 비정규직 노조하고 같이 엮어 100명 만들어서 교육감 연설을 들었어요. 학교 비정규직으로서 본인의 문제를 드러내기도 힘들어하니, 조직적으로 뭉쳐서 권리를 찾아내기엔 너무 어려운 조건이에요.
강연 끝나고 ‘앞으로 어떻게 참여시킬 건가.’, 그리고 ‘어떻게 연락을 취할 건가.’ 이 두 가지 고민이 시작됐어요. 게다가 비정규직은 예전엔 복지비는 물론이고 수당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2009년도에 경기도청에 무기계약자에게는 똑같이 복지 혜택을 주는 조례가 만들어졌어요. 기회라고 생각했죠. 도청 소속의 비정규직에게 혜택을 주면서 교육청 소속엔 주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서명운동을 시작했어요. 경기도 내 2,200여개 학교의 팩스번호 전부 다 취합해서 팩스로 서명지를 보냈죠. 사무실도 없으니까 기능직 공무원 노조에 책상 하나 빌려서 전화기만 하나 놓고 했어요. 다음 날부터 서명지가 물 밀처럼 밀려오는 거예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교 이름 안 적고 자기 이름하고 전화번호만 적어 보냈어요. 반응을 보고 전국적으로 확대했어요. 전국 1만 2천개 학교에 팩스를 보내려면 70만원이 들었어요. 돈이 어딨어요. 당시만 해도 지원받을 데가 없어 일단 카드로 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몇 만 장의 서명지가 왔어요.

 

가시화되는 성과들
0.jpg 2010년도에 모든 교육청에 연봉과 기본급 외에 처음으로 생긴 게 맞춤형 복지에요. 그 다음 해에 저희는 그걸로 선전을 했죠. 2010년도엔 전국에 맞춤형 복지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엔 명절 휴가비, 그리고 장기근속까지 세 가지 성과가 있었죠. 명절 휴가비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그 전에는 명절 때 되면 학교장들이 뭐 식용유라든가 김 세트를 지급했어요. 정규직들은 성과급이나 상여금도 받지만, 학교 비정규직에겐 그런 게 없으니까 학교장이 임의로 주는 거예요. 근데 학교장 판공비로 교장의 업무 내용에 들어가지 않는 인건비를 지출하면 감사에 걸려요. 기존에는 선물세트라도 받았는데, 지금 감사 때문에 명절 때 진짜 서러워서 못 살겠다고 교육감한테 항의했죠. 그러고나니 경기도가 처음으로 설 추석 때 10만원씩 지급했어요. 2011년도에는 10만원씩 두 번 받도록 만들었어요. 그건 경기도하고 전북만 시행했어요. 그리고 학교 비정규직은 오래 근무하면 근무할수록 정규직과 임금차별이 심해지잖아요. 그래서 장기근속 가산금을 요구해 만들었죠. 2년에 만원씩 올려줘요. 적은 돈이지만 어쨌든 생긴 거예요.

2010년도에 이런 처우개선 방향이 안 나오는 교육청들이 교과부에 공동으로 민원을 냈죠. ‘교과부에서 지침을 내려라, 기준을 잡아달라.’ 협의해 여기서 임금체계를 결정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총 수당이 아홉 가지로 늘어났어요. 맞춤형 복지에 작년 아홉 가지 수당이 생겼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죠. 기본급 체계가 잡혀 동일급이 실현 가능해질 때까지 우린 줄기차게 외칠 거예요.

 

투쟁이 가져다 준 것들
학교 비정규직들이 학교 안에서 가장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이유는, 학교장이 나를 언제든지 자를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사용자, 책임자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용자성이 교육감에게 있고, 교육청의 지도감독권을 강화하고, 교육청 소속으로 신분을 보장하고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고용대책을 세워야 했어요. 그래서 2011년 초에 교육감 직계약 조례를 만들기 위한 서명을 의회에 제출하고 5월에 경기도에 통과됐어요. 여기서 경기도 교육청과 경기도 의회 의원들과 비정규직 당사자, 이렇게 삼자가 모여서 고용 안정 대책과 처우개선 대책들을 지속적으로 담는 형태의 조례를 만들라는 결정이 났어요. 그걸 계기로 1년 동안 삼자가 협의를 해 교육감 직계약 조례라든가 이런 사항들에 대한 기본 틀을 만들었죠. 경기도가 이렇게 시작을 하니까 광주, 강원도에서 후속적으로 나오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학교 내 해고요인으로 가장 큰 것이 학생 수 감소인데요. 이건 학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잖아요. 학생 수 변화를 파악해 교육청 단위에서 재배치하면 되는 문제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면 되는 문젠데, 이게 학교장 관리로 돼 있으니까 쉽게 해고되는 것 아니냐, 이런 논리예요. 교육청 단위에서 고용안전 대책뿐 만이 아니라 채용대책, 비정규직 효율적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비정규직 차별문제, 처우개선, 정규직 전환하기 위한 실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례들을 만들게 된 거죠. 궁극적으로 파업까지 하게 된 동력이 이를 통해 갖춰진 거죠. 집단 대 집단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되었고, 학교장이 임의로 해고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조합원들이 자기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본인이 얘기할 수 있게 되었죠.

작년에 총파업 하면서 자신감들이 엄청 커진 거죠. 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다 합쳐서 4만 명 정도였는데, 총파업 이후 5만 명으로 늘어났어요. 투쟁 과정에서 노조란 무엇이고 노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학교 사회의 잘못된 서열 구조와 문화, 경쟁구도를 바꾸어나가는 데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죠. 우리가 바로 서야 우리 사회의 미래도 바로 서는 거라고요. 투쟁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어요.

 

정리 │ 서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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